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C07.시코쿠 순례길 ~8번(四国お遍路, 熊谷寺)
괜히 가방을 무겁게 해서 다녔다. 가게를 찾기 힘든 동네긴 했지만 길어봐야 며칠 걷는건데 옷이 없으면 사면 되고, 옷과 신발이 비에 젖어 마르지 않으면 숙소에서 하루 더 쉬어도 되는건데. 그래도 가방에 넣어갔던 것들은 모두 사용했다. 버려도 되는 것들을 챙겼기에 쓰다가 버리고 왔어도 되는데 또 그러진 못했다.
내 허리가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때 제법 상했던 것 같다. 알뜰살뜰 손에 쥔 건 하나도 놓기 싫은 욕심이 나를 다치게 했다.
6, 7, 8번 사찰(安楽寺, 十楽寺, 熊谷寺)까지 사진은 많지만 구글지도로 보면 몇 시간 안되는 거리다. 막상 살펴보면 잘 찍은 사진이 있지도 않다. 동네구석이 궁금해서 이 길로 들어갔다가 저 길로 나오고 경치 좋으면 주저 앉아 보이는대로 찍다보니 그런 것 같다.
누구에게 하는 경고일까, 운전자? 보행자?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이름난 사찰이 종단 소유인 것과 달리 이 동네는 모두 개인소유인 듯 했다. 문화재로 관리되어 개보수가 힘든 우리네 사찰과 달리 이래저래 개인적으로 손 댄 흔적이 많아 절집 모양새는 다들 비슷해 보였다.
일주문에 해당하는 절의 입구가 2층짜리 누각으로 지어져 있고 1층은 사찰의 출입구, 2층은 종각 겸 순례자들이 비를 피해 잘 수 있는 방으로 쓰이고 있었다. 전날 밤에 누군가 박스를 깔고 자고 간 흔적이 보였다. 이불과 우산은 절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처럼 보였고.
본존불은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도록 해 두었다. '친견'하려면 돈을 더 내야한다. 절의 입장료는 없지만 절의 보물에 해당하는 본존불을 가까이서 보려면 돈을 내야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홍법대사의 일대기를 조각하여 절에 봉납. 시주받은 물건들에는 명확하게 '누가 언제 주었는지' 밝혀놓았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다가 만엔 지폐에 그려져 있는 걸 보고서야 아!
흙벽 위에 나무로 마감한 게 삭아서 떨어졌다. 나무로만 짓는 게 아니었구만.
길 가다 들러본 사람없는 신사.
곳곳에 버스정류장처럼 생겨서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순례자 쉼터가 있다. 방명록을 뒤적거리니 한글이 보이는데 둘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뭔가 감성에 충만한 글과 현실적인 글.
예전에 KBS 다큐멘터리에서 뵈었던 분들이다. 이곳에 순례자를 맞이하는 가건물을 지어놓고 지나가는 사람을 무조건 끌어 앉혀다가 간식류, 음료를 먹이는 분들이다.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걸 '오셋타이'라고 부른다. 뭔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자세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 동네 출신 유명인인가보다. '삼목무부'로 검색해보니 72년도에 일본 부수상을 했던 사람이다. 90년대 이전의 기사들은 한국식 독음으로도 검색이 된다. 삼목무부(미끼 다께오)가 부수상을 사임하는 바람에 전중각영(다나까 가꾸에이)내각이 위기에 처했다는 식이다.
건물 내부에 사람 이름이 쓰인 스티커가 많이들 붙어있다. '누구누구 다녀감' 낙서의 고급 버전인가보다.
start success go! go! go!
순례길. 매력적입니다. 곳곳에 찍혀 있는 풍경이 뭔가 익숙하면서도 그립기도 하고 그렇네요. 오래 전 일본 여행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릅니다. 시골 동네 구석구석을 쏘다니는 걸 좋아하다보니, 올리신 사진들이 저의 취향을 관통했네요. ㅎㅎ 아마도 오랫동안 일본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괜히 더 반가운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취향에 맞다니 다행이네요. 오래전 여행 기록인데 지금 다시 보면서 좋은 카메라 하나 살껄 하는 후회가 듭니다. 일본 내에서는 유명한 순례길이라 보호자가 차에 임종 직전의 환자를 태워 순례하기도 하고, 취업을 앞둔 20대가 자전거를 타고 순례하기도 하고, 죽기전에 100번 순례하는 게 목표라면서 매주 주말마다 순례하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멋진형이다
ㅋㅋㅋㅋ고맙..
@maikuraki님이 당신을 멘션하였습니다.
https://www.steemit.com/@maikuraki/2021-06-18-kr
@naha님이 당신을 멘션하였습니다.
https://www.steemit.com/@naha/6-16
고생 많으셨겠네요. 저는 산티아고 순례길만 5번 걸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산티아고는 너무 멀고 제주도는 너무 가까워서 저기를 선택했는데.. 막상 걸어다닌건 사나흘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은 맛보기였고 내년에 다시 가야지 하면서 미룬게 벌써 몇년째인지 모르겠네요.
@naha님이 당신을 멘션하였습니다.
https://www.steemit.com/@naha/6-17
저도 가고 싶네요, 아니, 갑니다. 인제..돈이..있거든요.
축하드립니다. 그 돈, 앞으로 점점 많아질겁니다. 멀리도 가시고 가까이도 가시고 많이 다니세요. 저는 애가 많이 자랄 때까지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