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사회에 묻는다: 안녕들하십니까?

in #busy8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JOHN입니다.


사회문제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때는 2013년 겨울, 내가 군인이었던 시절이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드러나고, 철도민영화에 반대한 수 천명의 직원들이 직위해제되던 그때, 대학생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염증을 느끼며 대학에 대자보를 붙였다. 세상을 향해 진정으로 안녕하냐고 물었고, 많은 젊음들이 자신들은 안녕하지 못하다며 대답했다. 물론 그때의 나도 안녕하지 못했기에, 이런 저런 글을 쓰며 슬픈 생각을 달래곤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의 분노는 정제되지 않은 분노의 표출이었을 뿐, 철학이 없었고 또 조직화된 힘이 없었으므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운동(Movement)이 될 수 없었던 우리의 물음들은 역시 오래지 않아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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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폭력을 마주한다. 갑자기 성적 폭력의 이슈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피해사실을 밝힌 폭로자가 검사나 정치인, 또는 연예인처럼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폭로로 인해, 우리사회 어두운 구석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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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서열화가 권력을 만들고, 인간을 타락시킨다.

평범한 인간들이 위계질서가 있는 사회집단에 놓이는 경우, 너무도 쉽게 권위에 복종하기도 하고 타락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역사적 증거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도 많다. 위계적인 사회구조는 인간이 모두 동등하게 존엄하고, 또 평등하다는 준칙을 쉽게 망각시키게 한다. 최근에 폭로되는 수많은 성적 폭력들은 대부분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며 상명하복이 미덕인 조직에서 나타나고 있다. 검찰의 조직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예술계에도 연극단처럼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들이 많다. 당시 열아홉 살 정도의 나이에 이윤택, 하용부 등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이처럼 성적 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폐쇄적 구조의 하층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은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무섭고 끔찍했다"
"그 사람은 그곳에서도 왕과 같은 교주였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왜 진작에 자신의 피해를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질서가 지배적인 집단에서 가해자들이 일상화된 폭행을 반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반면 피해자들은 그것을 방어하거나 폭로하는 데엔 너무나 큰 상처를 감내해야만 한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냈다고 하더라도 일차적으로는 '사회화'된 시선의 폭력을 참아내야 하고, 이차적으로는 경제적인 보복을 감수해야 한다. 사실 이것을 이겨낼 사람들은 거의 없다. 권력이 있는 곳에서 인간은 타락하기 쉽고, 천금 같은 도덕률을 위반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과거 소위 '일류기업'이라 불리는 회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었다. 회사의 행사 때마다 종종 회식자리가 생겼고, 그곳에서 부장님은 꼭 여성직원을 임원의 옆자리에 앉히고 싶어했다. 사실 누구나 이런 관행이 옳지 않음을 알지만,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할 때 돌아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동료들의 침묵, 그리고 승진과 관련된 위협 등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발설할 사회적인 힘이 없는 상황에서는,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침묵 아니면 폭력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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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물음은 피해자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음의 발로다.

2. 가해자들이 보이는 인지부조화, 혹은 심각한 타락

성폭행 논란이 발생하면 가해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그들은 대개 '오래된 일이라 혹은 술에 취했기에 기억이 안나지만' 등의 단서를 붙이고는 강제성을 부인한다. 설령 그 행위를 인정하더라도, '사랑에 기초한 관계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들의 잘못된 행위가 문제시 됐을 때, 자신의 기억이나 믿음을 왜곡시키는 전형적인 인지부조화다. 문단 내 성폭력으로 논란이 된 고은은 자신이 거처하던 수원을 떠나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 이유는 성폭력 때문은 아니란다. 그들의 말엔 반성과 성찰이 없다. 그들에겐 사람에 대한 존엄이 없고, 그들의 영혼엔 휴머니즘이 없다. 이들이 법을 말하고, 인간의 영혼을 노래했던 자들이었다니!

