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1장] 주요셉 시인의 시 한편 152
눈뜨는 숲
숲 어두워진다.
지난가을의 풍성함 가슴에 고이 품은 채
계곡엔 앙상한 청춘들 웅크려 있고
등성이마다 광채 발하는 바위들,
숲은 서서히 그 고도(高度) 낮춘다.
이제 머잖아 마을로까지 하강(下降)하리라는
예감,
벌목꾼들의 고함도 들리지 않는
깊은 숲 속, 흉한 아가리처럼
입 벌린 동굴들,
산짐승들마저 떠나버린 숲으로
낮은 어둠 깔린다.
차고 메마른 바람,
여름내 흘러 넘쳤던 냇물의
침묵시위,
무한궤도는 지금도 대지를 짓밟는 중,
도시인들이 지난 봄, 여름, 가을 토해놓은
아름다운 씨앗들, 고요히 순교(殉敎)하는
숲은 언제나 너그럽다
지상의 어떤 죄인도 눈 흘기지 않고
부드럽고도 다스한 가슴으로 보듬고
순한 눈길로 어루만지는 자애심이여,
도심 골목마다 불 밝힌
고래고래 아우성치는 취객들의 사무친, 그리고
길 잃고 헤매는 하얀 까마귀들의 비상
메아리치는 구세군 종소리…
부산스러워지는 숲의 날개 꺾인다.
어지러이 선회하다 마침내
생의 목표점 향해 장렬히 돌진하는
독수리의 추락,
(꺾인 날개에선 피가 안 흐른다)
머얼리서 가까이 들려오는 저녁종소리,
지옥과 천국 갈라놓은 계시록(啓示錄) 20장,
신(神)은 오늘도 생명책(冊) 펴고 계시다.
온 몸을 제어치 못하도록 뒤흔드는
공포, 불안, 살의(殺意)의 바람이여…
배반의 칼날 솟구치는 산맥의 허리 움켜쥐고
동쪽으로 내몰려간 카인의 버림받은 후예들
쉽사리 파내버릴 수조차 없는 암벽 족보(族譜),
바위는 아무런 죄 없다.
(바위에게 죄 묻는 건 신성모독)
추모의 촛불 사라진 거리로
지난가을 애처로이 꺾인
부활하는 들꽃 두 송이,
숲 고요히 눈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