정후니의 석조전 음악회 여행기

in #kr-coin6 years ago (edited)

8월 29일, 비가 쏟아지는 수요일 저녁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덕수궁을 향해 떠났다.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은채 긴바지까지 입었다면 정말 유쾌하지 못한 날씨였겠지만,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고 젖으려고 작정한 내게 하늘의 빗방울 수는 부족했다.

우산 천을 뚫어져라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쏟아지는 비 덕분에 문화가 있는 날의 덕수궁은 사람이 없는 날이었다.

90명 예약자만 입장할 수 있는 석조전 앞에는 15명 가량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뭐야? 뭐지?! 했는데 예약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혹시나 빈 자리가 생길까 와서 서 있던 것이었다.

날씨가 짖궃어 음악회를 예약한 사람들이 안오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이 날씨에도 음악이 듣고싶어 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입장하지 못한채 음악회는 시작됐다.
오후 7시에 시작하는 음악회에 한 시간 정도 일찍 가서 덕수궁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게을러터진 나는 음악회 시작 시간에 맞춰갔다.
다음엔 꼭!

석조전 입구에서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고, 직원에게 받은 실내화를 신고 들어갔다.
실내는 화려한 과거의 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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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름밤

여름동안 강했던 열기만큼 두꺼운 물줄기가 쏟아지는 날, 마지막 여름밤 연주회가 시작됐다.
이 비가 그치면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그만큼 새로운 해가 다가왔음을 느낀다.

음악회는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 네 명의 예술가와 함께했다.
관악기 플룻의 가볍고 얇은 음색은 내가 좋아하는 첼로의 소리를 파묻어 별로였다.

나는 첼로가 좋다.
깊고 진하게 첼로 몸통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소리의 무게는 아주 낮게 깔려와 가슴을 흔든다.
웅~하며 울리는 첼로의 소리는 심금을 울린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것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다.
두껍고 무거운 첼로의 소리는 나의 가슴을 부드럽게 휘어잡고 흔든다, 부드럽게.
그 가슴의 떨림이, 울림이 좋다.
가슴이 울린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소리가 엉키며 서로를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를 쌓아 올라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흐를수록 마음 속이 채워진다.
만두 속이 꽉 채워지는 것처럼, 음악의 소리가 마음 속 빈 공간을 아주 은은하고 서서히 채워나간다.

오늘 내 만두를 꽉 채워 터뜨릴 뻔 했던 곡은 글귀에 링크된 드뷔시의 피아노 삼중주 L.3 중 3악장이었다.
어디서부터 3악장인지는 모른다.

90명이 빼곡히 채운 석조전 안은 연주 소리만이 가득했고, 계속해서 창문을 두드리며 함께 연주하자는 빗방울과 번쩍이는 천둥번개는 음악회를 더욱 색다르게 만들었다.
음악회가 끝나자 코난이 튀어나와 우리 중 살인마가 있다고 말할 것만 같았다.

좋은 음악회였다.
옆 자리 아줌마가 연주 중에 잡담하자 앞에 앉은 사람 셋이 동시에 뒤돌아 노려보자 다시는 떠들지 않았다.
지난 4월 갔던 첼로 연주회처럼 미취학아동들이 와서 깽판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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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가 끝나고 빗소리의 침묵에 갇혀 덕수궁 밖의 서울을 바라보았다.
시끄럽게 떨어지는 빗소리는 도시의 비명을 걷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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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준공된 석조전
우리 왕의 궁궐 안에 있지만 외국인이 설계했고 외국인이 많이 사용한 석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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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집이었던 중화전
커다란데 1층 건물이다.
내가 왕이었다면 집 앞을 돌로 가득 채우느니 푸르른 잔디와 나무로 가득 채웠을 거다.
왕은 권력의 상징이고 그런 사람들은 대게 도시에 사니까 고종도 조선 스타일 도시인 회색 돌로 마당을 가득 채운건가?
난 왕은 못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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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중화전과 서양의 석조전이 가까운 거리에 함께 한다.
내가 지금 봐도 신비한 조화인데 과거에는 얼마나 새로웠을까.
괜히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을까.
분명 있었겠지.
Hater는 Hate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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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안에, 빗소리 안에 있고 싶지만 폐장 시간이 다가와 도시 정글로 향한다.
가슴 속 만두피를 꽉 채우고 나가는 발길은 가볍지만, 발끝의 표정은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

서울은 숨 막히는 도시다.
빌딩에 가려 보이지 않는 하늘, 타이어에 찢기는 아스팔트의 비명 소리, 빽빽한 빌딩 숲과 그 안에 갇혀 숨 쉬는 초록색 나무와 회색빛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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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며 첼로의 떨림을 다른 음악으로 되새김질 한다.
Woodkid & Nils Frahm - Winter Morning

다시 한 번 클래식으로 마음을 채운 하루였다.
가득한 마음이 항상 함께하길 바라며.

-석조전 음악회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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