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출간기] #03. 누가 내 책을 읽지?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book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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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책을 읽지?


오늘은 아주 중요한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자, 내가 책을 냈다 치자. 책 한 권을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 비루한 글솜씨로 그게 가능은 할지, 과연 어느 출판사가 선뜻 출간을 해줄지,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책이 나왔다고 생각해보자. 내 책을 누가 읽을까?


아니, 시작부터 팩트폭행을 하다니. 내 책은 써봤자 아무도 안 읽을 거라는 말인가? ㅠ.ㅠ


잠깐. 눈물을 거두고 진정하시라. 이건 "내 책을 누가 읽을까? 아무도 안 읽어. 이걸 누가 읽겠어?" 하고 자학하라고 던진 질문이 아니다. 이 질문은 내가 쓸 책의 독자층을 파악하라는 얘기이다.

지난 시간에 책을 집필하기에 앞서 우선 책의 목표를 정해야 하며, 원고의 큰 틀을 잡은 뒤 책의 설계도격인 목차를 미리 만들어놓는 게 좋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설계도를 만들려면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도서관을 새로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도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려면 계단 옆에 경사면을 반드시 설치해야 하고, 남녀 화장실 외에 장애인용 화장실도 큼직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면 아이들용 책걸상을 놓는다든지, 눈높이에 맞춰 낮은 선반을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책은 어떨까?

책을 읽을 독자층에 따라 책의 설계도도 달라져야 한다. 어른을 위한 책인지 아이들용인지, 초보자를 위한 것인지 고수들을 위한 심화학습용인지, 20대 젊은 층이 타겟인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년이 타겟인지. 거기에 따라 책의 목표도, 책의 내용과 목차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중요하다. "누가 내 책을 읽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글을 쓰기 위해 "내 안의 목소리"를 찾았다면 이젠 독자에게 넌 누구니?라고 물어야 할 차례다. 당신의 책을 읽을 독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궁금해하는 대학원생들인가? 기본적인 개념부터 설명해줘야 하는 초보들인가? 그들은 이 책을 교양서로 가볍게 읽을 것인가, 지식을 얻기 위한 교재로 볼 것인가? 그들이 이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사진과 더 많은 시각 자료인가, 한국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해외 논문의 상세한 해설인가?

집필을 할 때 독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책을 많이 팔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꺾고 영합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독자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써야한다는 얘기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이왕이면 자기 책을 누가 읽을지 독자를 미리 파악해보고, 그들이 가장 필요로할 만한 내용으로 책을 채우는 게 좋다. 하다 못해 예를 들어 설명을 할 때도 초등학생이나 청소년 대상의 책에 군대 얘기를 쓰는 것보다 학교 생활이나 친구와 관련된 예를 드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내 책은 누가 읽을까?


작가가 쓰고 싶은 책 vs. 독자가 원하는 책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독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건 이왕이면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집필을 하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초보인 독자들을 위해 기본적인 개념 설명을 추가한다거나, 더 많은 예시를 든다거나, 자료를 보기 좋게 표로 정리해서 넣어준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이것은 무조건 잘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 책의 기획부터 모든 걸 다 바꾸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 작가가 쓰고 싶은 책을 쓰는 것과 독자가 원하는 책을 쓰는 것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하고 가는 것도 좋을 듯싶다.


독자에 따라 책의 목표나 내용, 목차가 달라져야 한다고? 난 그럴 수 없어! 내 책을 읽으려면 이 정도 기본 개념은 알고 있어야지, 어떻게 책에서 모든 걸 다 설명해줘? 이건 먹기 좋게 떠먹여주는 책이 아니라고. 최근 트렌드까지 책에 넣어달라고? 그건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잖아. 난 그런 거 싫어!

내 책 읽고 싶으면 읽고, 읽기 싫으면 말라고 해. 난 남을 위해 내 책을 바꾸진 않을 거야. 독자에 맞춰 내 책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 책이 읽고 싶은 사람들이 내 책의 독자가 되면 되는 거지! 우선순위가 바뀌었잖아!


혹시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소설과 같은 문학이 아니더라도 책은 온전히 작가의 작품이다.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산물이다. 여느 예술가가 다 그렇듯이 자신들의 책에 대해 참견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작가들이 많다.

책 내용에 대한 고유의 결정권을 침해받았다고 불쾌하게 여기는 작가들도 있고, 자칫 지나치게 독자만을 생각하다 보면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을 쓰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 잘 팔릴 만한 내용"만을 쓰게 될까 우려하고 경계하는 작가들도 있다.

이부분을 약간 과장해서 이분법적으로 보자면 '독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쓰고 싶은 글만 쓴 책'과 '현재 유행에 맞춰 잘 팔릴 것 같은 내용을 기획해서 쓴 책'으로 나눌 수 있다.(물론 현실에서는 딱 두 가지로만 나뉘지는 않는다.) 둘 중 어느 하나를 무조건 나쁘다고 손가락질하기는 어렵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글에 자부심을 가질 작가를 탓할 수도 없고, 자본주의 사회인 만큼 판매를 위한 기획이나 마케팅을 나무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많이 팔기 위해 상품을 만드는 세상이니, 책도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한다면 책을 팔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들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책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갈등이 될 것이다. 그냥 자비로 책을 내고, 책이 얼마나 팔리든 신경쓰지 않는 경우라면 상관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비용을 지출해서 책을 내는 경우, 혹은 작가를 전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라면 책의 판매량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두 가지 상충된 입장이 내 안에 공존하게 된다.


