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양반뽑기?
공정한 양반 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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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시끌시끌하다.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하지만 대통령이 다녀간 곳이어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느껴져서 조금 개운하지는 않다. 더하여 고구마 열 개를 삼킨 느낌은 공항의 '정규직' 노조의 반발과, 수만 명이 넘었다는 정규직화 반대 '청원' 에서 비롯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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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나같이 '공정성'을 얘기했다. 그런데 공정과 불공정은 과정의 문제고 평등과 불평등은 결과의 문제다. 과정이 공정(?)했다고 해서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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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 과정조차도 공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공정하지 않다. 노량진 컵밥 얘기하지만 컵밥 먹으면서 몇 년을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웬만큼 혜택 받은 환경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 가면 뭐하나 알바도 정규직시켜 주는데...... 하는 푸념은 더 기가 막히다. 요즘 대학 어떻게 가는지 수험생 부모 한 번 해 보면 뻔히 아는데. '공정한' 시험 거쳐 서울대 갔다고 뻗댈 자신이 있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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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포지션을 자신의 이익과 자아실현을 위한 디딤돌로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그걸 다른 이의 권리를 가로막는 바리케이드로 쓴다면 그 '공정함'은 뿌리로부터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나아가 그 포지션에 대한 이의를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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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문제는 일종의 과대 포장이 아닐까. 내용은 불의에 가까운 불평등이지만 그걸 그럴싸한 '공정'의 포장지로 감싸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사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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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을 만들어 놓고서 그 문을 통과한 자들에게는 한세상 누리며 살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좁은 문 밖 가난의 세계를 헤매는 사회라면 불평등을 넘어 불의한 사회다. 좁은 문을 통과하는 '시험'이 아무리 '공정'하더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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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과 상놈이 있던 시절의 가장 큰 문제의 핵심은 누가 양반이 되는가의 '공정성'이 아니었다.. 과거 시험이 개판이 됐고 납속과 공명첩이 남발된 건 맞지만 나라를 망친 건 양반의 자격 미달이 아니라 양반이 향유했던 지나친 권리였다. 일단 양반만 되면 군대도 안가고 세금도 면제받고 별의 별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모순이었다. 박지원의 <양반전>에서 양반 자리를 산 평민 부자가 양반의 취해야 할 바를 듣고 "이거 강도 새끼들 아니야?"고 분노했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즉 "양반만 되면 한세상 누릴 수 있는" 구조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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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대기업 정규직이면 '가문의 영광'으로 치부되게 된 나라에서 대기업과 공기업 직원이 되는 시험의 '공정성'에 집착하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권리의 크기와 넓이의 차이를 줄이는 일이다. "과거 시험의 부정을 없애야 하옵니다."는 소리는 당연하지만 얼마나 공허한 소리였겠는가. 일단 급제하면 '강도'가 쉽게 되는 세상에서라면.
누가 쌈질을 부추기는지... 혹,
참... 안타까워요.... 이게 싸울 일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