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을 보며 : 그 지향점은.

in #kr-art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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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이것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성추행에 대한 고발이 아니다.

무시 받고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던 약자들이 자기 소리를 내어 자신을 괴롭혔던 강자가 행했던 짓을 폭로하는 긴 폭로전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동안 부당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해야 했던 사회 곳곳의 약자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

권력을 쥔 사람들은 늘 어떤 식으로든 다수의 약자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약자들을 분열 시키거나 경쟁 시키고, 파벌과 라인을 만들어 자기 그룹에 속하지 않은 파편화된 약자들을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이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욕망, 두려움을 가장 훤히 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인간 심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바로 강자이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을 단순히 남녀 간의 성폭행 문제가 아닌, 이와 같은 강자와 약자의 구도로 한 번 생각해 보자. 연극계의 강자는 약자인 다수 배우들을 특정 극단에서 일하게 해줄 수도 있고, 캐스팅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약자들은 한정된 극단 자리와 캐스팅 역할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 때문에 강자의 요구나 요청을 그리 쉽게 거스를 수 없다. 누군가 강자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한다면, 강자는 다른 약자들에게 그 약자를 제명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약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그 약자를 제명시켜 버린다. 경쟁자를 한 명 제거하고, 강자의 그와 같은 명령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강자의 눈도장을 한 번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자의 무리한 부탁과 요구에 응한, 무명 배우에 해당하는 약자는 그로 인해 여러가지로 피해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강자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서 일을 하고 배역을 따낼 수 있다. 그런 기회를 발판 삼아 그 약자는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연극계의 또 다른 강자가 된다. 새로 강자가 된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회상하면서, 선임 강자의 무리한 요구에 응한 시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을 강자로 만들었던 것은 팔 할이 선임 강자의 부당한 요구에 응했기 때문이었다는 인과론을 받아들이게 되어, 새로운 강자는 다수의 다른 약자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괴롭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물고 물리는 관계가 하나의 관행이 되어, 이제 이 연극계에 들어오는 모든 약자들은 이런 관행이 성공을 위해 치러야 하는 신고식과 같은 것 쯤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신고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연극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신고식에 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입은 정신적 상처를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꼭 얻어야 할 명예 훈장 쯤으로 여기게 된다.

이 때부터 이 연극계에 속한 소수 강자의 부당한 부탁과 요구는 성공의 길을 향한 티켓으로 세탁되어 돌아다니게 된다. 이 티켓을 공증해 주는 것은 더이상 소수 강자가 아닌, 다수의 약자들이다. 이제 이 업계에서 강자의 잘못이란 없어지게 되고, 단지 관행을 따르는 열정 있는 약자냐 아니냐의 판가름 기준만이 남게 된다. 약자들 스스로가 약자를 괴롭히는 문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해 행해지는 여성 성추행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여러가지 형태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관행이 문화처럼 남아 있다. 미투 운동을 남녀 구도로 한정 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 그것은 명확히 인지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괴롭힘을 당하는 약자들 스스로가 강자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장에게 욕을 먹고 폭력을 당해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승진을 한 사람들은 결국 사장을 옹호하게 된다. 그러면서 윗사람의 폭력에 저항하는 청년들을 열정 없는 사람들로 매도한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미투 운동은 받을 거 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뒤통수 치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미투 운동이, 단순히 성추행 했던 권력 있는 남자들을 고발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침묵하는 다수 약자들이 반성해야 할 길고 긴 운동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약자들은 강자들이 쳐놓은 올가미에 스스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일개 개인이 저항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서? 인간의 이해관계와 욕망을 통제하고 그것들을 채워줄 권한을 쥔 사람들에게 한 명의 약자인 개인으로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문화계의 거장들이 수많은 여성 후배들을 성추행 하고 있을때, 거장 곁에 있던 다른 약자인 남자들과 여자들은 무엇을 했나? 왜 그들은 침묵해야만 했는가. 사실은 그들 역시 공범이 아닌가. 그런 관행을 하나의 정상적인 문화로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일조한 공범이라고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한 명의 개인이지만 그런 문화를 깨기 위해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모여 토론하고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결국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비합리적인 권위와 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미투 운동이 점점 더 범위를 넓혀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받은 부당한 피해를 고발하고, 더 나아가 이것이 단순히 강자에 대한 고발이 아닌, 침묵하는 똑같은 입장에 선 약자들의 반성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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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도 언급한 부분이지요. 그자리에 법무부 장관에 다른 선후배 검사도 있었다고. 저는 그 말에 더 경악 했습니다. 본인의 일인데도 말을 못하는 분위기라면 그런 강압적인 위계 아래에서 다른 이를 위해 대변한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거라 아무리 이해을 하려 해도, 정말 너무합니다 사람들 ...

한국은 권위주의 청산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봅니다. 경제 자체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기업과 기업 구성원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선 일단 권위주의가 사라져야 하니{까..

이제는 미투운동을 계기로 강자에 의해서 약자들이 지배 당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온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정말이지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저 또한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동참하려고 합니다~

미투 운동은 결국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문화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rextoys 님의 글을 통해 미투사건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네요. 맞습니다. 미투사건은 단순히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 폭력을 넘어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문제였는데 저는 단순히 남성/여성의 구도로만 생각했던것 같아요.
다행이도 많은 사람들이 미투 운동을 응원하는 모습속에서 우리나라가 약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것 같아 희망을 느낍니다. 미투운동을 통해 권력자들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약자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사회분위기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무엇보다도 다수에 해당하는 약자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양 역사는 늘 기존의 약자가 새로운 기술과 무기 개발을 통해 기득권을 뒤집어 엎는 과정이었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이번에 기득권 층에서 많은 부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는 것 같아 느끼는게 많네요

네. 저도 시간이 많이 지나면 그만큼 더 나은 방향으로시대가 변할 것이라 생각해요

우월적 지위와 권력, 권위를 이용한 성추행, 성폭력, 그밖에 모든 약자가 겪어야 했던 불편한 이야기. 이번 미투 운동의 확산을 통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미투운동을 응원하는 한 개인으로 운동이 좀 더 넓게 확산되어 전사회적으로 약자가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발전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점점 더 좋은 사회가 되겠죠?

비합리적인 권위와 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이런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문화들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그런 것에 대한 대안으로 미투 운동은 적절한 것 같아요. 이전까지 내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나옴으로써 사람들이 주의하게 되었어요.

약자는 모두가 함께 죽어 지내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길 기대해 봅니다.

맞아요 용기내서 진실을 말하고 사과를 받으려고 하는데 동조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모른척 하고 있으면 더더욱 속에서 열불이 날 것 같아요..! 이게 불이라면 결코 진화되지 않고 활활 타서 다 태우고 새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좋은 비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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