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1(일)역사단편122. 가짜역사는 가라. 讀史新論[독사신론](4)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13 days ago (edited)

선생의 어록으로 오늘의 글을 시작한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다.
< 출처: 讀史新論[독사신론]>

단재기념사업회.jfif
<출처: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뤼순감옥 정치범 수용소, 신채호, 이회영선생의 사진이 보인다.

안중근 의사는 선생이 수감되기 이전인 1910년에
이곳에서 순국하셨다.

신문기사를 읽어보니

“선차이하오는 북한인으로서, 1923년 ‘북한혁명선언’을 쓴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문학가이다.” 로 소개되고 있단다..

폭염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가되니
문득 감옥에서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들이 떠오른다.

선생을 글을 읽어 나간다.

지난 글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둘러싼 인종적 요소로서
여섯개의 종족을 범주로 삼았다.

살펴보건대, 저 몽고·일본 두 종족이
고려 말엽에 제주도의 목장 치기와
세종조 때 삼포(三浦)에 항복해 온 왜인 등으로
내륙지역에 섞여 살았던 특별한 예가 더러 있기는 하였으나,
그후에 모두 반란을 일으켜 목을 베었고,
호공(瓠公), 김충선(金忠善: 이것은 일본만 홀로 지칭함 ― 原註[원주]) 등
귀화한 사람이 가끔 있기는 하였으나
이것은 수백년 동안에 한두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출처: 독사신론>

호공(瓠公): 신라 초기의 인물(? ~?)
김충선(1571~1642): 임진왜란때 귀화한 일본인

또 살피건대,
신라 때에 임나부(任那府)를 설치하였다는 설은
우리나라 역사에 보이지 않는 바이니,
그들 역사에서 운운한 바를 눈 어둡게 믿을 만한 기록이라 하여
의거함은 옳지 않은 것이다.
<출처: 독사신론>

임나부(任那府): 고대에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한반도 남부에 설치하고
지배했다는 주장. 식민사관과 침략의 핵심논리다.
일본군부가 조작한 내용을 식민지시대 조선인 학자들이 수용하고
해방후에도 그 제자들이 지지하여, 한국 주류사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한국의 정통사학이란,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그것을 정당화 시키는
삼국사기와 중국의 기사들을 모아서 짜집기한 것이다.

그 여섯 종족 가운데
모습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른 다섯 종족을 정복하고 흡수하여
우리 민족의 역대 주인이 된 종족은
실로 부여족 한 종족에 지나지 않으니,
대개 4천년 우리 역사는 부여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다.
이제 교통이 사방으로 터지매 동서양이 크게 교통을 터서,
저 하늘의 뜻이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한구석에 틀어박혀 오래 잠자도록 허용하지 아니하는 까닭에,
마침내 이 20세기의 세계무대에 나와서,
6대주의 여러 민족과 군대(軍隊)로 서로 맞서게 되니,
이 이후 우리 부여족이 눈을 부릅뜨고 큰 걸음으로 힘차게 나아가서
만국(萬國)의 역사 가운데에
승리의 한 자리를 차지할는지도 알 수 없으며,
혹시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움츠러들어서 날마다 퇴보하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까지 남에게 빼앗겨버릴지도 알 수 없지만,
과거 우리나라 역사는 곧 우리 부여족의 역사이니
이것을 모르고 역사를 얘기하는 자는
진실로 헛소리나 하는 역사가인 것이다.
<출처: 독사신론>

고구려가 부여로 부터 나왔고,
부여를 흡수해서 우리 역사속로 지속시켰기 때문에
부여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언어와 정치체제, 사상적 특성등에서의 계승을
기반으로 종족을 설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의 모든 역사서에서 고구려를 언급할때는
고구려가 부여를 계승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高麗(고려)
高句麗,其先出夫餘 :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
<출처:北史/卷094 열전 제82 四夷(4이)>

중국의 역사가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처음에는 고구려와의 전쟁을 통해 얻은 정보이고
그 다음은 수교를 하는 과정에서 전해들은 것이다.

