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제도는 누구를 비평가로 만들었는가 (1)
공룡이 사라졌잖아. / 어.
멸종했잖아. / 멸종했지.
멸종이라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실은 천만년이 걸렸대.
그랬대? / 천만년에 걸쳐 서서히 사라진 거야.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221쪽.
문학의 위기, 그중에서도 비평의 위기에 대한 담론은 오래도록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문학계에서 오래된 속담처럼 쓰이는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신경숙 표절 파동과 같이 비교적 근래에 비평이 처한 위기를 보여주는 사건과 징후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 현실을 방증하듯 ‘비평의 종언’에 대한 우회적인 진단이나 직설적인 선언이 매해 발표되는 비평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종류의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지경이다. 최소한 비평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비평 그 자체의 성과보다는, 위기에 대한 진단과 선언을 향해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각주1: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몇 년간 한국문학 비평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글이 오혜진의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문화/과학』, 2016 봄호)이라는 점이다. 오혜진이 받았던 주목에서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비평의 종언에 대한(주류 문학장의 외부에서 들려온) 강렬한 선언 이외에 논쟁과 탐구의 대상으로 떠오른 비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상 기성의 비평들이 담론 생산의 역량을 크게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비평의 공백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비평의 위기에 대한 선언이 수십 년에 걸쳐서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평이 사라지지도, 그 재생산이 멈추지도 않았다. 오늘날의 젊은 비평가들은 위기를 진단하는 외침이 울려 퍼지는 중에 비평을 시작하거나 대학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문학을 읽기 시작한 경우들이 대다수다. ‘멸종’하리라는 비평은 사라지지 않고, 그 ‘멸종’의 와중에도 새로이 비평가로 문단에 편입되는 이들이 있다. 위기에 대한 진단과 제도적 재생산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비평은 마치 천만년에 걸쳐서 멸종했다는 공룡과 비슷한 처지처럼 보인다.
지난해에 한 보수일간지의 문예면에서는 오랜만에 문학비평을 다룬 기획기사를 냈는데 『문학동네』,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 『현대문학』라는 4대 문예지 모두가 평론부문 당선자가 없었다는 사실(각주 2: 「4대 문예지 “평론부문 당선자 없습니다”」, 《조선일보》, 2017.09.01. 그해 《조선일보》에서 문학비평을 주요 소재로 하는 기사는 단 두 편뿐이었는데, 다른 기사는 ‘문학실험실’에서 ‘문학 비평의 반성’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 대한 것이었다. 모두 비평의 위기에 대한 내용일 뿐 비평의 담론이나 문학적 생산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다른 일간지들에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이 비평이 처한 위기를 보여주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이제는 비평은 등단제도를 통해서 다음 세대를 배출하는 재생산의 기능조차 상실해가고 있는 것인가? 최근 10년 동안 그 4개의 문예지를 통해서 등단한 비평가는 총 19명(각주 3: 2008~2017년까지 창비 신인평론상 수상자는 7명, 문학과사회 신인상은 4명, 문학동네 신인상은 4명, 현대문학 평론부문 신인추천은 4명이다. 이중 2명은 다른 문학상을 통해서 이미 등단한 경우였다.)으로, 수상자를 배출한 경우가 절반이 되지 않는다. 4개의 문예지가 모두 신인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지난 10년간 2017년이 유일하지만 1개 문예지 이외에 수상자가 없는 경우도 세 번 있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수상자의 수가 감소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문학동네 신인상의 경우 1990년대에 평론수상자가 단 두 명에 불과하며 전체 기간으로 봐도 수상자를 배출한 경우는 절반 이하다. 다른 문예지에 비해 창비 신인평론상이 비교적 수상자가 많았을 뿐, 문예지 신인상을 통해서 등단하는 평론가의 수는 많지 않다. 같은 기간 동안 『세계의 문학』, 『실천문학』, 『작가세계』 같이 신인평론상을 운영했던 문예지들의 수상자는 그 수가 더 적었다.(각주 4 : 2017년에 잠정 휴간해서 신인상을 진행하지 못한 『작가세계』는 총 3명, 2017년에는 평론상 모집을 받지 않은 『실천문학』은 4명, 2015년에 폐간된 『세계의 문학』은 단 1명뿐이다. 이중 『작가세계』에서 2015년에 수상한 박정희는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한 이후 재등단한 사례다. 『세계의 문학』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총 9회에 걸쳐 신인상을 진행했으나 이 중 평론부문 수상자는 단 한 명이다.) 반면에 같은 기간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한 비평가의 수는 문예지를 통한 경우보다 몇 배나 되었으며(각주 5: 이 글에서는 2008~2017년에 언론사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을 통해서 등단한 비평가들의 사례를 분석한다. 신춘문예의 경우 《경향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로 총 7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며, 문예지는 『문학동네』, 『문학과 사회』, 『세계의 문학』, 『실천문학』, 『작가세계』, 『창작과 비평』, 『현대문학』으로 총 7개 문예지 문학상을 대상으로 한다. 같은 기간 신춘문예의 평론부문 수상자는 66명인데 반해 문예지 수상자는 27명에 불과하다. 주요 문학상 중 대산대학문학상은 분석에서 제외했는데 대학문학상이라는 성격이 수상자 평균 연령이나 학력을 분석할 때 결과를 왜곡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수상자의 수에서 어떤 변동도 없었다. 문예지가 폐간하거나 평론 응모를 받지 않은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단을 거치는 비평가의 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비평의 위기는 새롭게 등장하는 신인평론가의 수를 통해서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 비평이 위기일지언정 비평가의 재생산은 계속되고 있다.
