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in Steem Book Club4 years ago (edited)

5년 전쯤에 이 책의 열풍이 한 번 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각종 매체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것 같은데, 마케팅 때문인지 책 내용이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책 다 읽고 나니 저는 후자의 지분도 상당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애들 잘 때 틈틈이 봐서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그리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책은 아닙니다. 다만 상식에 배치되는 이야기를 독자가 수긍할 수 있게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지적인 재미의 요소가 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권석만 선생님께서 쓰신 책의 일부 꼭지로 나와 있는 것을 읽은 게 다인지라 잘 모릅니다. 이 책에서 아들러의 원래 논점이 얼마나 뚜렷하게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한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의사결정에서의 결단 있는 선택이 중요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인지치료나 실존치료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프로이트의 인과론을 거부하며 목적론을 지향하는 부분이 핵심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과거의 어떤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보는 단선적인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이 현재의 나를 전부 결정한다고 프로이트가 생각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저자가 철학하는 사람인데 너무 대중적인 눈높이에 맞춰서 단편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그 영향력에 매몰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으로 한걸음 나올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변할지 말지는 결국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며, 저자도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는 격언을 자주 인용합니다.

변하지 않겠다는 것도 선택입니다. 즉, 과거의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현재 내 상태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이제까지의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것은, 저자에 따르면 그 자체가 하나의 선택일 뿐만 아니라 목적이 있는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이라는 것이 예를 들어 책임의 회피가 될 수도 있고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프로세스일 때가 많아 본인도 보통은 잘 모릅니다. 어떤 행동, 어떤 삶의 양태가 지속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와도 통하는 점이 있으나 프로이트와 달리 그 이유를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찾는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 같습니다.


인간의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100% 대인관계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 또한 아들러의 이론에 기댄 저자의 주장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관심과 인정을 얻기 위한 지나친 노력으로 인해 자기와 타인의 적절한 경계가 확립되지 못 하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

경계 확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제목에서처럼 미움받을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헛된 시도들을 하는 가운데 정작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어떤 측면을 좋아하든 말든 그 부분을 스스로 수용할 수 있다면 이러한 헛된 시도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즉, 인정받으려는 과도한 노력은 자기수용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죠. 이에, 자기-타인 경계 확립을 위해서는 자기의 못난 측면들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들조차도 수용하려는 태도가 중요해집니다. 이럴 수 있을 때라야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살려고 애쓰지 않게 됩니다.

이 때부터는 다른 사람이 그걸 원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에 맞춘다, 내가 맞췄으니 다른 사람은 내게 관심과 인정을 줘야 된다, 관심과 인정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그것을 선택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상과는 다른 타인의 반응이 오더라도 억울해 하는 것은 모순됩니다.

타인의 반응은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타인이 내게 어떻게 반응하든 간에 타인을 신뢰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타인 반응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를 수용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온전한 타인신뢰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주체적인 선택과 미움받을 용기, 타인신뢰는 맞물려 돌아가는 기어 같은 것이라 어느 하나가 빠져서는 각각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부분이고요. 아들러 이론에서 이것들이 향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사회공헌이라고 합니다.

실제적/객관적으로 얼마나 공헌했는지가 중요하다기보다 주관적으로 지각하는 사회기여의 정도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직장인이든 주부든 간에 내가 다른 사람의 안녕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정도가 클수록 자기수용의 폭이나 강도도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다시 더 크고 강한 타인신뢰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선순환이고요.

직업의 차원에서 보면, 저는 제 직업의 평균적인 임금 수준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과 돈에 비해 별로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이 직업을 통해서 타인의 안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이 심리평가나 수퍼비전 등을 통한 간접적인 기여든 심리평가에서 심리치료로 이어지는 보다 직접적인 기여든 간에 말이죠. 더욱이 이 과정을 통해 새롭게 배우고 경험을 쌓아나가는 개인적 ‘향상’의 느낌이 좋습니다. 이런 점들은 불충분한 임금을 보상하고, 임상가로서 직업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여 치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더욱 정진할 수 있게 만듭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내 몫을 다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상당히 괴로운 시간들이었죠.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고,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 했다고 지각할 때 혹은 찾지 못 할 것을 예상할 때 괴로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심리적 어려움이 100% 대인관계 문제일 수 있다는 견해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되고요.

다만 그 자리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일종의 단거리 경주처럼 남들이 달려가는 것과 동일한 방향으로 남들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게 되면 결국 자기도 잃고 타인도 잃기 쉽습니다.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대해 회의하기 쉽고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하루하루를 충실히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덮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사회에 도움도 되는 일을 찾는 것이 저마다의 핵심 과제일 수 있고, 자기와 타인의 안녕을 위해 그것이 꼭 거창한 일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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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인 선택과 미움받을 용기, 타인신뢰는 맞물려 돌아가는 기어 같은 것이라 어느 하나가 빠져서는 각각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맞물려돌아가는것 같습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있다는건 자존감이 높다는걸 의미하는것 같습니다. 작은 실천과 성공 하나하나, 타인의 작은 신뢰 하나하나가 자존감을 높여줄거라 생각합니다.

한번 읽어보고싶네요!

약간 다른 얘기긴 하지만, 굿해빗이 잘 돼서 jacobyu님 다른 프로젝트들에도 어떤 형태로든 힘을 실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서비스인데 스팀잇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국한된 게 아쉽네요. 일전에 아이디어 스티미언들에게 물어보셨는데 굿해빗이 잘 되려면 굳이 스팀잇에 국한돼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돈 걸고 목표성취 도모하는 유명한 어플도 하나 있는 걸로 아는데(어플 이름이 챌린저스인 것 같아요) 그거 벤치마킹해서 jacobyu님과 유저 모두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을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넵. 맞습니다. 저도 스팀잇 공간 외에 넓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테스팅도하고, 유저도 확보하고 더 넓은 시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챌린저스, 벤치마킹했었습니다.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미움 받을 용기... ㅠㅠ 너무 어려워요. ㅠ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이 책이 히트친 이유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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