피해자들은 자신이 고통을 받았다고 분명한 1인칭으로 말하는데, 가해자들은 유체이탈의 화법으로 그 강제성을 부인한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격렬히 저항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동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저항하지 않음'은 결코 동의를 뜻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왜곡된 동의의 관념이 사회적인 인지부조화를 유발한다. 지배사회에 물든 많은 대중들은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서, 피해자의 평소행실을 문제삼고, 취향을 질타하며 그 사람에 관한 왜곡된 아이덴티티를 구축시킨다. 그렇게 자신들의 신념을 쉽게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러고나면 진짜 피해자는 괴물이 되고, 권력을 잃은 가해자를 동정하게 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보이는 인간의 이중성은 사실 주류사회의 현실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가 묵과되는 사회들은 인간적 가치보다 힘과 권위를 숭상하고, 관습에 얽매이며,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정신이 곳곳에 스며든 사회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그런 곳에서 피해자들은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제야 수많은 사람들이 절절하게 "Me-too"라고 외치는 것은 그 폭력의 본질이 지극히 사회적이고, 구조적이라는 걸 방증하는 증거다. 사회의 어두운 한 구석에서 많은 여성들이 폭행을 겪는 동안, 우리 대부분은 그 고통들을 알지도 못하면서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태연히 살아왔다.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악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절규하고 있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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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E TOO : 방관이 아닌 참여로

때론 성추행과 성폭력이 '작업'이라는 말로 대치되는 이 사회에서, 가해자의 폭력만큼이나 문제가 심각한 것은 그저 그것을 방관하는 자세다. 사회에서 나타나는 불의를 알면서도 그것에 항거하지 못하는 것, 심지어는 그 사태의 부정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모든 사회적 신분에 관한 레테르들에 앞서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지성을 갖고, 또 감정을 표출하면서, 사회에서 살아가야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폭행이 만연한 사회에선 사람이 살지 않는다. 끈적끈적한 욕망이 살 뿐이고, 서열화된 지위가 살 뿐이다.

그리하여 운동(Movement)이 필요하다. 이 부패한 사회를 바꿀 철학이 필요하다. '말할 수 없는 존재'였던 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할 힘이 필요하다. 세상의 부조리를 바꿀 첫 출발은 한 개인의 큰 용기에서 탄생했지만, 이제 그 용기는 사람들의 참여를 부르며 진보와 변화를 갈망하는 큰 힘으로 변하고 있다. 그 힘의 이름은, 바로 "ME TOO"다. 나 또한 끔찍한 고통을 당했다는 폭로에의 동참이자, 그 용기에 나도 함께한다는 격려이며,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길 염원한다는 연대의식이 실체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변환점에 서 있다. 권위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평등하고 존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연대를 보고 있다. 이것은 위대하지만, 우리가 주목하고 있지 않은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 보통의 남자들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 폭력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로부터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여자친구, 그리고 딸들의 행복을 바라고, 그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사회의 유지와 관련된 문제기 때문에, 지성적인 존재로서 우리는 응당 양심적인 고통을 느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 남자들은 새로운 ME TOO로써 운동에 동참해야만 한다. "나도 이제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나도 이제 절대 침묵하지 않겠다고"

지금 정말 안녕들하십니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 물어옵니다. “안녕들하십니까?”
제가 서 있는 곳에서는 그 물음이 마음의 상태를 묻는 안부도, 사회를 꼬집어 비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사람 대 사람 간의 인사人事가 아닌, 위아래로 놓인 계급구조 하에서 당연한 의례이고 준칙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사람을 대등한 위치로 보지 못하고 흘려 지내온 시절이 1년을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많은 것을 잃어서, 세상의 소식이 무감해져서 그런지 날카롭던 젊은 날의 이성이 많이도 무뎌졌습니다. 불의를 보면 들끓었던 모난 가슴도 쉬이 식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대학생들이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인 줄 알았습니다. 오래도록 물음을 던지기보다는 정답만을 찾으려 학습되어온 무력한 습관과 타성 속에서, 우리가 어느 것도 할 수 없던 것은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저 또한 그리 자위했었습니다. 물론 그 고민은 제 고민만은 아니겠지요. 제가 무력함을 느꼈듯 당신도 그런 것을 함께 느끼고 말하며 생각했었을 겁니다. ‘왜 우리는 힘이 없는지.’ ‘왜 우리는 말을 할 수 없는지.’ 그리하여 ‘왜 우리는 어느 것 하나 바꿀 수 없는지.’
어쩌면 낭만과 자유로 무장하고 찾아간 대학에서 피부 깊이 이식해버린 건, 살아 숨 쉬는 큰 배움과 진리들이 아니라, 죽어 딱딱해진 이론과 차가운 자본과 권력에서 오는 큰 실망과 큰 상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얻게 된 건, 당신들과 나의 다양함과 존엄함에 비춰 한정 없이 확장해 나갈 삶이 아니라, 무의미의 제로섬 속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비교우위를 만들고 경쟁하려 하는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빛이 없는듯한 어둠에서 외로이 불안해하며 슬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갑작스런 현상은 용기있는 한 사람의 행위로 촉발되었을지 모르지만, 단시간에 이렇게 큰 힘을 낼 수 있는 건 단지 인터넷 공간에서의 기술적 혁신만이 아닌,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양심과 공감에 있는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오랜 진화적 시간 속에서 보존하고 다듬어 온 양심이란 것이 가슴에서 묻습니다. 이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경쟁하려는 의도가 아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고 또 좀 더 나은 진보적 인간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한 내면적인 갈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요. 그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모두의 절박함이 외침을 떠나보내 동참하게 만든 것인가요. 우리가 모일 수 있고, 그리하여 변할 수 있으며, 변화시킬 수도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누구든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을, 또 없을 것을 압니다. 상처도 있을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언가 자신만을 돕기 위한 행위가 아닌, 사회에 조금씩 시선을 보내고 말을 건네다보면 암담해 보이더라도 조금씩 변할 수도 있겠지요.
제 시간이 당신들의 시간과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아 아쉽지만, 적지 않은 시간동안 불안했던 마음이 지금은 조금은 평온합니다. 함께 갈 수 없더라도 마음만은 보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마음들이 함께하고, 또 함께 필요히 분노하며, 함께 논하는 이 경험이 삶 속의 특수한 예외가 아닌 보편적 경험이길 바랍니다. 옳다고 여기는 가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했던 여러분들이, 그리고 말 할 수 없는 하위주체로 남기를 거부하고 불의 앞에 물음을 던진 우리의 젊음도 건승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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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가슴이 뜨거워지는걸 느꼈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수직적인 사회 구조의 병폐가
이윤택, 하용부 등과 같은 돌연변이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미투운동을 통해 환부를 도려내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나아가 그곳에 새살이 돋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문화적 제도적 기반이 철저히 구축이 되도록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보해

