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다에 씀

새벽 1시. 갑자기 뭐라도 쓰고 싶어져서 몸을 빙글 돌려 침대 밑에 두었던 노트북을 집었다.
머리맡에 노트북을 펼치고 엎드린 자세로 타이핑을 시작해본다.
특별히 쓰고 싶은 주제는 없다.
감상에 젖어 뭐라도 쓰지 않으면 근질근질한 그런 상태도 아니다.
문득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없는 그러나 의식적인 행위를 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기쁨이 밀려오는 것을 알아차려 본다.
오랜만이야~
소란스러운 흥분보다는 차분한 가운데 느끼는 만족감에 가깝다.
여기에 약간의 피로와 신체적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자니 왠지 몰라도 더 좋은 기분.

사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기쁨보다 편안함을 찾는 것이 나에겐 우선 순위다.
평화, 평안, 평온함 비슷한 단어들로 표현되는 맨들하고 푹신한 감각 안에 있는 것
다양한 감정이 늘 속에서 출렁이지만, 그 감정의 파동을 감싸 안는 커다란 평화의 감각이 있다. 혹은 없다.

바다에 비유하자면-
바람과 파도가 없는 날의 바다는 멀리서 보면 잠잠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끊임없는 잔물결로 이뤄져 있다.
그 크고 작은 물결이 미세한 감정의 오르내림이라면, 그 모든 오르내림을 감싸안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넓은 바다가 내가 그리는 '평화'의 이미지 중 하나다.
해가 뜨면 햇빛을 조각내 반짝이고, 밤에는 달빛을 품고 은은하게 빛나는..

IMG_3660_Original (1).jpg

때때로 거친 바람이 부는 날이 있다.
물결이 찰랑거리던 자리에 날카로운 파도 면이 삐죽빼죽 들어서기 시작하면, 물결의 흐름을 분간하고 느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파도와 조류에 휩쓸리며 허우적대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가 되고, 그런 상황에선 수면 아래에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세심히 들여다볼 여유 따위는 없다.
생명에 위협을 느껴도 외마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만큼, 숨 쉴 타이밍을 찾아 간신히 고개를 내밀어 입을 뻐끔거리기에도 벅찬 상황이니까...

내면의 바다가 호수와 같은 상태, 즉 감정적으로 평온한 상태일 때 비로소 작은 소리로나마 스스로의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꼭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무언가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외부의 상황이나 시선에 마음을 뺏기지 않은 채 나만의 감정 파동을 느낄 수 있다.
음, 잔잔하구나. 좋아.
그리고 나를 휩쓸고 지나간 물결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다른 이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목적이 다소 흐릿한 행동을 하는 것..
힘을 내어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또렷한 의식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냥' 하고 있는 일.. 그런 일에 아주 깊은 몰입이 더해지면 더없이 기쁜 날들이 이어질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날들 와중에 타이밍 맞춰 적당한 바람이 불어오면, 잔잔하던 바다에 칼로 자른 듯 깨끗하고 아름다운 파도가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 몫의 파도 하나를 골라잡아 신나게 타고 해변까지 나와야지.

나로선 아직 맛본 적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지만
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일들을 삶에서 하나하나 걷어내고, 그 감각에 손끝이라도 닿는 느낌을 찾기 위해 더듬거려본다.
알맹이만 남겨 요리조리 굴리고 놀면서 심플하게 사는 느낌은 어떨지.

어쨌든 지금은 호수 위에 떠 있는 기분, 좋다.
이렇게 무언가 쓰면 영원히 새겨지는 의미심장한 공간에 발을 디딘 것도 설렌다.
실은 최근 몇 주간 찾아온 아주 뜻밖의 평화에 좀 어안이 벙벙한 상태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바람이 다시 불까?
그 바람이 다시 호수 같은 내 바다에 파도를 일으킬까?
언젠가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기대하기보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것을 의도해본다.

/

안녕하세요? 모노폴입니다. 〰️🤍

계획 없이 떠난 여행처럼 주제는 손에 잡히는 대로 사실은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지만 밍숭맹숭한 척 하는 글들이 올라올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딘가 밍숭맹숭한 주제이지만 어쨌든 저는 ‘씀’에 대해 쓰는 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저에게 '씀'이란 뭐냐면 물론 글을 쓰는 것이 포함 되겠지요? 그리고 오늘부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의미를 확장하려고 합니다.
라고 쓰니 기분이 몽글몽글 좋아지네요.

〰️🤍〰️

여러분도 요즘 꽂혀있는, 여러분만의 ‘씀’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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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ears ago 

일상을 풀어내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은 살짝 겉도는 느낌으로 풀어내고 있네요 ^^

겉도는 느낌도 좋더라구요~ 소소하게 겉돌다 언제 한번 깊게 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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