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26(금)역사단편109淵蓋蘇文[연개소문]의 死年[사년](8)

남생비.JPG
<연남생의 묘비>

(비석에 있던 문장은 모두 46행이며, 각 행은 47자로 가득 차 있다)
고 했으니 2162글자이다.

먼저 비문에 있는 내용을 본다.

年十五,授中裹小兄,
十八中裹大兄,
年廿三改任中裹位頭大兄,
廿四兼授將軍,餘官如故,
廿八任莫離支兼授三軍大將軍,
卅二加太莫離支,總錄軍國。

廿(입): 스물 입
卅(삽): 서른

나이 15세에 중과소형(中裹小兄)으로 임명되었고,
18세에 중과대형(中裹大兄)으로 승진하였다.
23세에 중과위두대형(中裹位頭大兄)으로 다시 임명되었으며,
24세에 장군(將軍)으로 임명되었고
다른 관직은 그대로 유지되었다(餘官如故).
28세에 막리지(莫離支)와 삼군 대장군으로 임명되었으며,
32세에 태막리지(太莫離支)로 승진하여 군과 국정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막리지가 된 나이가 28세로 되어 있다.

연남생묘비1.JPG

연남생 묘비에 대해 구글에서 검색하면
이런 선명한 이미지를 1분내에 찾을 수 있다.
이런 편한세상에 살다보면,
세상 모든게 쉽게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에
선생은 묘비의 초본을 구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초본은 '발췌본'을 의미한다.

그리고 초본을 통해 인용한 글귀를 보면,

“二十四兼授將軍[이십사겸수장군] 餘官如故[여관여고]
任莫離支[임막리지] 兼授三大軍將軍[겸수삼대군장군]”다.
여기서 눈여겨 볼것이
餘官如故[여관여고]이다.

餘官如故[여관여고]: 지위나 직책은 이전과 같다

단재는
"二十四兼授將軍,< 餘官如故>,
任莫離支, 兼授三大軍將軍 "이라 했고
(24세에 장군을 겸직하여, 이전의 직책은 그대로 유지하고,
'막리지'로 임명되어, 3대군장군을 겸직했다.)

원문은,
"廿四兼授將軍,<餘官如故>,
廿八任莫離支兼授三軍大將軍 "으로 되어있다.
(24세에 장군을 겸직하여, 이전의 직책은 그대로 유지하고,
28세에 막리지'로 임명되어, 3대군장군을 겸직했다.)

당시의 열악한 환경에서,
단재가 구했던 묘비의 발췌본에
<廿八>
가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선생의 글을 계속 읽어보자.

그러면 단군 2990(657년) 보장왕 16년에 연개소문이 죽고,
남생이 대신하여 막리지가 되어
군국대권을 천(擅)한 것이 명백하며,
또 그 글 중간에
‘二弟產建[이제산건] 一朝凶悖[일조흉패]
能忍無親[능인무친] 稱兵內拒[칭병내거]……
公以共氣星分[공이공기성분] 旣飮淚而飛檄[기음루이비격]...
乃遣大兄弗德等[내견대형불덕등] 奉表入朝[봉표입조]
陳其事跡[진기사적] 屬有離叛[속유리반] 德遂稽留[덕수계류]…
公乃反旆遼東[공내반패요동]……
更遣大兄冉有[경견대형염유]……
乾封元年[건봉원년] 公又遣[공우견]
子獻誠入朝[자헌성입조]’라 하였은즉,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천(擅): 차지하다
飮淚(음루): 눈물을 삼키다.
陳其事跡(진기사적): 그 사실을 진술하다.
屬有離叛(속유리반): 마침 배반이 있었다.
反旆(반패): 깃발을 돌리다, 즉 군대를 되돌리다.
更(갱): 다시, 또.
又(우): 또, 다시
遣(견): 보내다

