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자아와 아이 자아
한 초등학교 안. 6-4라는 팻말이 걸린 교실에 한 아이가 우두커니 앉아서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다. 소설이다. 그 아이는 때때로 자기가 쓴 소설을 큰 소리로 읽고 있으므로, 교실 바깥에 있는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 내가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아이에게 그 소설을 보여달라고 해도 아이는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다른 책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들을 보여주면서 설득해도 고집이 센 그 아이는 원고를 품에 꽉 눌러서 숨겨버린다.
이 교실은 나의 내면을 상징한다. 나는 내면에 아이 자아와 어른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 이중인격이나 해리성 정체감 장애...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자아는 어쨌든 두 개이다. 내면의 아이 자아는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소설가이며 아이디어 뱅크이다. 다만 상처도 많고 겁도 많아서 자기가 쓴 소설의 원고를 세상에 내놓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아이 자아가 용기를 가지게끔 어른 자아인 나도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이 자아의 전문분야가 소설인 데 비해, 나는 에세이와 칼럼을 주로 작성한다. 나름 아이 자아와 맞춰가려는 시도를 하지만, 여전히 아이 자아는 고집이 세고 자신감이 없다. 옛날처럼 소설을 큰 소리로 읽기는 하지만, 내게 보여주지 않는 행동을 계속한다.
내가 일자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는 내면 아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두 명분의 일자리가 필요한 인간이었다. 지금 밖에 나와있는 어른 자아의 일자리 하나와 내면 아이가 용기를 가지고 집필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자리 하나. 그런데 현실에 존재하는 나는 한 명이고, 필요한 자리는 두 자리이니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세상의 일자리 대다수는 나의 어른 자아만을 허락한다. 그리고 아이 자아를 버리도록 종용한다. 나는 아이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버릴 수도 없다. 아이 자아도 결국은 나이므로, 그것을 버리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될 것이다.
나는 어른 자아와 아이 자아가 내 하나뿐인 뇌 자원을 나눠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뇌를 100% 활용하기 어렵다. 어른 자아와 아이 자아 사이에 벌어지는, 일종의 내적 갈등 때문에 스트레스는 다른 사람의 10배 이상 증폭되고 만다. 내적 갈등도 심각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나의 취업은 나의 어른 자아와 아이 자아의 동시 취업이 되어야 한다. 그런 '두 자리'를 구할 곳이 이 대한민국 내에 존재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곳을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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