  1. 난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쓰겠어. 손에 잡히지도 않는 독자를 대상으로 놓고, 독자는 이러이러한 책을 좋아할 거라고 짐작해서 그들 맘에 들만한 책을 쓰고 싶지는 않아.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쓰더라도 그 책을 읽고 싶어하고 그 책이 꼭 필요한 독자들이 있을 거야.

  2. 책은 읽히기 위해 쓰는 거야. 어차피 누군가가 읽을 책이라면 나보다는 그 독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 꼭 많이 팔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들이 원하는 책을 만들어주면 그들도 나도 다 좋은 거잖아?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두 가지 입장 중에 어느것이 항상 옳다거나 항상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아, 물론 마케팅 부서에서는 2번째 입장에서 조언을 해줄 것이다. 작가가 쓰고 싶은 책을 썼는데 그게 마침 독자들의 수요와 맞아 떨어져서 잘 팔린다면 가장 좋겠지만.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재미있는 글이 좋다. 만약 내가 책을 써야 한다면 내가 읽어도 재미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러니 당연히 토익 영어나 토플 영어와 같은 시험 영어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됐다. 그런 책은 시험 유형을 분석하고, 문법을 설명해주고,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서 푸는 요령을 알려주는 게 중요한데, 그게 내게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영어 원서 읽기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 원서 읽는 데 도움이 되는 영어 단어들을 정리해서 알려주고 설명해준다면 독자들도 보다 빨리, 그리고 쉽게 원서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영어로 소설읽기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제안서를 냈는데, 윗선에서 까였다. 영어 분야에서 잘 나가던 이름 있는 선배는 이렇게 충고해줬다.

  • 책을 팔려면 수요가 많은 층을 공략해야지.
  • 토익이나 토플 같은 시험 영어가 수요가 많아.
  • 영어는 늘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초보자를 위한 책을 써야 잘 팔려. 원서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내고 싶다고? 영어로 책을 읽으려면 고수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 그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써봤자 얼마나 팔리겠어?
  • 초보자, 왕초보를 노려야 한다니까.
  • '영어 글쓰기'보다 '회화책'이 더 잘 팔려. 회화 표현을 정리한 책을 내 봐.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돈이 되는 조언이다. 수요에 맞춰 기획한 책보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을 내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말이다.


허무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을 책을 쓰고 싶다.


현실에서는 이 방식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잘 팔고 싶어서 기획을 하고 난리를 쳐도 책의 판매는 지지부진하기 일쑤다. TV에 나오는 인기인이나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이라면 모를까, 보통 글쟁이들의 판매부수는 거기에서 거기다. 한국인들 연평균 독서량이 9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 달에 한 권도 안 읽는다. 그런 그들이 맘먹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게 된다면 당신 책이 아니라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의 책을 사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사실 우리 같은(?) 일반 글쟁이들의 경우는 독자를 위해 기획된 책을 써도 판매량에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반면에 그냥 쓰고 싶어서 쓴 책이 독자의 호응을 얻어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책을 쓸 때 독자를 어느 정도나 고려할 것인가, 애초부터 특정 독자층을 노린 책을 기획할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작가가 결정할 일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게 되면 가뜩이나 안 팔리는 책이 잘 안 팔려서 참 허무할 것 같다. 아무도 내 얘기에 귀기울여주지 않고, 공감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반면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잘 팔릴 것 같은 글만 쓰게 되면 영혼 없는 글을 쓴 것 같아 참 부끄러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허무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을 책을 쓰고 싶다.
역시, 나는 욕심쟁이. 우훗훗!




영어때문에 스트레스받으시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허무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을 책을 썼어요. 바로 전자책 <영어 잘하고 싶니?>랍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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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özler kalbin aynasıdır....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연말이라 글을 많이 못 쓰고 있네요. ㅎㅎㅎ
조만간 4편 들고 오겠습니다! :)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는데 반응이 폭팔적인게 제일 이상적인 거겠죠?ㅋㅋㅋ

그게 가장 이상적인데 이름 없는 작가들에겐 거의 로또급이라..
하지만 누군가는 항상 로또에 당첨되니 희망을 가져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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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잘 되는 공식 같은 게 없으니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 책은 정말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일단 잘 써야겠지만 잘 쓴다고 많이 팔리는 건 아니니까요. ㅎ

맞아요. 잘 쓴다고 많이 팔리는 게 아니고, 많이 팔린다고 걸작인 것도 아니고.
사실 이런 고민해봤자 판매량에 별 영향도 없는 무명작가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네요. 누가 알아주진 않아도..

수요와 공급 예측이 착착 맞는다면 정말 좋을것 같습니다.
대박나세요.

그렇게만 된다면 참 좋겠죠?
고맙습니다. :)

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군요 ^^ 작가로서 어떻게 글을 대해야 하는지 잘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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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bree1042님 곰돌이가 4일치 모아서 2.0배로 보팅해드리고 가요~! 영차~

ㅋㅋㅋ 곰도리 가계부 잘동작하는군요. 4일동안이나 보팅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곰돌이가 방문해주니 저도 기분 좋습니다. :)

고마워요, 곰돌군! :)

허무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을 책.
브리님의 열정이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

그 책 제가 읽고 있습니다 ㅎㅎㅎ
이제 쪼끔 남았네요 ㅋㅋㅋ 사실 전자책이 처음 사봤는데 틈틈이 볼 수 있어서 좋은것 같아요 ㅎㅎㅎㅎ

저도 처음엔 전자책이 어색했는데 볼수록 장점이 많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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