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다가온다.
6·13 지방선거가 끝난지 1주일이 되어간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과 보수 세력의 궤멸적 타격으로 요약되는 이 선거에서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서울시장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작은 이변이 발생했다. 녹색당의 신지예 후보가 정의당 김종민 후보를 이긴 것이다. 정의당은 대한민국 진보 세력의 맏이격인 정당이다.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포함한 6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정의당을 이긴 후보가 듣도보도 못한 '녹색당'이라는 곳에서 출마한 후보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압도적인 표차로 3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보다 녹색당과 신지예 후보에게 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녹색당은 제주지사 선거에서도 인상적인 결과를 남겼다. 진보 단일 후보로 나선 고은영 후보는 3.5%의 득표율로 보수의 두 야당을 제친 3위에 올랐다. '진보 단일화'에 의한 성과라고 과소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녹색당 후보가 진보세력의 단일 후보로 추대된 시점에서 고은영 후보의 성과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6·13 지방선거는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정치의 주변부에서 중앙에 더 가까이 다가간 선거인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TK의 자민련'으로 전락한 자유한국당과 정당의 뿌리가 뽑히다시피한 바른미래당의 두 정당이 어떤 식의 정계개편을 일으키느냐에 대한 것도 관심의 하나이지만, 이들이 새로이 태어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없다. 오히려 21대 총선에서 가늘게나마 붙어있는 숨통을 완전히 끊겠다고 벼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시대'에 패배한 정당들이다. 사람들은 이들이 '보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도, 정치세력으로서 존재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큰 실정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2020년 총선은 기존의 보수가 최후를 맞이한 선거로 기억될 것이다.
보수가 사라진 자리는 이제 진보가 메꾸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진보 세력은 지금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것이고, 더욱 성장하면서 그 성과도 차츰차츰 커질 것이다. 그것은 진보 세력 내부에서도 경쟁이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의당과 녹색당이 경쟁한 것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에는 정의당과 녹색당 이외에도 많은 진보 세력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회의 면면은 모두 다르다. 백가쟁명(百家爭鳴). 수많은 진보 세력이 서로의 생각을 부딪히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대의 도래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