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관악산(팔봉능선)-4 연주대(戀主臺)
나홀로 관악산(팔봉능선)-4 연주대(戀主臺)
팔봉을 거처 KBS 송신소 뒤편으로 연주대로 갔다. 애초에 단풍과 조화를 이루는 연주대 모습을 찍기 위한 등반이었는데 팔봉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해서인지 해가 서쪽 봉우리에 걸려 연주대는 햇빛이 비치지 않았다. 세상 일이란 인간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풍경사진의 성패는 태양이 90% 이상 좌우한다. 해 뜰 때와 해 질 때의 붉은 기운이 온 누리를 드리울 때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등산의 목적이 단지 사진이라면 당연 새벽 일찍 산을 올라와 찬스를 기다려야겠지만 그럴 정도의 열정을 가지기엔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연주대에서 사진 몇 장 찍고 관악산 정상으로 갔다. 표지석 앞에서 사진 찍으려는 방문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보통 산에 오는 경우는 경기불황으로 명퇴 당한 퇴직자들이나 은퇴 후 돈 없고 갈데 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코로나영향인지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등산 같은 건전한 취미가 많이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자운암능선
정상에서 가장 빠르게 내려 올 수 있는 코스가 서울대쪽으로 내려오는 자운암능선일 것이다. 빠르게 내려 온다는 의미 속에 숨은 복선은 경사가 가파르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국기봉도 하나 있고 능선을 지나오며 보이는 풍경이 상당히 멋지다. 서울대 공대쪽으로 16시45분에 도착하여 관악02번 마을버스를 타고 낙성대역으로 갔다.
연주대(戀主臺)
깎아지른듯한 바위 벼랑 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고 30㎡쯤 되는 대가 구축되어 있어 이를 연주대라 하는데 응진전(應眞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작은 불당은 부처의 힘으로 자신의 염원을 이루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그 뒤, 우뚝 솟은 말바위[馬巖]가 있는데 이 바위에 올라타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왕조 개국 초에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권유를 듣고 태조는 도읍을 한양에 정함에 즈음해서 이 연주대에 친히 올라 국운장구를 빌며 원각(圓覺)•연주(戀主) 두 절을 짓고 서울을 비치는 화산(火山) 불길을 진정시키고자 꾀하였다고 한다.
그 뒤 임금 자리를 아우인 세종에게 양보한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곳에서 놀았다 한다. 이때 양녕대군이 중에게 준 오언절구 “山霞朝作飯 蘿月夜舂燈 獨宿孤巖下 惟存塔一層(산노을로 아침밥을 짓고, 女蘿의 덩굴에 걸린 달이 불을 밝히네. 홀로 외로이 바위 아래 오로지 탑 한층만이 남아있네)”이라는 한시가 명시로 전하며 효령대군은 여기에서 오랫동안 수도하였기에 그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내려온다.
많은 인파때문에 산이 몸살 날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코로나로 갈곳을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ㅎㅎ
멋진 사진들을 찍으셨네요. 저는 등산을 즐기지는 않지만 ... 이렇게 글로 보는 것은 참 좋네요^^
사진은 실제의 1/100 도 안됩니다. 직접보시면 훨씬 더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