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글의 논리적 정합성과 문체가 뛰어난 책으로 이 책이 추천돼 있다. 호기심에 읽어 봤으나 논리적인 전개가 생각보다 따라 가기 쉽지 않았다. 펭귄클래식 시리즈에서 번역된 책으로 봤다. 번역 자체는 훌륭해 보이지만, 역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밀의 문체 자체가 좀 까다로운 구석이 있다. 잠깐 정신 팔면 내용을 못 따라갈 정도로 출퇴근길에 읽기에 적합한 책은 아니다.
“비록 차이들이 세상을 더 좋게 하지는 않는다 해도, 또 그들이 보기에 어떤 차이들은 세상을 더 나쁘게 한다 해도, 차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도록..(후략)”
밀이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이 책의 핵심은 내가 이해하기로 ‘차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이다. 자유주의 사상의 선구적 저작으로 이 책이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개인의 사상이나 행동이 타인에게 명백한 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그의 사상이나 행동을 법적으로 규제할 아무런 철학적 근거가 없음을 역설한다. 유시민이 전두환 정권하에서 이 책을 읽고 얼마나 힘과 위로를 얻었을지 공감이 된다.
하지만 ‘타인에게 명백한 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이라는 조건이 너무 추상적이라 느꼈는지 밀 또한 책의 후반부에 다양한 예를 들어 개인의 자유를 규제해야 할 때와 그렇지 말아야 할 때를 예증한다.
구체적인 수준의 예를 많이 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복잡한 현실적 문제들에 밀의 주장을 적용할 때는 난제들이 많이 발생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노예로 스스로를 파는 것은 법적인 제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가 단 한 번의 행동을 끝으로 미래의 어떠한 자유의 행사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자살에 대입해 보자. 자살하려는 사람을 막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자살이 개인의 자유라는 근거 자체를 스스로 없애 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자살할 수 있는 자유라는 말이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할 때 자살할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은 밀이 그토록 강력히 옹호하는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이들은 자살에 관해 “그가 그렇게 선택한 것이 그에게 바람직한 것이거나 최소한 견딜 만한 것이라는 증거”로 볼 것이다. 입장에 따라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절대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회적 개입에는 다수의 횡포라는 혹은 소수의 압제라는 주관성이 개입할 여지가 늘 존재한다. 이에 자살할 수 있는 자유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자살하려는 사람을 막기 위해 사회적 개입을 한다 하더라도, 이 개입의 정당성을 “논박하고 반증할 자유가 완벽하게 존재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판단에 대한 모든 힘과 가치는 그것이 잘못된 것일 때 올바르게 고쳐질 수 있다는 그 유일한 속성에 달려 있기 때문에, 판단을 올바르게 고치는 수단이 항상 준비되어 있을 때에만 판단에 신뢰를 둘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했던 사람 중 한 명인 소크라테스조차 자신의 생각의 타당성을 검토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범인은 말할 것도 없다는 내용의 말을 책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실상은 맹목과 아집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돌아보게 된다.
“자기 쪽 주장만 아는 사람은 그 주장에 대해 거의 모르는 것이다.”
이 책이 자유주의의 사상적인 토대가 되었다 하는데, 정치철학적인 부분은 잘 모르겠고, 실상 정부의 역할에 관한 논의 자체도 이 책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책 말미에 짧게 쓰였을 뿐이다. 이런 부분보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과학적인 가설 검증 방식을 통해 어떤 주장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이 문명의 진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는 책으로 읽힌다.
저도 글쓰기 책을 읽고, 자유론을 읽고싶었는데!! 읽으셨군요.
쓰신 서평을 읽으면서 자유론 다읽은것 같아요! ㅋㅋ
내가 하고싶은걸 할 수 있는 자유.
차이가 많을 수록 좋다.
자신의 생각의 타당성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지않고 듣는자세.
세번째는 꼭 기억해야겠어요. 저도 책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