계속 읽어본다.

독사신론목차.JPG

  1. 地[지] 理[ 리]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지리(地理)이다.
지리를 버리고 역사를 얘기하는 것은
골격과 혈맥에 어두우면서
기혈(氣血)를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어찌 옳겠는가.
그러므로 지지(地志)라 하는 것은
역사를 짓는 사람이나,
역사를 읽는 사람이나,
일반적으로 착안(着眼)할 바이거늘,
아, 우리나라는
조상들의 발상지(發祥地)가 다른 나라의 영토에 귀속하여
연혁(沿革) 이 전함이 없고 이견(異見)이 분분하니,
실로 역사를 좇아서 쓸 만한 전거(典據)가 없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러나 그 대세를 살펴서 간단하게 평하겠다.
<출처: 독사신론>

지지(地志): 地理志, 지역에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지리책
착안(着眼): 주의깊게 봄, 실마리를 잡음
전거(典據): 말이나 문장의 근거가 되는 문헌(文獻)상의 출처

대개 우리 부여족(扶餘族) 시조는
장백산(長白山)의 고원(高原)에서 일어나
압록강 줄기를 따라 내려와서
부근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았는데
강의 서쪽은 요동(遼東)이요
강의 동쪽은 조선(朝鮮:이 조선의 평안· 황해도만 가리킴 ― 原註[원주])이 이것이다.
사람들이 처음 살았던 때의 문명(文明) 은
압록강 유역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 자손들이 점차 번창하여,
한 갈래는 요동 및 만주의 각 지역에 분포하고,
한 갈래는 조선 및 삼한의 각 지역에 분포하여,
각기 그 종족을 결집하여
토착의 다른 종족들을 정복 혹은 흡수하여 들이니,
이것은 우리 민족 발달의 제1기이다.
<출처: 독사신론>

신채호 선생은 우리민족의 출발점인 부여족의 시작이
장백산의 고원이라고 비정하고 있다.

그 후에 많은 야만종족이 모두 부여족의 세력 밑에 꿇어 엎드려,
혹은 멸망 당하기도 하고 혹은 동화(同化)되기도 하매,
이에 또 부여족 내부에서 경쟁이 일어나
삼국이 대립(對立)하여 싸움이 그치지 않으니,
이것이 우리 민족 발달의 제2기이다.
<출처: 독사신론>

이미 북쪽에 있었던 민족은
안으로 동족의 침입을 만나며 밖으로 각 민족의 핍박을 받아서
앞뒤로 적을 만난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고구려가 앞서 전복당하고 발해가 뒤에 망하였다.
안으로 이미 경쟁이 없어지고
밖으로 이 민족의 침략이 없어지매
사납고 날쌘 도적이 이 기회를 틈타서
여러 강자들을 없애고 한 자리의 왕위를 차지하며,
백성의 기운을 꺾어서 조정의 권능을 펼새
이 삼천리 강산을
하나의 큰 쇠항아리로 만들어
한 나라의 인민들을 그 속에 가두고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으니,
대개 고려시대 이후의 역사를 읽어보면
영웅의 옷깃을 적시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다.
이것이 제3기 발달시대를 당하여
저지하는 힘이 너무 오래되었으므로
도리어 침체를 불러들인 것이다.
<출처: 독사신론>

신채호 선생은 역사발전의 단계를
민족의 큰 틀에서의 성장과 쇠퇴시기로 나누고
그 핵심이 사회체제의 방향성임을 설정하고 있다.

이런 해석은,
마르크스이론에서
생산력와 사회구성체의 상관관계를 설정하는 것과 같다.
마르크스의 생산력개념이 사회-정치적 변동에 대한
직접적인 유발성을 직접적으로 입증하기 힘들다.

그러나 선생은
민족(사회, 국가)의 발전과 쇠퇴가
시대의 지향성, 그리고
그 지향성을 결정하는 지배계층의 사상적 방향성에 중심을두고
역사발전을 탐구한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역사-사회-정치이론>의 선구자라고도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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