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특기는 사서 고생, 산 넘어 산
그러니까 그건 오기같은 거였다. 갑자기 흘쩍 오른 에어인디아 비행기표가 괘씸해서 부린 오기.
올릴테면 올려봐라! 우리가 아쉬워할 거 같냐??
에어인디아의 대체로 고른 표는 하노이, 아메다바드, 델리까지 무려 서른시간이 걸리는 얼토당토 않는 표였다. 그러나 가격이 쌌고 10시간 정도 하노이에서의 새로운 모험이 우릴 살짝 설레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우리의 오기가 가소롭다는듯 에어인디아 비행기표가 다시 원래 가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편도로 계산한다면 우리 표는 세배의 시간이 더 걸리지만 비슷한 가격이었다. 우린 우리의 조급함과 섣부름을 탓했지만 따지고 보면 사서 고생은 평생 우리의 특기였다. 고작 몇천원인 릭샤비를 눈탱이 맞는 게 싫어 땡볕에 한시간 걷는 건 기본, 설산 보러 가겠다 덤벼들어 모래 산에서 가까스로 굴러 내려가거나, 퇴근 시간 맞춰 택시를 불러 공항가서 혼비백산하기 등 굳이 안해될 고생을 늘 사서 했다. 어디 사서 고생뿐일까, 모든 특가표를 다 놓치고 가장 비싼 표 사기, 카메라 잃어버리고 여행지에서 다시 사기, 알면서도 사기 당하기 등 온갖 멍청한 짓을 골라서 한다. 하지만 아무리 특기라 한들 이번 처럼 극악한 난이도의 사서 고생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돌아가는 편도 비행기를 살때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가장 싼 비행기는 올 때 탔던 것과 비슷한 루트였다. 하노이를 호치민으로만 바꾸면 된다. 레에서 델리에 오는 비행기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심지어 5~6000루피 까지 반짝 특가가 뜬 걸 봤지만 그것 또한 계속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지체하다 두배 비싸게 샀다. 오는 길에 사온 한국 식재료가 전부 사라졌기에 체크인 짐이 절대 15kg*2를 넘지 않을거란 과신했지만 2kg이 추가되어 안내도 될 추가 비용까지 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삐그덕댔다. 델리 공항에서 머지 않은 카페에서 시간을 떼우다 지겨워 공항으로 이르게 출발했다. 비행기 출발 4시간 반 전쯤 공항에 도착했다. 델리에서 아메나바드까지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치려고 올려놓고 보딩패스를 보는 데 뭐가 이상하다.
야 큰일났어. 비행기 지연됐나봐
뭐? 그게 뭔소리야?
원래 오후 7시 출발인데 10시 출발로 적혀있어.
아메나바드에서 호치민 가는 비행기는 몇시인데?
11시 50분, 도착시간이 11시가 넘으니 이건 절대 불가야
머릿 속이 하얘졌다. 우린 스카이 스캐너에서 최저가 검색으로 표를 사곤하는데 하필 취소하면 환불을 절대 안해주기로 유명한 키위 닷컴에서 표를 예약한 거다. 아메다바드까지 지연된 비행기를 타면 뒤의 두 티켓은 버려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 오늘 아메다바드 가는 비행기 없나요?
네 없어요. 이거 하나 뿐이에요.
혹시 다른 에어라인을 체크해줄 수는 없나요?
그건 할 수 없어요.
나는 심호흡을 하고 춘자에게 말했다.
전광판을 보고 아메다바드 가는 비행기가 있는지 살펴볼게.
머리가 핑 돌고 손이 덜덜 떨렸다. 분명 방금 전 전광판을 봤는데도 어디 있는지 몰라 헤맸다. 드디어 발견, 전광판으로 다가가 아메다바드, 아메다바드를 찾았다. 비행기 출발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은 너무도 빨리 힌디로 바뀌어서 바로바로 캐치할 수 없었다. 1시간 뒤 에어인디아와 3시간 뒤 에어 캐나다를 체크하고는 다시 체크인 카운터로 향했다.
1시간 뒤랑, 3시간 뒤가 있어. 이 표는 그냥 버리게 되는 건가?
2시간 이상 연착이 되는 거라 환불해준대.
오 너무 다행이다. 그러면 온라인 상에서 다시 표를 체크해볼게
혹시나 새로 예약하는 표도 연착이 될까봐 전광판에 이미 시간이 고지된 비행기표를 찾아 예약을 했다. 연착이 된 비행기는 스파이스젯이었는데 피터님의 시작과 끝을 파란만장하게 만든 바로 그 항공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파이스젯을 평생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직 한국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도 안했는데 표를 예매하고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니 기진맥진했다.
