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0(목)역사단편73-평양패수고(6)

패수고를 계속 읽어본다.
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
주석19는 '주류사학계의 입장'

621.JPG
포스팅 내용중에 있는 지도

以上 四個(4개)의 錯誤(착오)를 發見하는 同時에,
모든 書籍(서적)의 僞證(위증)이 다 破壞(파괴)되고,
모든 學者의 誤考·誤證(오고-오증)이 다 歸正(귀정)되어,
平安道의 大同江과 今平壤을 古平壤, 古浿水로 잡던 妄說(망설)들은
自然(자연) 그 根據(근거)를 잃고,
奉天省(봉천성)의 海城縣(해성현)과 蓒芋濼(한우락)이
古平壤(고평양), 古浿水(고패수)인 確證(확증)을 얻어
이에 朝鮮 文明의 發源地(발원지)인 古三京의 一인 平壤과
七大 江의 一인 浿水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출처: 평양패수고>

破壞(파괴): 깨트려 헐어버림
誤考(오고): 잘못된 생각
芋(우): 토란
歸正(귀정): 잘못되어 가던 일이 올바로 됨.
妄說(망설): 망령(妄靈)된 생각이나 주장

이상으로 네 개의 착오를 발견하는 동시에,
모든 서적의 거짓증거가 전부 파괴되고,
모든 학자의 잘못된 생각과 증명이 바로잡혀
평안도의 대동강과 현재의 평양을
'옛평양- 옛 패수'로 잡던 망령된 주장들은
자연히 그 근거를 잃고,
봉천성의 해성현과 한우락이
옛 평양과 패수라는 확증을 얻어
이에 조선문명의 발원지인 옛 삼경중 하나인 평양과
7대 강의 하나인 패수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平壤과 浿水가 이같이 朝鮮 文明史上의 重要(중요)한 地方으로서
千餘年(천여년) 동안 그 固有의 位置를 잃고 千餘里나 移徙(이사)하여
平安道의 小地方으로 出系(출계)하게 됨은
僞證한 書籍(서적)의 作孽(작얼)이라 하겠지만,
그러나
이같은 僞證(위증)이 行世(행세)되어
第二 浿水, 第二 平壤인 大同江·平壤이,
第一 浿水, 第一 平壤인 蓒芋濼·平壤의
位置·歷史 其他 모든 것을 빼앗게 됨은 何故(하고)이냐?
<출처: 평양패수고>

孽(얼): 서자, 재앙
作孽(작얼): 죄를 짓다
出系(출계): 양자(養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

평양과 패수가 이같이 조선문명역사상의 중요한 지방으로서
천여년동안 그 고유의 위치를 잃고 천여리나 이사하여
평안도의 작은 지방으로 옮겨서 이름을 계승하게 된 것은
위증한 책들이 죄를 지은 탓이라고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같은 거짓말이 격에맞지 않는 짓을 해서
제 2의 패수, 제2평양인 '대동강과 현 평양'이
제 1의 패수, 제1평양인 '헌우락과 해성현'의
위치, 역사, 기타 모든 것을 빼앗게 된 것은 어떤 까닭이냐?

(一)
朝鮮 民族의 對外的 失敗에 말미암음이니,
新羅·渤海(신라-발해), 東北 兩國이 서로 對峙(대치)하다가,
北國은 契丹(거란)과 女眞에게
遺種(유종)이 全滅되고 土地도 全失(전실)하여,
「北國」·「海北」 等 名詞는,
겨우 三國 故人의 끼친 殘爛(잔난)한 書字로 남아있을 뿐이며,
이에 第二의 平壤 浿水가 平壤 浿水가 되고,
第一의 平壤 浿水는 길이 異域(이역)에 沈沒(침몰)하여
平壤 浿水란 이름도 保全(보전)치 못함이라.
<출처: 평양패수고>

