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뽑은 오늘의 역사(1910년 2월 14일)

in #busy7 years ago

우리가 아는 발렌타인 데이~~?

그날이 바로 우리나라의 영웅 안중근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랍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 사실을 숨기려 우리한테 얄팍한 상술로 초코렛을 주고 받는 날로 만든겁니다.

참 믿기힘든 역사적 치욕입니다.

31살의 젊은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린 대한민국의 영웅이 사형선고를 받은 날인 2월 14일.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될 것 같아요 ~~~

앞으로 2월14일 초코렛 사지도 주지도 맙시다.

그래야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우리 아이들한테 당당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널리 공유해 주세요!

대한민국의 역사를 우리 부모세대가
제대로 알고 이것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그럼 안중근의사에 대해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안중근[安重根,1879.9.2~1910.3.26]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삼흥학교(三興學校)를 세우는 등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만주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순국하였다.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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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생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태어났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명(兒名)을 응칠(應七)이라 지었으며,
    자라서는 자(字)로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안태훈이며 할아버지는 안인수로 진해현감을 지냈다.
    할아버지가 미곡상을 하여 집안은 부유하였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2. 청년기
    말타기와 사냥에 능했으며 포수들 사이에서도 명사수로 알려졌다.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 안태훈이 사병을 조직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가담하였으며,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을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도마[Thomas, 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3. 의병활동
    1904년 홀로 평양에 나와 석탄상을 경영하고 이듬해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는 것을 보자
    상점을 팔아 1906년 그 돈으로 삼흥학교[三興學校;후에 오학교(五學校)로 개칭]를 세우고,
    이어 남포(南浦)의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인수하여 인재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국운(國運)이 극도로 기울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바로세울 수 없다고 판단하여,
    1907년 연해주(沿海州)로 가서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듬해 전제덕(全齊德)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겸 특파독립대장(特派獨立大將) 및 아령지구(俄領地區) 사령관의 자격으로
    엄인섭(嚴仁燮)과 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일군(日軍)과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퇴하였다.
    이후 노에프스키[烟秋]에서 망명투사들이 발간하는
    《대동공보(大同公報)》의 탐방원(探訪員)으로 활약하는 한편
    동료들에게 충군애국(忠君愛國) 사상을 고취하는 데 진력하였다.

  4. 동의단지회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였다.
    그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상(財務相)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하여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동지 우덕순(禹德淳)과 함께 거사하기로 뜻을 같이하고
    동지 조도선(曺道先)과 통역 유동하(劉東河)와 함께 이강(李岡)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5.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 플랫폼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森泰二郞],
    만철 이사(滿鐵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6. 순국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旅順]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하였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옥중에서 휘호한 많은 유묵(遺墨)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70년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 471번지에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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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아~ 몰랐던 사실이네요 ㅠㅠ

네~~ 감사합니다..

저도 어제 글을 올렸습니다.
https://steemit.com/kr/@asap999/2-14

알고 계셨다니 감사합니다.
어제 올렸을줄 은 몰랐네요..

아 발렌타인데이가 이런날이었군요 감사합니다!

아 부끄럽네요 앞으론 잊지않겠습니다.

2018년에는 두루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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