미리 공항에 온 거 너무 다행이야...
2시간 넘게 연착되어 환불 받을 수 있는 거 다행이야..
다행이야, 다행이야, 긍정의 회로를 애써 돌리며 웃어봤지만 영혼이 없는 가짜 웃음이었다. 1시간 반을 날아 아메나바드로 가니 포실포실한 구름이 하늘 전체에 깔려있다. 그 장관 아래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메나바드의 국내선 공항과 국제선 공항이 얼마나 가까운지는 이미 걸어봐서 알고 있다. 걸어서 20분 정도. 하지만 밖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고 큰 캐리어를 들고는 절대 걸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우버를 불렀지만 우버 버스 스탠드도 3분 정도 걸어야해서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비를 맞으며 우버 택시를 만나니 기사는 짐을 올려주지도 않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너네 어디가?
우리 베트남 호치민을 가
아마 비 많이 와서 비행기 취소될 걸
아냐, 그럴리 없어
짐도 들어주지 않던 무례한 우버 기사는 악담까지 늘어놨다. 심지어 고작 5분 거리를 가면서 톨비인지 주차비인지까지 요구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으나 에너지 낭비를 하고 싶지 않던 우리는 그냥 원하는대로 다 줘버렸다. 체크인을 하러 들어가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호언장담한 우버 기사의 말이 저주처럼 머리에 떠다녔다. '딜레이'였지만 다행히도 40분 정도라 인천 가는 비행기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두번의 딜레이에 폭우와 사기까지 온갖 액땜은 다했나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산넘어 산이 펼쳐졌다.
너 인도에 얼마나 있었어?
2달이요.
2달간 어디에 있었어?
델리랑, 라다크요.
라다크에서 얼마나 있었고 뭐했어?
두달 있었고 여행했어요.
사진을 보여줘.
너 무슨 일 해?
작가요.
무슨 글을 써? 어디 회사에서 일해?
1분만에 출국 도장을 찍고 바로 통과한 춘자와 달리 내게 집요한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출입국 관리 직원은 다른 직원까지 데리고 와 나를 압박했고 나는 어버버 거리면서 답변을 했다.
라다크에서 불교 사원도 갔어?
응 물론이죠.
너 종교는 뭐야
무교요..
라다크에 친구 있어?
인도에 대한 책도 썼거나 계획이 있어?
대체 왜 이렇게 나를 압박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인도를 좋아하고 라다크를 좋아해서 자주 온 거고 2달 동안 여행을 한거야. 이게 대체 왜 문제가 되지?
여행은 1~2주를 하는 거지. 2달은 여행이 아냐
아메나바드로 출국한 것이 실수였다. 델리에서는 워낙 다양하고 톡득한 여행 패턴을 지닌 사람이 많아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아메나바드였던 것이다. 나는 집요한 질문에 성실히 임했고 그들은 내 책 사진과 명함 사진까지 찍어가며 30분 간의 고문을 일단락했다. 그렇게 탄 아메나바드에서 호치민으로 가는 비행기편은 지옥 그 자체였다. 나는 내가 비행기를 탄 게 아닌 무슨 스탠딩 바에 온 줄 알았다. 예닐곱의 인도 남자들은 비상구 좌석에 서서 위스키를 병채 콸콸 따르며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바로 우리 앞이었다. 뒤에는 젊은 인도 청년들이 수다를 떨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여기는 수학 여행의 현장인가...비행기인가...비엣젯 승무원들은 그들을 전혀 저지 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유롭게 상공에서 자유 보행하며 술을 마시고 노는 이 장면은 내 비행 인생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휴지를 돌돌 말아 귀를 막았으나 모든 소리가 휴지를 뚫고 들어왔다. 5시간 동안 나는 전혀 자지 못했고 허리가 아파 자세만 백번 정도 밖면서 '퍽킹, 인디안, 퍽킹 비엣젯'을 속으로 수만번 외쳤다. 그렇게 도착한 호치민... 원래는 공항에서 걸으면 15분 거리의 시내에서 쌀국수와 커피를 먹으며 여유를 즐길 예정이었지만 딜레이와 누적된 피로로 다 캔슬. 그저 공항에서 샤워를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5시간의 공항 대기가 지나고 5시간의 비행이 지나고 한국 도착...백년 같던, 백년의 고통같던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ㅋㄷㅋㄷㅋㄷㅋㄷ 허당 춘자들
나만 허당아니니까 개행복
심보가....
메롱
쿨럭- 믿기지 않아서 다시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썰은 이미 충분한데 더 한 걸 만들어주시네
쓰면서도 믿기지 않았아요...저런 걸 거쳐서 한국에 왔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