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C09.시코쿠 순례길 ~11번(Shikoku Henro, 藤井寺)
노숙인데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 앞의 노숙이라 최대한 빨리 일어나야 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폰을 눌러대며 밤새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배터리 3개 중 2개를 다 썼다. 라우터를 빌려왔으면 좀 나았을텐데 시골에서의 휴대폰 로밍이라 인터넷 속도도 느리고 배터리 소모도 빨랐다. 지금처럼 배터리 일체형 휴대폰이었으면 보조배터리를 몇개씩 들고 다녀야겠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 올리려는 의도로 포스팅 하고 있는데 막상 열어보니 똑딱이 디카로 찍은 게 훨씬 많다.
새벽 다섯시 반, 꾸물거린 것도 아니고 눈 뜨자마자 침낭을 접고 있는데 길 건너편 집에서 할머니가 얼른 대문을 열고 나오셔서 내 손에 음식을 쥐어주셨다. 나름 서두르셨겠지만 제법 먼 거리였는데,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힘차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오셋타이, 순례객들에게는 친절하게 해야 한다는 이 지역 사람의 관습 같은 것이 있다고 하더니. 내가 눈 뜨기 조금 더 이른 시간부터 나를 지켜보고 계셨던 게 아닐까 싶은 느낌이었다. 아리가또,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더 보탤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죄송했다.
34.08985869825184, 134.3444058082524 다리 이름은 요시노 강의 아와중앙교(아와츄오바시). 적당히 녹슨 다리를 보면서 쇳가루를 덮어 쓴 포항의 다리가 떠올랐다. 주변에 제철공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붉었다.
차량 통행량도 별로 없는 이 작은 길에, 크지 않은 가게에 사람이 나와서 교통정리 하는 모습이 생소했다. 차 트렁크쪽에 동그라미 네 개가 그려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차량이 많았는데 나중에 보니 '노인이 운전하는 차량'이라는 뜻이란다. '일단정지'라고 쓰여진 곳에서는 아무도 없는데도 일단 정지했다가 출발하는 모습도 생소했다.
방학중이라 사람이 없는 소학교吉野川市立飯尾敷地小学校. 따로 교문을 닫아둔 것도 아니길래 기웃거렸는데 낡은 듯 하면서도 관리가 잘 된 느낌이었다. 가정집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무채색에 가까워서 실제보다 더 낡아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11번 절, 후지이데라에 도착. 이제 산을 하나 넘어가야 하는데 여기가 순례길 중에서는 꽤 힘든 길이라 했다. 그래서 여기 주변엔 숙소가 몇 개 있는데 전날 밤에 조금 더 걸어 왔으면 편안히 숙소에서 잔 뒤에 아침 일찍 산을 넘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남들 다 가는 시간에 남들 다 가는 코스로 가야 고생을 덜 한다.
절에서 나와 오솔길을 한 굽이 돌아서니 작은 불상들이 줄지어 서 있다.
@maikuraki님이 당신을 멘션하였습니다.
https://www.steemit.com/@maikuraki/2021-06-22-kr
길에 사람이 없는데 그런 타이밍에 찍으신건지, 원래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건지 궁금하네요 ㅎㅎ
주민이 별로 없는 동네에, 한여름 뙤약볕이라 순례객도 거의 없었습니다ㅎㅎㅎ사람이 없어서 안 나온 거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