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30. 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 | 눈물로 쓴 이야기

in #kr-book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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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442472

저는 피부가 곱습니다. 엄마가 저를 가졌을 때 사과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나이 마흔이 다 돼서야 30여 년 만에 만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나 가졌을 때 사과를 많이 먹었느냐고. 엄마는,,, 먹을 게 사과뿐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사과 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고요. 배는 불러오지, 남편은 군대 갔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사과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남산만 한 배로 사과를 팔러 다녔고, 팔지 못하는 멍든 사과나 썩은 사과를 먹었다고 합니다. 쌀살 돈이 없어서 팔다 남은 사과만 먹었다고 합니다. 그땐 왜 그리도 가난할 수밖에 없었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엄마는 병원비가 없어서 집에서 저를 낳고는 꿰매지도 못해서 소변도 제대로 못 봤다고 합니다. 나 어렸을 때 반찬투정 안 했냐고 물었더니 '반찬이 어딨어. 맨날 간장에 비벼줬지. 고맙게도 아주 잘 먹었어.'

저와 똑같이 생긴 아들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땝니다. 로타바이러스 장염으로 겨우 3일 입원해있는 동안 너무 마음이 아파 울곤 했습니다. 이 작은 아이가 병을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고통이었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내가 아프게 해달라고, 내가 아들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매일 밤 아들 옆에서 아들을 지키며 기도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아파야 한다면 내가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요. 그러자 문득 나 아팠을 때 우셨을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허약해서 병이란 병 다 걸리고 자주 아팠던 아들 대신 아파하길 원했던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엄마도 나 아팠을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겠구나.'

부모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엄마란 그런 사람인가 봅니다. 내 삶보다 자식의 삶이 먼저고, 내 건강보다 자식의 건강이 먼저고, 내 배고픔보다 자식의 배고픔이 먼저고, 내 생명보다 자식의 생명이 먼저인 사람. 그런 사람이 엄마인가 봅니다. 이 소설 속 엄마도 오직 자식을 위해서만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자식의 배고픔을 위해, 자식의 건강을 위해, 자식의 배움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충실한 엄마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젠 노년이 되어 자식들의 간절함 바람으로 살아갑니다.

엄마...... 꼭 살아야 해......

병상에 누워 자식들에게 의지해야 할 노년의 엄마에게 다섯째 아이가 속삭입니다. 꼭 살아야 한다고. 다섯째 아이는 어렸을 때 병으로 죽게 됐지만 엄마의 정성으로 고비를 넘긴 적이 있습니다. 그 다섯째가 꼭 살아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엄마는 너무나 아파 죽고 싶지만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싶어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 복이 없었던 엄마. 노름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남편의 구타도 버텨낸 엄마였습니다. 그 힘은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는 사랑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남편은 요양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말썽 안 부리고 조용히 병원에서 버텨내야 하는 게 남편의 의무이자 할 일입니다. 그래야 자식들과 아내에게 피해를 안 주니까요. 이렇게 엄마이자 아내인 그녀와 남편이자 아빠인 그가 한 번씩 번갈아가는 독백 형식의 소설인데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아홉 아이의 이야기, 그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풀어낸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슬퍼서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지금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와 아빠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아이로 태어나 아이로 죽어갑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의 공평이겠지요. 삶의 무거움은 제각기 다를지라도 죽음은 모두에게 동일한 가벼움을 선물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온전히 태어나는 순간은 죽음과 마주할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오래지 않아서 기어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을 테고, 그 이후에는 누워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기처럼 내가 낳은 아이들을 그리워하겠지요. 그러나 난 그때까지 살아 있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어디선가 읽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2년 동안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기에, 그 보답을 하려고 부모님 돌아가실 때 2년 동안 보살핀다고요. 배고프다고 울면 젖을 물려주고, 똥을 잔뜩 싸도 인상 한 번 안 쓰고 닦아주고, 이유식 정성들여 만들어 떠먹여주죠.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사랑이더군요. 그런데도 조금만 커도 자기 혼자 큰 줄 알고 대들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나중에 아빠가 돼서야 혼자 큰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겠죠. 그럼 된 겁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그런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가난한 집구석에서 살아야 해? 왜?
이럴 거면 도대체 뭐 하러 낳았어!"
벽에 붉은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다섯째 아이가 지도를 향해 머리를 박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그냥 나 죽어버릴 거야!"
다섯째 아이의 머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손을 뿌리쳤습니다.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방의 얼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보이지 않는 시간이 벽의 지도 속에서 뒤척거렸습니다.

“둘째 형아는 뭐 될라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혀싸?”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인디.”
“훌륭한 사람이 뭐신디?”
“돈 많이 벌어서 가족을 잘 돌보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제!”