등단제도를 통한 비평가의 재생산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해서 제도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소영현은 ‘비평 주체의 재생산 시스템’이 획일화된 전공과 학연으로 연결된 ‘동종교배적 성격’을 강화해가고 있다고 비판한다.(각주 6 : 소영현, 『올빼미의 숲』, 문학과지성사, 2017, 52쪽) 비평이 독립적인 장으로 기능하지 않고 대학의 학문연구와 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2000년대에도 있었다. 오창은은 2000~2008년 사이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중앙일보》의 신춘문예 당선자 33인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전원이 대학원생 이상의 학력이며 그중 박사과정생 이상이 29명, 국문학 전공자가 30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비평이 ‘학문적 후광을 강화’하기 표식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각주 7 : 오창은, 「비평의 자유와 살림의 비평」, 『오늘의 문예비평』 여름, 오늘의 문예비평, 2008, 88~89쪽.) 비판은 공통적으로 등단제도가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전문 비평가를 양성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으로 모인다.
소영현이 지적하듯이 “독자들은 소설 말미에 붙은 ‘해설-비평’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출간된 비평집이 독서 목록에서 배제”되며 비평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과 비평가의 동종교배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비평이 학문화되는 양상, 더 정확히는 ‘국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한 것과 비평이 사회적 효용을 상실해간 것 사이에 그리 명료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국문학’화된 비평의 영향력 감소와 국문학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학문적 영향력의 변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문학비평이 축소된 자리를 대체할 다양한 비평 영역들에 대한 발굴이나 비판적 논의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각주 8 : 게임비평이나 기계비평 같이 뉴미디어의 비평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인문학협동조합의 사례를 그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를 진행하는 연구자 중 상당수가 국어국문학과 출신들이다.) 비평의 국문학화가 곧 비평의 위기를 낳았다고 단정하기에는 실상 오늘날의 비평에 대한 비판과 대안에 대한 논의 역시도 국문학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등단제도와 비평의 위기 사이에, 학문으로의 종속이라는 현상 이외에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등단제도와 비평의 위기에 대한 그동안의 비판들은 상당 부분 인상비평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문단의 내부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공감할 수 있지만 정확한 양상을 짚어내기 위한 실증적 작업은 부족했다. 이 글에서는 비평의 위기를 진단하고 논의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서 비평 등단의 양상에 대해서 실증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평균적인 비평 등단자의 모습은 서울의 주요 4년제 대학의 국문과 박사과정생으로 한국 소설 작가론으로 신춘문예에서 21 대 1의 경쟁을 거쳐 선발된 33세의 남성일 것이다. 소영현과 오창은이 지적했듯이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문학교육을 받은 국문학과 출신이 비평 등단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2008~2017년 사이 14개의 문학상을 통해서 등단한 비평가는 총 90명(각주 9 : 게임비평이나 기계비평 같이 뉴미디어의 비평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인문학협동조합의 사례를 그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를 진행하는 연구자 중 상당수가 국어국문학과 출신들이다.)으로 국문과 그 계열인 국어교육, 한국학 전공자가 66명으로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한다. 그다음으로 문창과 계열이 11명이며 비교문학이나 해외문학 전공자가 5명, 철학과 미학, 사학과 같은 인문학계열 학과가 3명, 기타 학과가 2명이며 2명은 전공을 표기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각주 10 : 상세하게는 국문학 계열은 국문과 60명, 국어교육과 2명, 어문교육학과, 2명, 한국학 2명이며 문창과 계열은 문창과 9명, 문학예술학과 2명, 외국문학은 독문과 3명, 노문과 1명, 영문과 1명, 인문학계열 전공은 철학과 1명, 미학과 1명, 사학과 1명, 기타는 국제통상학부 1명, 건축과 1명이다.) 국문학과와 문창과, 외국문학 전공자가 총 82명으로 전문적으로 문학교육을 받은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등단 시기에 이들의 학력은 박사과정 이상이 54명으로 가장 많고, 석사과정 이상 박사과정 미만이 22명, 학부 재학 이상 석사미만이 8명, 학부 중퇴가 1명이며 학력을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은 경우가 4명이나 이들 모두 석사과정 이상이었다.(각주 11 : 박사학위 소지자가 12명, 박사수료 19명, 박사과정 23명, 최종학력인 석사인 경우가 7명, 석사수료 2명, 석사과정 13명, 학사가 4명, 학부 재학이 4명, 학부 중퇴 1명, 확인이 되지 않는 경우가 4명이다.) 박사과정 미만인 이들 중에서 대학원이나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상당수일 것임을 감안하면 비평가들은 대부분 최종학력으로 박사학위를 소지하게 될 것이다.
