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30(일)역사단편83-평양패수고(15) 백제와 낙랑3

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

송서.jpg

오늘은 『宋書송서』가 등장한다.
제작시기: 5세기 '남제'시대
기간: 399~479년(사마씨의 동진 안제~남조의 '송나라')에 해당한다.
남제: 479~502년

평양패수고를 읽어보자.

『宋書송서』의 「百濟略有遼西晋平백제략유요서진평」註22)으로 보면
어느 때 百濟의 海外 發展이 今永平府 等(금 영평부 등)까지 미쳤거늘,
兩王(양왕)의 本記에는 그런 記錄(기록)이 없으며,
建國說(건국설)은
十濟 百濟 等(십제 백제 등)의
不當(부당)한 曲解(곡해)나 남아있으며,
<출처: 평양패수고>

(해석하면)
『송서』의
「백제가 요서, 진평을 공략하여 차지했다.」註22)으로 보면
어느 때 백제의 해외 발전이 현재의 영평부(=북경부근) 등까지 미쳤거늘,
두 왕의 본기에는 그런 기록이 없으며,
건국설을 보면
‘십제’니 ‘백제’니 하는등의
부당하고 잘못된 해석이나 남아있으며,

낙랑표시1.JPG

지도에서 우측 1번이 영평부로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는 청나라때 만들어진 것으로
지명들이 동북쪽으로 많이 이동된 상태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사에 등장하는 '진평'

註22)『宋書송서』에는
“百濟略有遼西(백제락유요서)
百濟所治 謂之晋平郡晋平縣(백제치소 위지진평군진평현)”
으로 되어 있다.<출처: 독립기념관>
(해석하면)
백제가 요서를 공략하였다.
백제가 다스리는 장소는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으로 되어있다.

주석이 말하는 송서의 본문을 보면
[중국정사조선전] > 송서(宋書) > 이만열전(夷蠻列傳) > 백제(百濟)
百濟國(백제국)
本與高驪俱在 遼東之東千餘里(본여고려구재 요동지동천여리)
其後高驪略有遼東(기후고려략유요동)
百濟略有遼西(백제략유요서)
百濟所治, 謂之晋平郡 晋平縣.(백제소치 위지진평군진평현)

俱(구): 함께, 모두
(해석은)
백제국註 034은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리 밖에 있었다.註 035
그 후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註 036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출처: 국사편찬위>

주석이 잔뜩 달려있다.
국사편찬위가 제공하는 주석들의 내용을 보면
엉뚱하게 “백제 왕실..일본이 어쩌고” 하는 것들만 있고
본 기사를 해설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무엇을 위해 주석을 달아놓은 것인지 그 의도를 모르겠다.

<진평현>을 검색해보면,
바이두에는
"晉平郡晉平縣 是南朝史書記載 百濟在中國晉朝 平壤地區建裊的建制縣"
<진평군진평현 시남조사서기재 백제재중국진조 평양지구건료적건제현"
(해석하면)
'진평현 진평현'은 남조 사료에 따르면 진나라때 평양지역에 백제가 세운 유기현이다.
여기서
<裊(료): 하늘거리다>를 사용한것으로 봐서
'유기현'에서 유기는 '버려진' 또는 '일시적인'이라는
부정적인 표현임을 알 수있다.
지나인들에게 치욕이므로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나무위키에서는
"기록상에 나타나지 않는 유령같은 지명이고
재야 사학자들에게 마약같은 판타지.." 어쩌고 하는 악의적 설명을 해놨다.
편집을 요청한 상태다.

만족할만한 설명은
清《嘉慶一統志》卷425·福州府一建置沿革:
“晋太康三年析置晋安郡…劉宋泰始四年改晋平郡 七年復故
(진태강3년 석치진안군..유송태시4년개진평군 7년복고)
청나라 《가경일통지》 권425 ·복주주 설치연혁:
“진안현은 진 태강 3년(282)에 건립..
유송 태시 4년에 진평군으로 바뀌었고, 7년에 회복되었다.
계속 읽어본다.

태강(太康):서진의 무제인 사마염의 연호(280~289)
유송태시(劉宋泰始): 465~471년
태시7년은 471년이므로 당시까지 이름이 '진평군'이다.
'진평군'은 강주(장저우)에 속했다.

당대의 강주위치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겠으나
백제가 산동성 부근의 진평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바 없다.

계속 읽어보자.

亡國의 遺壚(유로)에는
釣龍白馬(조룡백마)의 敵將(적장)을 崇拜(숭배)하는 鬼話(귀화)만 끼쳐 있고,
정작 自家의 文化上 政治上 美하고 善하고 雄大(웅대)한 무엇은 볼 것이 없으니,
이는 敵人(적인)의 兵火에 焚蕩(분탕)된 文獻(문헌)의 厄(액)보다
事實을 顚倒(전도)한 羅末 文士(라말 문사)의 曲筆(곡필)의 罪가 더 많음을 볼 것이다.
<출처: 평양패수고>

釣龍白馬(조룡백마):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할때
‘백마로 용을 낚았다’라는 악의적 전설
焚蕩(분탕): 재산을 다 없애버림
厄(액): 재앙
顚倒(전도): 뒤집힘
曲筆(곡필): 거짓으로 왜곡해서 씀

(해석하면)
망국의 남겨진 터에는
‘백마로 용을 낚았다’라는 적장을 숭배하는 거짓이야기만 남아있고,
정작 자신의 문화상, 정치상 아름답고 선하고 웅대한 무엇은 볼 것이 없으니,
이는 원수의 전란에 없어져버린 문헌의 재앙보다
신라말엽의 문필가들의
사실을 뒤바꾼 거짓과 왜곡의 죄가 더 많음을 볼 것이다.

백제는 660년에 망했고
신라는 935년에 망했다.
3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그토록 미워하고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 전도 시켰을까?

왜 1,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선의 역사학자들은 우리 역사를
한반도에 고정시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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