殘爛(잔난): 사라져 흩어짐
길이: 오랫동안, 어느 때로부터 다른 때까지의 동안

조선민족의 대외적 실패때문이니
신라와 발해, 동북 양국이 서로 대치하다가
발해는 거란과 여진에게 남은 종족이 전멸하고
영토마저 전부 잃어버려
'북국-북해'등의 이름은 겨우 삼국시대의 옛 사람이 남긴
사라지고 흩어진 책의 글자로 남아있을 뿐이며.
이에 제 2의 평양-패수가 '평양-패수'로 되고
제 1의 평양-패수는 오랜세월동안 다른땅에 가라앉아
'평양-패수'라는 이름도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二)
朝鮮 文獻(조선문헌)의 缺亡(결망)함에 말미암음이니,
그와 같이 朝鮮民族의 對外勢力이 微弱(미약)하여,
一切(일체) 古代의 文化나 武力을 자랑할 만한 故蹟(고적)과 文獻(문헌)은
모두 埋藏 或 燒棄(매장 혹 소기)되고
오직 奴隸的 卑劣(비열)과 處士的 淡泊(처사적담박)으로
民族的 苟活(민족적 구활)을 圖謀(도모)할 때,
景德王은 北方 州郡을 南方으로 移設이설)하고,
金富軾(김부식)은 外交的 納媚(납미)의 文字로 지은 『三國史記』를 刊行하더니,
밋(이윽고) 蒙古 皇帝(몽고황제)가 史冊을 가져다가
竄削塗改(찬삭도개)를 妄加(망가)하니,
이에 地理 沿革이 가장 그 慘變(참변)을 만나는 同時에
平壤·浿水의 實錄이 모두 滅絶(멸절)하고 오직 그 名稱만 存在한 것이다.
그리하여 中國史가 僞證한 文字가 一世(일세)에 橫行(횡행)하나,
歷來의 學者들이 或은 忌諱(기휘)로 因하여
그 僞證을 僞證이라 하지 못하며,
或은 習聞(습문)으로 因하여 그 僞證을 僞證인줄 모르므로,
海城·平壤, 蓒芋濼·浿水는 겨우
尋常野史家(심상야사가)의 耳語(이어)로 남아있을 뿐이요,
平安道 浿水·平壤만 行世하게 되었다.
<출처: 평양패수고>

缺亡(결망): 이지러져 없어지다
燒棄(소기): 태워 없애다
卑劣(비열): 하는 짓이나 성품이 천하고 졸렬함.
苟活(구활): 겨우 살아남다
納媚(납미):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함
竄削塗改(찬삭도개): 숨기고 깍아내리고 더럽히고 고치다.
妄加(망가): 망령되게 더하다
尋(심): 캐묻다, 연구하다
尋常野史家(심상야사가): 평범한 민간역사가
慘變(참변): 끔찍하고 참혹한 변화
滅絶(멸절): 끊어져 사라짐
一世(일세): 온 세상에
橫行(횡행): 멋대로 행동함
忌諱(기휘): 꺼리거나 두려워 피함
習聞(습문): 익숙하게 들은 것
耳語(이어): 귓속말

(2)조선의 문헌들이 부족하고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와같이 조선민족의 대외적힘이 미약해서
고대의 문화나 무력을 자랑할만한 모든 옛자취와 문헌은
매장되거나 불태워지고
오직 노예적 비열과 은둔한선비로서 깨끗한 척이나하며
민족적으로 구차한 삶을 도모할새,
(신라)경덕왕은 북방에 있던 '주-군'을 남쪽으로 옮기고,
김부식은 외교적으로 아첨하는 글로 지은 삼국사기를 간행하더니
이윽고 몽고황제가 역사책을 가져다가
숨기고 깍아내리고 더럽히고 고치는짓을 망령되게 추가했으니
지리의 변천과정이 가장 참혹한 일을 당했고,
평양-패수의 실록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그 이름만 남은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역사책이 위증한 문장이 온세상에 멋대로 설쳐도
역대의 학자들이 꺼리거나 두려워 피했기 때문에
그 위증을 위증이라 하지 못하거나,
혹은 익숙하게 들어왔기 때문에 그 위증을 위증인줄 모르므로,
해성-평양, 헌우락-패수는 겨우
평범한 민간역사가들의 귓속말로 남아있을 뿐이요,
평안도의 패수·평양만 행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中國史家가 이 같이 僞證의 文字를 造作함은
어느 때에? 어떤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한 짓이냐?
傳說에 據(거)하면 唐人이 朝鮮의 强盛(강성)과 文明을 猜忌(시기)하여
唐 太宗이 一切 中國史에 보인 朝鮮에 關한 記事를 改竄(개찬)하고,
李勣(이적)과 蘇定方(소정방)이 高句麗와 百濟를 滅하고는
그 書籍을 沒數 燒火(몰수소화)하였다 하니,
이 말이 비록 어느 記錄에 보이지 않았으나
대개 可信할 말한 말인가 한다.
그러면 唐 太宗이 손댄 書籍이 무엇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개 『漢書』와 『晋書』가 가장 甚(심)할지니,
顔師古(안사고)가 唐 太宗의 寵臣(총신)으로
瀛洲(영주)의 學士列에 參與하여
깊은 帷幄(유악)에서 太宗 東侵의 謀議(모의)를 協助하는 同時에
<출처: 평양패수고>