비평 등단자들의 인적사항에서 남성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나 평균 연령이 33세(각주 12 : 총 90명 중 남성이 50명, 여성이 40명이며 등단 당시 연령은 20대가 34명, 30대가 43명, 40대가 9명, 50대가 2명,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1명이다.) 가량이라는 점은 시와 소설 같은 다른 장르와는 구분되는 지점이지만 그 자체로 흥미로운 부분은 아니다. 등단 양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국문과 집중이나 고학력과 같이 비교적 예측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지방대학 재학생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과 지방대 학부 출신들이 서울 주요 대학의 대학원에 편입된 후에 당선됨으로써 등단이 대학과 구분되는 대항적인 권위의 근거가 되어주는 게 아니라 학벌 서열의 구조 속에 편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등단자의 절반 이상은 서울대, 고려대, 동국대, 경희대, 중앙대, 이화여대, 여섯 개 대학에 집중되어 있다. 이 여섯 개 대학 출신은 총 59명이며 이중 10명 이상의 등단자를 배출한 네 개 학교인 경희대, 서울대, 고려대, 동국대에서만 46명이다. 이들 이외에 2명 이상이 등단한 학교는 서강대, 인하대, 연세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명지대, 한양대로 모두 서울 소재 4년제 대학들이다. 지방대학의 경우 계명대, 동아대, 전북대, 조선대 이 단 네 학교에 불과하다. 해외 유학파는 총 3명이다.(각주 13 :대학별 인원은 경희대 13명, 고려대 11명, 동국대 11명, 서울대 11명, 중앙대 7명, 이화여대 6명, 서강대 4명, 인하대 4명, 성균관대 3명, 숙명여대 3명, 연세대 3명, 명지대 2명, 한양대 2명, 계명대 1명, 동아대 1명, 숭실대 1명, 전북대 1명, 조선대 1명이다. 외국 대학은 라이던대 1명, 러시아인문대학 1명, 파리 8대학이 1명이며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가 1명이 있다.)
서울권 대학 등단자 중 학부가 타대학인 경우는 총 16명이며 이중 경기도와 지방소재 대학 출신이 절반인 8명이다. 이는 최종학력 기준으로 비수도권 대학출신 등단자 전체 인원에 두 배에 달한다. 서울 주요 대학들에서 비평가 배출을 사실상 전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서울권 대학들의 인력들도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비평가가 문단에서 만나는 인맥들은 서열화된 대학의 학맥과 겹쳐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일차적으로는 비평가 대다수가 연구자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비평가와 연구자라는 이중 정체성과 그로 인해 학문적 성격의 비평(각주 14 :흔히 이론의 과잉으로 진단되는 비평의 학문화는 비평가가 연구자로서 학습한 이론의 활용과 관련되어 있는데 평론가 박인성은 최근의 비평들에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이론이 곧장 도입되는 글쓰기가 아주 작은 비평적 모듈로서 작동하고 있는 케이스를 보게 된”다고 지적한다. 강동호 외, 「우리 세대의 비평」, 『문학과 사회 – 하이픈』, 문학과지성사, 2016년 가을호, 84쪽.)이 두드러지는 현상은 비평과 대학 사이의 결속을 강화했고 이는 대학의 학벌구조가 비평에도 거의 그대로 반복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적지 않은 대학원이 등단을 위한 학습의 장소가 되어 비평 등단을 요구받는 상황(각주 15 : 오창은, 위의 책, 88~89쪽.)도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으리라 추정해볼 수 있다. 비평과 대학의 결합은 비평을 독립적인 문학장이 아니라 대학에서 연장된 공간, 특히 적지 않은 비평가들이 대학에 자리 잡은 이후 개인적·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현장 평론에서 멀어지는 현상까지 고려한다면 일시적으로 거쳐 가는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평가들이 학계의 영향력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평이 독립적으로 장이 아니라 대학의 확장된 영토라고 한다면 학계와 독립적인 비평가의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