(옮기면)
그러면 단군 2990년 보장왕 16년에 연개소문이 죽고,
남생이 대신하여 막리지가 되어 군국대권을 잡은 것이 명백하며,
또 그 글 중간에
‘두 동생 남산과 남건이 어느 날 흉포하고 패역하게
형이 없다는 이유로 군사를 일으켜 내부에서 저항하였다.……
공은 서로의 기운이 별처럼 나뉘었기 때문에
눈물을 삼키고 격문을 날렸다...
이에 대형인 불덕 등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어
(당)조정에 들어와 그 사실을 진술하게 했다.
마침 배반이 있어 불덕이 마침내 머물렀다.…
공은 이에 군대를 요동으로 돌렸다……
다시 대형 염유를 보냈다……
건봉원년(666) 공은 또 아들 헌성을 조정에 보냈다’라 하였은즉,

계속 읽어본다

위의 본문에 의하여 그 사실을 역서(歷敍)하면,
연개소문의 사후에 남생이 막리지가 되어
예성(詣城)에 출순(出巡)하다가
이제 남건ㆍ남산이 내반(內叛)하여 남생을 거(拒)하므로
남생이 반공(反攻)하다가 패하여,
첫번에 불덕(弗德)을 당에 보내어 구병(救兵)을 구하려 하더니,
부하의 의사(義士)들이 남생의 매국 불의를 오(惡)하여 공반(共叛)하여
남생을 격하매,
남생이 요동으로 달아나
다시 염유(冉有)를 당에 보내어 구병을 구하였으며,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역서(歷敍): 경과를 서술하다.
거(拒): 적대시하다
반공(反攻): 반격하다
공반(共叛): 함께 반란을 일으키다.
격하다: 꾸짖다.

(옮기면)
위의 본문에 의하여 그 사실의 경과를 설명하면,
연개소문의 사후에
남생이 막리지가 되어 예성(詣城)등을 순찰하다
가 이제 남건ㆍ남산이 반란을 일으켜 남생을 적대시하므로
남생이 반격하다가 패하여,
처음에 불덕(弗德)을 당에 보내어 병력을 구하려하니,
뜻있는 부하들이 남생의 매국불의를 미워하여
함께 반란을 일으켜 남생을 꾸짖으니,
남생이 요동으로 달아나 다시 염유(冉有)를 당에 보내
어 구원병을 구하였으며,

그러다가 단군 2999년에 이르러 남생이 자 헌성을 당에 보냄이니,
그러면 연개소문의 사년이 보장왕 25년 곧 단군 2999년의
훨씬 이전임을 반증할지니,
이는 다 그 묘지 작자가 무의중에 당 사관의 제급(提及)하지 아니한
연개소문의 사년을 누설(漏洩)함이라 할 것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반증: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아니함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함
제급(提及): 언급하다
누설(漏洩):비밀이 새어 나감

(옮기면)
그러다가 단군 2999년(666)에 이르러
남생이 아들 헌성을 당에 보냄이니,
그러면 연개소문이 죽은해가
보장왕 25년 곧 단군 2999(666)년보다
훨씬 이전임을 거꾸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다 그 묘지 작자가 뜻하지 않게
당 사관이 언급하지 않은 연개소문의 사년을
누설(漏洩)함이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선생의 해석을 요약하면,
연개소문이 죽고 수 년후에
태막리지까지 승진한 남생이 지방순찰을 나갔고
동생들이 반역을 일으켰고
이것을 진압하려는 시도가 뜻대로 되지않자
결국 당나라에 원병을 청하게 된다.

처음에 불덕(弗德),
다음에 염유(冉有),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을때가 666년

불덕(弗德)이 장안까지 가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염유(冉有)를 보내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을때가 666년이다.
그리고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 공격을 결정해서 군대가 출동한다.

북경에서 오는게 아니다.

소위 정통사학자들의 주장을 빌리면,
황하남쪽 <장안>과 지금의 압록강근처를 오가는 것이다.

장안평양.JPG

직선거리 1,700Km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

신채호선생의 분석이 맞을까?
책에 적힌대로 편하게 번역하고 암기하는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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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역사입니다. 연개소문이 죽고 아들들이 싸우는 바람에 나라가 멸망해 버렸으니....

나라가 망할때는 항상 그렇지요. 우리 영토였을 땅이 사라져서 유감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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