改竄(개찬): 고침
瀛洲(영주): 신선이 있는 곳
帷幄(유악): 참모부, 작전 계획을 짜다
鼓舞(고무): 격려해서 용기를 북돋움
沒數 燒火(몰수소화):강제로 빼앗아 불태우다

그러나 중국역사가 이 같이 위증의 문자를 조작함은
어느 때에? 어떤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한 짓이냐?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당나라인이 조선의 강성과 문명을 시기하여
당태종이 모든 중국역사책에 보인 조선에 관한 기사를 고치고,
이적과 소정방이 고구려와 백제를 멸하고는
그 서적을 몰수해서 불태웠다 하니,
이 말이 비록 어느 기록에 보이지 않았으나
대개 믿을만한 말인가 한다.
그러면 당태조이 손댄 서적이 무엇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개 『한서』와 『晋書진서』가 가장 심할지니,
'안사고'가 당태종의 총애를 받는 신하로서
영예로운 관리의 반열에 끼어들어
깊은 참모부에서 태종의 조선침략계획에 협조하는 동시에

『漢書』 校正의 任(임)을 帶(대)하였은즉,
그 校正의 際(제)에
漢 武帝 四郡의 範圍(범위)를 擴張(확장)하며 位置를 移動하여,
朝鮮의 故疆(고강)을 거의 中國의 所有로 僞證하여
이로써 君臣 上下의 敵愾心(적개심)을 鼓舞(고무)하는 資料로 만들려 하였다.
그리하여 眞番·臨屯(진번-임둔)의 位置를 註할 때
「茂陵書무릉서」란 書名과 記事를 僞造하며,
地理志를 校閱(교열)할 때 樂浪郡의 部分을 僞造하며,
遼東郡 險瀆註에 臣瓚(신찬)의 말을 僞造 添入(첨입)하고
거기다가 「瓚說是也」의 例語(예어)를 揷記(삽기)하니,
이에 朝鮮의 地理가 아주 紊亂(문란)하였다.
<출처: 평양패수고>

故疆(고강): 옛 영토
校閱(교열): 검열하여 교정함
例語(예어): 규정이 되는 말
際(제): 어떠한 때나 날을 맞음.
添入(첨입): 더 넣음
揷記(삽기): 끼워넣어 기록하다
紊亂(문란): 질서등이 어지럽다

『漢書한서』 교정의 임무를 맡았으니,
그 교정을 할때
한무제 사군의 범위를 확장하며 위치를 이동하여,
조선의 옛 영토를 거의 중국의 소유로 거짓증언하여
이로써 군신과 위아래 모두 (조선에 대한)
적개심을 고무하는 자료로 만들려 하였다.
그리하여 '진번-임둔'의 위치를 주석을 달아 설명할 때
「茂陵書무릉서」라는 책이름과 기사를 위조하며,
지리지를 검열하여 교정할 때 낙랑군의 부분을 위조하며,
요동군 험독주석에 '신찬'의 말을 위조하여 넣고
거기다가 「신찬이 옳다」라는
'규정이 되는 말'를 끼워넣어 기록하니,
이에 조선의 지리가 아주 어지럽게 되었다.

응소: 후한시대( ?~204?)
신찬: (?—?)은 서진시대? 이름은 겨우알고 성은 모름(?)
안사고:(581 ~ 645)태종이 고구려공격할 때 도중에 병으로 사망

'신찬'이라는 인물은 안사고가 가공한 것일 수도 있다.

