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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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고 보니 이젠 얌전을 빼고 있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주인의 사생을 망쳐버린 셈이니 뒤꼍에 가서 볼일이나 보려고 슬그머니 기어나갔다. 그러자 주인은 실망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객실에서 “이런 바보 같은 놈!” 하고 고함을 질렀다. 주인은 남에게 욕을 퍼부을 때는 꼭 ‘바보 같은 놈’이라고 하는 게 버릇이다. 다른 욕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까지 참아준 내 속도 모르고 무턱대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하는 건 실례가 아닌가. 그것도 평소에 내가 그의 등에 올라탈 때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까닭 없이 이렇게 욕하는 것도 감수하겠지만, 나를 편하게 해주는 일은 무엇 하나 흔쾌히 해준 적도 없으면서 오줌 싸러 간다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하는 건 좀 심하다. 원래 인간이라는 족속은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여 다들 우쭐거리며 거만하게 군다. 인간보다 좀 더 강한 자가 나와 혹독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거만하게 굴지 모른다.
제멋대로 구는 것도 이 정도라면 참아보겠지만, 나는 인간의 부덕(不德)에 대해 이보다 몇 배나 슬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집 뒤쪽에는 열 평쯤 되는 차밭이 있다. 넓지는 않지만 산뜻하고 햇빛이 잘 들어 기분 좋은 곳이다. 이 집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워 편안하게 낮잠을 잘 수 없을 때나 너무 따분하고 속이 편치 않을 때 나는 늘 이곳에 와서 호연지기를 기른다. 따스한 늦가을 날의 2시쯤이었는데, 나는 점심을 먹은 뒤 기분 좋게 한잠 자고 나서 운동 삼아 이 차밭으로 발길을 옮겼다. 차나무 뿌리 한 그루 한 그루의 냄새를 맡으며 서쪽의 삼나무 울타리 옆으로 가자, 덩치 큰 고양이가 시든 국화를 깔고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는 내가 다가가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아니면 알면서도 무관심한 척하는지 요란하게 코를 골아대며 몸뚱이를 옆으로 축 늘어뜨린 채 자고 있었다. 남의 마당에 숨어들어온 자가 어찌 이리 태평하게 잘 수 있는지, 나는 은근히 그 대단한 배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온통 새까만 고양이였다. 정오를 조금 지난 태양은, 그의 피부에 투명한 햇살을 비춰 반짝이는 솜털 사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라도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고양이 중의 대왕이라고 할 만큼 덩치가 컸다. 족히 내 두 배는 돼 보였다.
감탄과 호기심에 정신을 잃고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으니 조용한 늦가을의 따스한 바람이 삼나무 울타리 위로 뻗은 오동나무 가지를 가볍게 흔들어 이파리 두서너 개가 시든 국화 위로 떨어졌다. 대왕은 둥그런 눈을 확 떴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눈은 인간이 귀히 여기는 호박(琥珀)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을 왜소한 내 이마에 집중시키면서 물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대왕치고는 말이 좀 상스럽다 싶었지만, 어쨌든 그 목소리에는 개도 꼬리를 감출 만한 힘이 담겨 있었는지라 나는 적잖이 두려웠다. 하지만 인사를 하지 않으면 더 위험할 것 같았다.
가능한 한 태연한 척하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때 내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뭐, 고양이라고? 고양이가 들으면 웃겠다. 대체 어디 사는데?”
그는 상대를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어지간히 방약무인한 태도였다.
“난 여기 선생 집에 살고 있어.”
“내 그럴 줄 알았다. 비쩍 마른 꼬락서니 하고는.”
그는 제법 대왕답게 기염을 토했다. 말투로 미루어 보건대 어째 좋은 집안의 고양이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기름기가 번지르르하고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걸 보면 잘 먹으며 풍족하게 사는 듯했다.
“그런 넌 대체 누군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인력거꾼네 검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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