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데

in #freekr6 years ago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를 다녀왔다. 마침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제주에서 사는 직원이 결혼식을 하는지라 기회가 좋았다. 수십년간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어 가는 상황인지라 제주도 여행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이들도 다커서 이제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굳이 간섭할 것도 별로 없다. 집사람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주변에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하루종일 바쁘다. 문제는 나다. 나만 잘 살면 된다.

같이 퇴직한 친구들을 만나서 보니 다들 나와 입장이 비슷하다. 나이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일 힘든 것이 무료함이라고 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사실인 듯하다. 나보다 몇년 먼저 퇴직한 친구들을 보니 정말 힘들어 한다. 처음에는 주로 산을 다닌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어떤 친구들은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다니는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없이 산을 다닌다. 그러더니 어느 정도 되면 산도 그만 둔다.

돈도 떨어지고 나면 친구를 만나는 것도 뜸해진다. 그때 쯤 무료함이 다가오는 것 같다. 죽음보다 힘들다는 무료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무료함이야 말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인 듯 하다. 평생 내가 아닌 남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 스스로를 돌아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가만 보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조용히 앉아 있자면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나를 주체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머니는 무료함을 정말 잘 다루시는 것 같다. 50대 중반부터 그림을 그리셨다.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그림을 그리셨다. 매주 그림모임에도 가시고 한달에 한번 야외 스케치를 하러 가시기도 한다.

이번 제주여행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가시겠다고 한다. 제주 여행 내내 비가 왔다. 그래서 주로 실내를 다녔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이다. 제주 갈때 마다 풍경을 보러 다녔는데 이번 기회에 제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매번 어머니를 모시고 다닐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시간이 좀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친구들 만나면 우리는 자식에게 가진 것 모두 바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부모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자식들에게 그런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가? 자식들 다 컸으면 그만이지. 내가 아이들에게 효도 받으려고 키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내 마음 가는데로 했다.

내삶은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날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바치셨다.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이제 껍데기만 남은 어머니. 이제 자식도 다 컸으니 자연스럽게 눈이 부모님께 향한다. 현직에 있을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한번도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했다. 그것이 못내 아쉽다.

퇴직금 받아서 차를 주문했다. 좀 큰 SUV를 살 생각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더니 피곤해 하신다. 그럼 나이가 얼마인데 그러지 않을까. 어머니가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겠다. 그동안 내 힘 자라는 만큼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고 싶다. 평생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셨다.

내삶이 중요하고 귀하면 다른 사람의 삶도 귀하고 소중하다. 하물며 부모님의 삶이야 더 무슨말이 필요할까. 퇴직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다시 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모두 물리쳤다. 항상 앞만 보고 살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러서고 뒤를 돌아볼 시간도 필요하다.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말이다.

어버이 날을 휴일로 정하자고 하니 젊은 엄마들이 제일 많이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들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졌고 땅에서 솟아낳고 알에서 태어났나?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냥 행복하지 않다. 전철에서 방황하는 늙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저리다. 강남 부촌의 전철역에서 아무도 사가지 않는 채소를 놓고 파는 할머니를 보면서 삶이란 모질고 모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언뜻 보기에 늘그막에 전철역 좌판에 앉아 있을 상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저 분은 저렇게 하얀 목각 인형처럼 처연히 앉아 있을까.

Sort:  

효자 이십니다.

저 웃대 어른들 발끝에도 못 따라 갑니다

옛날처럼 3년상 같은 것은 하기 힘들 것 같고요,
살아 계실 때라도, 최대한 행복하게 해 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 같습니다.
님은 충분히 효의 모범이 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 oldstone 당신은 인생을 즐기고,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하고 손자 인사와 함께 농담을한다....나의 한국어가 나쁘면 이전에 미안 해요.

Thank you for your comment.
I understand your comment.
really appreciated for your reading

올드스톤님의 마음가짐을 아마 아이들도 배웠을겁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제 아이들이 올드스톤님 모시고 여기저기 다닐 것 같아요

글쎄요.
그 아이들때는 지금 보다 더 바쁘지 않을까요

부모님에 대해서 많이 생각나게 되는 글이네요.
아이가 생기다 보니 모든 포커스가 아이에게 맞춰져 있어 어버이날에만 챙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앞으로는 부모님에게 조금 더 아니 힘 닿을 정도로 해드릴 수 있는 건 해드리고 싶네요^^

매일 전화 해드리는 것이 제일 큰 효도인 듯 합니다

오늘 아버지와 사소한 다툼을 하고 이렇게 글을 보니 느끼는 바가 많은 글입니다. 새차 타시고 어머님과 주행거리 5만, 10만, 20만키로 더 많은 세상을 함께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삶은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다.

어느 세대에나 새겨야 할 문장인 것 같습니다.

차가 두달은 있어야 나온다네요

어버이날 휴일 반대 이유

  1. 시댁가야해서 싫다.
  2. 친정도 가야하고 시댁도 가야하는데, 뻔히 시댁만 갈것 같다.
    모 웹사이트에서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반대의 이유가 ㅡㅡ^

어머님께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자녀분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

오죽하면 저런 답변이 나왔을까 이해는 됩니다만..., 그래두..., 리얼루다가 골때립니다 ㅠㅠ

다 핑게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이지요.
남은 생각하지않고 자신만 생각하도록 만든 우리들 책임입니다

올드스톤님 멋지십니다^^ 내년에는 휴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의희생이 있어 제가 있다고 생각하네요 ㅜ

감사합니다

처연한 무료함을 볼 때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올드스톤님 어머님께서는 멋지게 무료함을 극복하셨네요.
올드스톤님도 그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주 못 간지 오래되어서 제주도 사진을 기대했는데 한 컷도 남겨주시지 않으셨네요. 아쉬워요. 다음에 한번 보여주세요.^^

어머님과 함께 하셨을 평온한 제주 여행이 그려집니다.

죽음보다 힘들다는 무료함....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무료함이야 말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인 듯 하다. 평생 내가 아닌 남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 스스로를 돌아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참 잘 읽었습니다. 내 자신을 보고, 내 자신을 만날수 있는 시간이라면 무료함이란 아주 귀중한 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게 그렇게 쉬운 것 같지는 않은 듯 합니다.

어버이날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 다녀오셔군요. 칭찬/응원^&^
저도 담달 준비 중입니다.
퇴직 후 느끼는 남자들의 무료함.. 말씀하신 것 처럼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네요. 저의 아버지도 오래전 많이 젊은날네 퇴직하시고 힘들어 하신 생각이 납니다. ㅠㅠ 직장생활 할수 있늘때 까진 이곳에 충실해야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31
TRX 0.11
JST 0.033
BTC 64550.89
ETH 3156.32
USDT 1.00
SBD 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