삼국사기등 기록.jpg

그 뿐 아니라 『南齊書』 「百濟傳」의 二葉殘缺(이엽잔결)이
或 百濟盛時의 「北據遼薊齊魯南侵吳越」註19)
『三國史記』에는
“高麗百濟全盛之時 强兵百萬(고려백제전성지시 강병백만)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 남침오월 북요유연제노)
爲中國巨蠹(위중국거두)”으로 되어 있다.
하던 海外 發展의 實錄(실록)을 唐 太宗이 削去(삭거)함이 아니냐?
『隋書수서』에 적은 東洋 古史上 未曾有(미증유)의 大戰爭의 記錄이
그같이 模糊(모호)함도 或 唐 太宗의 塗抹(도말) 或 改竄(개찬)이 아니냐?
中國 史冊이 唐 太宗 以前의 것이라고
어찌 中國人의 習性(습성)된 自尊的 心理로 著作한 것이 없으랴만,
다만 唐 太宗과 顔師古(안사고)가 손댄 書籍(서적) 같이
甚(심)하지는 않을 것이니라.
<출처: 평양패수고>

二葉殘缺(이엽잔결): 두 세대를 누락시킴
蠹(두): 좀, 쐐기
削去(삭거): 깍아내 버림
未曾有(미증유):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음.
模糊(모호): 흐리어 분명하지 못함.
塗抹(도말) : 덧칠해서 본래(本來)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함.
改竄(개찬): (글자나 글의 구절을)고침.
削去(삭거): 깍아내서 버림

그 뿐 아니라 『남제서』 「백제전」에 '두 세대를 누락시킨것'이
혹 백제전성기의
“북으로 요동, 계, 제, 노 지방을 차지하고,
남으로 오- 월 지방을 침공하였다"
<주19)『삼국사기』에는
“고구려,백제가 전성기때 강병이 백만이었다.
남으로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 유주-연나라-제 -노나라를 굴복시켜서
중국에 커다란 좀이 되었다.”으로 되어 있다. >하던
해외발전의 실록을 당태종이 깍아내서 버린것 아니냐?
『隋書수서』에 적혀있는
동양고대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큰 전쟁에 대한 기록이
그 같이 모호함도 혹시
당태종이 덧칠해서 본래(本來)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글자나 글의 구절을)고친것 아니냐?
중국의 역사책이 당태종 이전의 것이라고
어찌 중국인의 습성인 자존적 심리로 저작한 것이 없으랴만,
다만 '당태종과 안사고'가 손댄 서적같이
심하지는 않을 것이니라.

日本 學者 關野貞一(관야정일)의 努力(노력)에 依하여
成就(성취)한 朝鮮 古蹟圖本(조선고적도본)의 그 圖說(도설)에,
龍岡(용강)에서 發掘(발굴)한 黏蟬碑文(점제비문)을 記載(기재)하고
「歷來學者의 爭訟(쟁송)되던 列水(열수)는
곧 大同江됨이 可하다」 하였으나,
이는 곧 『漢書한서』 地理志의
「列水西至黏蟬入海:열수서지점제입해」와
黏蟬碑文(점제비문)이 「龍岡용강」에서 發見됨에 依하여 한 말이다.
그러나 만일 『漢書』 地理志의 樂浪郡 部分이 僞證(위증)임을 알았으면
이런 錯誤(착오)가 없었을 것이다.
<출처: 평양패수고>

記載(기재): 문서에 기록해 실음

일본인학자 '관야정일'의 노력에 의하여
성취한 [조선고적도본]의 그림설명에,
'용강'에서 발굴한 黏蟬碑文(점제비문)을 기재하고
「역사학자의 다툼거리던 '列水(열수)'는
곧 대동강이 옳다」 하였으나,
이는 곧 『한서』 지리지의
「열수는 서쪽으로 점제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와
'점제비문'이 「용강」에서 발견됨에 의하여 한 말이다.
그러나 만일
『한서』 지리지의 낙랑군 부분이 위증임을 알았으면
이런 '착오'가 없었을 것이다.

단재는 일본인 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그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듯 하다.
지나인들처럼 일본인들도 역사왜곡에 앞장서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정보의 부족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내용중에는 백제의 중국영토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북으로 요동, 계, 제, 노 지방을 차지하고
남으로 오- 월 지방을 침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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