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23(화)역사단편106淵蓋蘇文[연개소문]의 死年[사년](5)

공부를 하면서 효율성을 높이기위해
줄거리와 결론만 파악하는 쪽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또 최근에는 소위 논술이라는 것이 유행하다보니
'논리'라는 형식에 빠져서
학문에 대한 본래의 목적을 잊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마음이 급하면 더욱 그렇다.
그 때문에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거나
다른사람이 내린 평가를 듣고
거리낌없이 자신도 쉽게 결론을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주장을 접해보면,
"이사람은 책을 읽어보기나 한건가?"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나도 젊은 시절엔 그런 오류에 빠지곤 했다.
마음이 급했거나,
비판해야할 대상이라고 선입견을 가졌을때...

오늘도 신채호 선생의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글을 읽어본다.

당대 동북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인
'연개소문'의 죽음과 그 결과에 대해
한 줄로 정리해버린 기록들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포스팅에서
연남생은 고구려를 팔아먹은 댓가로
창씨개명을 당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씨에서 천씨로

남생전(男生傳)을 의거하면
남생과 남건이 본래는 호상 친신하던 형제이므로,
그 부의 사후에,
남생이 부의 직을 대하여 막리지가 되어
예성(詣城)에 출순할새,
내부의 병마 대권을 맡기어 유수(留守)케 하다가,
혹자가 그 형제의 의를 이간하여
남생더러는 남건이 그 병력으로써 형 남생을 거(拒)하고
그 권을 빼앗으려 한다 하며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유수(留守: 다스리다
거(拒): 적대시하다

(옮기면)
남생전(男生傳)을 보면
남생과 남건이 본래는 서로 친하고 믿던 형제이므로,
연개소문의 사후에,
남생이 부친의 직을 이어받아 막리지가 되어
예성(詣城)을 둘러보러 가면서, 내부의 군대에 대한 권한을 맡겨
다스리게 했는데, 누군가가 그 형제의 사이를 이간질했다.
남생에게는 남건이 맡은 병력을 이용해서 형 남생을 적대시하고
권력을 빼앗으려 한다 하며

남건더러는 남생이 제 남건을 오(惡)하여,
그 유수의 병권을 거두려 한다 하여,
마침내 남생은 남건을 꺼려 정찰의 사자를 보내며,
남건을 남생을 의심하여 그 정찰사자를 암살함에 이르렀으니,

그 참간(讒間)의 이룸과 의기(疑忌)의 생김이
반드시 점(漸)을 적(積)하여 된 것이며,
1년 몇 개월간의 일이 아닐지며,
또는 여하 용비(庸鄙)한 매국적(賣國賊)이라도
낙지(落地)할 때에 곧 매국적의 탈을 쓰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혹 사분(私忿)에 구박(驅迫)하거나 이욕에 미혹하여 매국의 대죄를
감작(甘作)함인즉,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참간(讒間): 이간질하다.
의기(疑忌): 의심하고 꺼림
점(漸): 자라다, 늘어나다
용비(庸鄙):더러운 행위를 하다.
낙지(落地): 세상에 태어나다.
구박(驅迫): 못견디게 함
감작(甘作): 만족하여 저지르다

(옮기면)
남건에게는 형 남생이 동생 남건을 미워하여
맡겼던 병권을 거두려 한다고 이간질하니,
마침내 남생은 남건을 꺼려 정찰하는 사자를 보내며,
남건은 남생을 의심하여 그 정찰사자를 암살함에 이르렀으니,
그 이간질이 달성되고 형제들이 서로 의심하고 꺼리게 되는 것은
반드시 조금씩 쌓여서 되는 것이며,
1년 몇개월간의 일이 아닐것이고,
어떤 더러운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이라도
태어나면서 부터 매국노의 탈을 쓰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원망으로 못견디게 되거나
이익을 보려는 욕심에 눈이 멀어서 매국의 대죄를
기꺼이 저지르는 것이니,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계속 읽어본다.

10만의 병을 옹(擁)한 남생이
남건의 반보(叛報)를 접한뒤에
반드시 일장의 혈전을 행하다가 패한 뒤에야 당에 투항하였으리니,
이것도 1,2개월 내에 된 일이 아닐지니,
그러면 6월 임인의 1일 내에 이 허다대사를
경과한 줄로 쓴 『구당서』도 믿을 수 없거니와,
5월 1개월 내의 이허다 대사를
경과한 줄로 쓴 『자치통감』도 믿을 수 없는 것이거늘,
『삼국사기』에 이를 그대로 초록함은
그 문자상 사대주의의 완고함은 민탄(悶歎)할 밖에 없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옹(擁): 거느리다
반보(叛報): 반란소식
허다(許多): 매우 많음
민탄(悶歎): 답답하고 한탄함

(옮기면)
10만의 군사를 거느린 남생이 남건의 반란소식을 접한뒤에
반드시 한바탕 혈전을 행하다가 패한 뒤에야 당에 투항하였으리니,
이것도 1, 2개월 내에 된 일이 아닐것이니,
그러면 6월 임인의 하루에다가
이 수없이 많은 사건들의 과정을 한 줄로 쓴
『구당서』도 믿을 수 없거니와,
5월부터 1개월 이내에
이런 수없이 많은 사건들의 과정있었던 것처럼 기록한
『자치통감』도 믿을 수 없는 것이거늘,
『삼국사기』에 이를 그대로 뽑아서 기록한것을 보면,
그 문자상 사대주의가 단단하고 시각이 좁은것에 대해
답답하고 한탄할 수 밖에 없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관련자료를 본다.

자치통감221연개소문졸.JPG
<출처: 자치통감 권221)

5월과 7월 사이에 관련 기사를 적어놓았다.
무도한 자들이 남에나라 천자의 성을 바꿔놓았다.
남생이 나라를 팔아먹지 않았다면,

高麗蓋蘇文卒(고려개소문졸) 이라고
적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성씨까지 바꾸게 만들었으니
매국노이면서 불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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