전적으로 동감하고 지지합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폭로들을 보고 분노, 아니 참담함을 견딜 수가 없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환부를 도려내야, 새살이 생기겠지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 많은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사람이 사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동참하고 함께 감내해야 할 슬픔인 것 같습니다.

@euijin님 안녕하세요. 별이 입니다. @showroo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문제의 본질이 사회 곳곳에 뿌리 박힌 권위적인 권력의식, 그리고 폐쇄적인 수직성이라면 정말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겠지요. 이 운동이 여성들의 위대한 용기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더 나아가 사회 곳곳의 문제들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엔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이 너무도 많으니까요.

많은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저도 많은 사회적 폐해를 보고 , 어떻게하면 바꿀 수 있는가를 고민해보곤 합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근본적으로 바꾸지않으면 깨진 항아리에 물붓는격이 아닐까.. 바꾸기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소비될거 같습니다 그러나 해야할 일이겠죠

저도 이번 사태를 보고 너무도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우리 사회엔 너무 많은 비이성과 광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자신의 피해를 얘기한 그 날, 제가 속한 한 커뮤니티의 몇몇 분들은 피해자의 아픔을 너무 쉽게 비아냥거리더군요. 피해자는 고통을 말하는데, 그들은 성형을 말하며 그때 즐겨놓고 이제와서 폭로하는 진의가 뭐냐는 그런 의혹들을 제기하더라고요. 사실 이런 타성에 젖은 광기가 악(惡)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비이성을 우리 주변에서 마주할 때마다,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용기이자 최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도화된 권위의식은 사실 우리 행동에 깃든 문화라서, 그것을 단시간에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이고, 잘못된 것인지를 가려내는 행동들이 조금씩이라도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그걸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참여를 하여 그동안 잘 못 된것은 바꿔나가야 하며 지위 고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막론하고 죄지으면 벌받고 선행하면 칭찬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직 대통이든 삼성의 회장이든 부회장이든 그들의 사고 방식이얼마나 치졸하고 법을 유린하며 이 사회를 병(病) 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자기 손에 조그마한 파워라도 있을라치면 우리에게도 찾아오는 저 병들은 우리 모두가 참여하여 스스로 돌아봐야 사라질 병(病) 들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맞습니다! 저것은 '사람은 모두 대등하고 존엄하다.'는 상식, 그리고 그 준엄한 진리를 왜곡시키는 병(病)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치료제는 관심과 참여뿐일테니. 관심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팔로우 하고 응원합니다. 제가 할수 있는 참여는 하고 있지만 해외다 보니 미흡합니다.^^

관심을 갖고 참여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십니다. 저 또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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