우리는 모두 못난 자식인 것 같습니다. 엄마의 고통은 알지도 못하면서 반항하고 슬프게 만들었으니까요. 저도 어렸을 땐 속 많이 썩인 것 같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던 그 시절의 저도 화가 나면 주먹으로 벽을 치곤했습니다. 벽을 치다가 손 뼈가 다 깨져버렸으면 좋겠고 생각하며 쳤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해보니 저도 참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나는 가족 잘 돌보는 훌륭한 사람이 됐나 질문해봅니다. 나는 돈을 잘 벌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자 슬퍼졌습니다. 돈을 잘 벌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하지만 저도 어렸을 땐 그저 돈 많이 버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달걀 반찬 먹고 싶다고 졸라도 먹지 못했던 달걀 반찬을 맘껏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요. 흠... 그런데,,, 그 정도 벌어서는 턱도 없더군요. 어른이 돼보니.

반신불수가 되고부터 공단에서 염탐꾼을 보내 내 상태를 확인했다. 그들이 내 건강상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나의 유병장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나는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간병인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간병인이 없으면 온종일 아내가 병수발을 해야 했다.

“아까 왔다 간 아들이 몇째에요?”
“둘째! 왜?”
“그럼 지금이 아침이에요, 낮이에요?”
“아따, 다들 왜 자꾸 귀찮게 그런 걸 물어봐. 낮이제!”
“……잘 기억하면서 왜 공단에서 조사 나왔을 때는 엉뚱하게 대답했어요?”
“고것은 ……나가 귀찮은께 그랬제. 해주는 것도 없는 것들이 속만 긁어놔. 대답을 잘허면 나으라 더 잘해줘야 헐 것인디, 생각도 못 하는 사람이 되았을 때 잘해줘 봤자 뭐한당가. 고것들은 아주 못된 것들이여.”
아내가 웃는다.

늙어서야 철이 든 걸까요. 엄마의 남편은 아내의 건강을 위해 염탄꾼들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남편은 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아내를 때렸습니다. 늙어서야 미안했던 걸까요. 이제라도 철이 들어 다행인 걸까요. 좀이 성할 때 더 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아내에게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때리지 않으니까, 매달 월급 가져다주니까 잘하는 걸까요? 저는 전혀 잘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겨우 먹고 살 정도의 벌이로 살림을 해나가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옷도 제대로 못 사 입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사 먹는 아내. 또래들이 갖고 있는 장난감과 교구들도 못 사주고 맛있는 것도 못 사주는 내가 과연 좋은 아빠일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 저야말로 철이 들어야 할 텐데요. 홧김에 사직서 던지는 짓 좀 그만 하고 처자식을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할 텐데요. 철이 덜 든 건 소설 속 남편이나 저나 매한가지였습니다.

시인 김은상의 소설. 아니, 그의 실제 이야기를 읽으며 오랜만에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시인답게 문장들이 읽기 편했고 표현들이 아름다워 읽는 즐거움도 한몫 한 이 소설은, 폭력과 가난을 이겨낸 그의 실제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래서였나 봅니다. 우울한 그의 이야기들은 제게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명상의 시간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가난과 폭력 속에서도 이를 이겨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용서가 무언지를 다룬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네요. 그리고 빨강 모자에 대한 이야기는 적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부분을 읽는 동안 너무 많이 울었거든요. 너무 슬퍼서 적지 않으려고 합니다.

“엄마, 나가 커갖고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절대로 장사 못댕기게 헐 것인께,
나가 클 때까장 오래오래 살아야 혀요!”
행상을 나갈 때마다 둘째 아이는 내 목을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정말? 내가 효자 아들을 낳았네.
그래! 꼭 돈 많이 벌어서 엄마랑 함께 오래오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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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왜 이렇게 힘겨워야 하는가 싶은 소설이네요 ㅠㅠ
아버지,엄마를 차례로 암으로 먼저 보낸 선배의 어린 아들이 떠오릅니다.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

삶이란,,, 무엇일까...
답을 찾았을 땐 이미 백발이 돼있을 것 같아요.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너무 뭉클하고 씁쓸내요...애휴...삶이 뭔지 이럴때마다...

에휴... 정말 산다는 게 뭔지...

osyvv님이 naha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osyvv님의 개기자 스팀 가입 100일 잔치 (feat. @ned)

anzi ludorum choim kindbreeze mimistar joyvancouver naha
안녕 친구들.
미안해 ㅜㅜ 내가 네드 옆에 서보긴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개인 질문을 할 수 없었어 ㅜㅜ 내가 궁금한 것도...

잘 읽었습니다. 70.80. 시대 이야기네요. 깊이 공감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네. 딱 그 쯤 이야기 같아요. 그땐 왜 그리도 다들 가난했는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일교차가 큰 날씨에요 감기조심하세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네요^^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네요. ^^

꾸욱.들렸다가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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