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숲속의 자본주의자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박혜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4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족과 함께 서울 생활 정리하고 미국 시골로 들어갔다.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의 오래된 집에서 두 아이와 남편과 산다.

넓은 땅에서 살지만 농사는 짓지 않고, 도처에 자라나는 블랙베리와 야생초를 채취하고 통밀을 갈아 빵을 구우며 막걸리 누룩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먹는다.

정기적인 임금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며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도 생존할 수 있는지 궁금해 실험하듯 시작한 생활이 책 출간 당시 7년째였다.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지만 완전한 삶"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에 심취한 저자.

'데이비드 소로'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하게 도시와 다소 떨어진 외딴 곳에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한국판 여성 세미 버전의 월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분명히 도시에서 한 시간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외곽이라고 했지만, 책을 통해 받은 인상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인적이 드문 오지에 살고 있는 듯 하다.

그런 인상을 받게 된 이유는 아마도 저자의 가족들이 스마트폰도 없고 집에서 인터넷도 사용하지 않으며, 직접 통밀빵을 굽고 직접 기르거나 야생에서 채취한 야채를 주식으로 먹으며 살아가기 때문인 것 같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구나, 공포를 느낄 만큼은 아니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 생각한다.

책 저자처럼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가족들 신변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만 맞는 말일테다.

만약 가족 중 누구 한 명이 크게 다친다면?

또는 가족 중 누구 한 명이 치료비가 많이 드는 질병에 걸린다면?

그것도 의료보험 혜택이 거의 되지 않는 미국에서.

물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대비하거나 걱정하느라 현재를 놓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불의의 사고나 불행으로 인해 파산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자산을 키우고 준비하고 싶다.

저자가 본문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삶이 주는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가보다.




책 전체 내용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상당 부분 집중해서 읽혔다. 오랜만에 접한 괜찮은 책이다.

저자가 말한 이 말도 계속 머리속에 남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잘 모르겠다.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중 일부



아무리 둘러봐도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큰 재산이나 명성을 노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노력하고도 자리에 누워 오늘은 만족스러웠다고 느끼는 사람도 좀처럼 없다.

그러면 이상한 마음의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죽도록 열심히 살면서도 '어차피 안 돼'라는 은밀한 포기를 하게 된다.

있는 힘껏 달리면서도 그 마음에는 희망이 아니라 체념이 자리잡는다.




외진 곳에서 살아도 사회와 나는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자유를 누리는 일 역시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숲속에서 내가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내멋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인내하며 생산하는 것과 소비하는 즐거움으로 나뉘지 않는다.

생산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한다.

생산 과정에서 부품이 되거나 소모되는 게 아니라, 생산 과정을 놀이로 만들 수 있을까?

돈을 버는 과정이 나를 나답게 하는 창조의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답을 찾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것 뿐이다.




무언가를 사려는 마음이 대부분 나중의 필요에 대비하려는 심리였음을 알게 됐다.

그런 심리는 인류의 90퍼센트 이상이 농사를 짓고 식량을 저장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로부터 내려온 마음의 습관이다.




변화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뭔가에 의존하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뭔가를 끊고 버리고 포기한 이후엔 항상 이걸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했다.

그 후회는 방만함이나 낭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진작 더 가벼워지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복잡하다.

나는 이 복잡함 그 자체를 삶의 경이로움이자 삶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삶을 그 자체의 복잡성으로 즐기지 못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다.




과거에 충분히 좋았던 것들을 놓아야만 하는 때가 온다.

정확히 그 때가 언제인지는 각자가 결정해야 한다.

다만 '내가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가?'라고 자문을 해보아도 도무지 떠오르는 답이 없다면 그때가 의심하기에 좋은 때다.

그 의심이 나를 찾아온 순간 회피하지 않는 것, 나에게 태연하고 냉정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 그 정도만으로 충분하다.

질문은 단순할수록 좋다.




욕망에 항복하기 위해선 자신의 욕망이 어떤 건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욕망을 극대화시켜 거의 무한대의 묻지마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만의 고유한 욕망과 욕구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아는 것이 오히려 소비의 피곤을 줄여준다.




비우기 위해 비운 물건들, 관계들, 습관들은 저절로 다시 채워졌다.

하지만 나의 현재에 중요한 의미, 맥락을 이해하고, 나만의 삶을 가꾸겠다는 목표를 가지면, 조금씩 나에게 맞는 것들만 남는다.

그 우연한 결과가 미니멀리즘일 뿐, 어느 날 하루 고생해가며 죄다 치우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같지 않으니 줄곧 까먹게 된다.




돈을 아끼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돈이 아껴야 할 그런 소중한 대상인가 싶어진다.

우리가 돈을 쓰지 않거나 쓰면서 얻는 즐거움은 행복도 아니고, 전혀 확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치열한 '자유'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하고 그들의 반응에 신경 쓰는 건 별로 쓸모가 없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타인을 보며 판단할 때, 그들은 늘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가진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늘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타인에 대한 내 반응이 내가 누구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




교수의 공격 대상이 된 부분은 인용이었다.

질문의 요지는 '가져다 인용한 학자들이 주장한 맥락을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교수는 말했다.

자기 생각을 담는 글이 겨우 A4 10장 정도라면 인용은 하나나 두 개만 담아도 넘친다.

글의 주인공은 본인의 생각이고, 아무리 유명한 천재의 인용도 조연이 되어야 하는 거다.

자기의 글에서 자기의 생각이 가장 빛나야 한다.

그게 세상을 위하는 길이다.

천재의 글을 사소하게 만들 만큼 당당하게 당신의 생각을 써라.

무지가 창피한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게으름이 창피한 거다.




부모의 교육 방침과 태도는 시대적 산물이다.

그런데 막상 개인은 그 사실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에게 바라는 어떤 교육 목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느끼게 된다.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은 멸종 동식물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면, 다른 무엇을 보호할 수 있을까.

내가 지구환경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대신해 내가 조금 더 하면 된다.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에너지만큼만 더 하면 된다.

<중략>

나는 그들을 틀린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살아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 대한다.

모든 개인은 그 사람의 정치적 주장보다 더 복잡한 존재라는 걸 기억한다.




우리를 채워주는 것은 다 다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름을 탐구하고, 내가 행복해지는 맥락을 깨닫는 것이다.

<중략>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 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엇이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욕구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욕구가 어떤 선을 넘어서도 계속됐을 때가 힘들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다.

시험 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시험을 잘 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힘들었다.

돈을 못 벌어서 힘든 게 아니라, 돈이 언젠가 부족할 거라는 미래의 전망 때문에 더 힘들다.




인간은 순간을 살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끝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괴롭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삶의 충만함을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202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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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안 읽어봐서 잘은 모르지만…… 저자가 저 같은 농부 자식은 아닌 거 같습니다.ㅎ
유학 가서 시골에 집 사서 살고 있다라…..
의료비를 걱정 안해도 될만큼 뭔가 있겠지요. ㅋㅋ

윗세대가 농부인지 아닌지 여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모와의 관계를 말하는 부분으로 추측컨데, 농부의 자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의료비를 걱정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아닌 것 같지만, 거주하는 집 외에, 도시에 임대하고 있는 부동산이 하나 있다고 했던거 같네요 ㅎㅎ

그럼 그렇지….. 경제적 능력이 받침해야 저런 도전도 가능하겠죠. 특히 애들 있는 부모로서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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