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낙엽(Red leaves) - 토마스 H. 쿡(Thomas H.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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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뒤늦게 봤다. 극중 영화감독으로 나오는 막내 ‘기훈’의, 굉장한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드라마 전반에 걸쳐, 대화든 음악이든, 이야기를 만들자면 끝없이 만들 수 있을만큼 풍성하게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기훈의 대사들이 마음에 들었다. 가령, 이런 대사들...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 있어. 아무도 안볼 때 쓰레기통에 쳐박고 싶은게 가족이라구...”

“아무도 모른다 라는 영화가 있어. 엄마가 애들 버리고 가서 애들만 사는 영환데, 애들이 어른들한테 돈 꾸러 다니는거 보자마자 꺼버렸어. 나 이 영화 마음아파서 못본다. 그래도 영화감독 한다는 새끼가 그러면 안될거 같아서 다음날 봤어. 애들 나름 자기 힘이 있드라... 인간은 다 자가치유 능력이 있어.”

[붉은낙엽]은, 아무도 안볼 때 쓰레기통에 쳐박고 싶은 가족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척 살아가다가,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하나 둘, 꺼내서 스스로 마주하게 되는, 아니 그 문제들의 단단한 껍질을 힘겹게 벗겨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무런 문제 없을 것 같았던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친구도 없이 우울하지만, 사진관을 하는 아버지 일을 돕고,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이웃의 여덟살 난 여자아이, 에이미를 돌보는 일을 종종 하던 십대의 아들 키이스가, 에이미가 실종된 이후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그 안의 회오리를 보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아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았던 아버지 에릭과, 엄마 매러디스의 뒤늦은 개입이 아들에게는 시기적절하지 않아보인다. 직접적으로 질문하지 않는 부모와, 그 모든 의심의 중심에 부모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는 아들의 눈에 보이는 신경전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고, 또다른 부모, 에이미를 잃고 키이스를 범인으로 확신하며 그 가족을 압박하는 지오다노 가족의 분노가 이 위태로운 가족의 테 안에서 서슬 퍼런 위협으로 작용한다.

문제없이 흘러가는 듯 보여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 둘 문제가 불거져 나올 백만가지 경우가 있다. 어떤 사회단체나 마찬가지겠지만, 문제가 문제다~라고 뾰족하게 튀어나오지 않을 뿐이지, 우리는 모든 영속성 위에서 그 크고 작은 문제들을 때로는 모르게,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척, 발 밑으로 꾸역꾸역 밟아 놓을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서 안으로 곪을대로 곪아 터지거나, 그저 그곳에서 굳어버린 딱딱하고 건조한 티눈처럼, 어디쯤인지 알수 있을만큼만, 그렇지만 언제 어떤 연유로 해서 생겨난 것인지 모른체 덮이고 잊혀지는 작은 문제들...

아들이 연관된 끔찍한 사건을 두고, 아버지 에릭이 자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결론으로 내달았던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이미 만들어 놓은 답을 만들기 위해, 그 수많은 과정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유를 만들어 가는 수단으로 삼는다.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을 고수하기 위해, 지금의 안위를 영위하기 위해, 조금은 힘들어도 이것만 깨트리면 다시 밟은 곳에서, 내가 그동안 내 삶이라고 생각했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그 실마리를 부여잡는다. 부디... 이 곳이 내 삶이기를... 이곳에서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내가 자기계발서나 양육도서를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자가 치유능력’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가 치유능력이 있다는 말을 역으로 하면, 아무리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미 각 ‘개인’이 이루고 있는 정신적.육체적 시스템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정도 영향은 있겠지만, 그 영향의 정도는 극히 미미하다. 다르게 말하면, 그 개인들은, 제각각이어서, 어떤 자극은 A에게 유의미하고, 어떤 자극은 B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으므로, 획일화된 하나의 정의가, ABCDEFG...를 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 따라서,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가,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아서 한 끼 거뜬히 때울 수 있지 않을뿐더러, 긍정의 힘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서, A-a B-b C-c... 의 모든 경우의 수에 적용시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주식투자로 때돈을 버는 사람의 책을 내가 읽는다고 내가 때돈을 벌 수 없을뿐 아니라, 아무리 다섯가지 여섯가지를 내 평생의 목표로 정하고 산다 하더라고, 그 과정에서 맞딱드릴 수 있는 생각지도 못했던 경우 때문에,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개인적인 상심과 낙담이 오히려, 그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하라고 제시했던 필자에 대한 죄책감과, 그러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내가 자라며 느꼈던 결핍과 불안은 내 것이었다. 그것은 외부 요인으로 인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내 삶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자라났다. 어떤 모습으로든, 나는 내 삶을 살아왔고 다시 내 삶 속에서 나만의 가정을 만들었고 지금껏 살아왔다. 지금의 부모보다, 더 나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더 났다고 하는 부모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내 삶은 지금보다 나아지지도 못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내 스스로의 자가 치유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얼마간의 시련이 있었을지언정, 아무도 모른다의 주인공이 그랬듯,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관문을 내 스스로의 자가치유 능력으로 거쳐왔고, 이만큼 성장했고, 이만큼 나이들었고, 이만큼의 행복을 영위하며 사는 오늘을 본다.

가족이라는 형태의 소규모 집단은 다분히 위선적이다. 언제 어디서나 행복할 것을,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강요 당한다. 그러지 않을 수 있을 경우의 모습은 가려진다. 내가 자라 성인이 될 때 까지의 가족은 그닥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했을지언정, 그모습이 객관적 행복의 최대치는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그 안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통해 행복할 방법을 찾아 찾아, 가능한 최대치의 행복을 취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다 느끼며 살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남편과 두 아이와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대로의 객관적 주관적 기준에서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사는 어떤 이들은 또 우리를 보며 자신의 행복을 축복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들 키이스는 불안한 상태였고 아버지 에릭과 엄마 매러디스는 그런 아들의 불안함을 위험요소로 받아들였고, 그 위험요소를 철저히 부정하는 방식으로 아들을 보호하려 했다. 아무 문제 없이 흐르는 강물은, 강 하류의 어디 쯤 기다리고 있을 바위나 떠내려오는 나뭇가지의 위험에 의해 물살이 세지는 경우는 없다. 어딘가 한 길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때에만 물살은 사정없이 세지고 거칠어진다. 가족의 위기는 그 낭떠러지를 인지하고 난 후에 찾아온다. 에이미의 실종에 아들이 관여했다고 믿어버리는 순간, 그들이 쌓아올린 가족이라는 단단한 성이, 모래성이 되어버린다. 곧 들이닥칠 한 길 낭떠러지로 질주하게 된다.
에릭은 아들의 존재만 인식했지 자라남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춘기의 정점에서, 다소 불안해 보이는 정서적 상태에만 집중했고, 이제껏 눌러왔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들춰내며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인과관계를 만들려고 했다. 에릭은 자기 몸의 단단한 껍질을 거둬내지 못하는 어른이었고, 키이스는 아직 껍질을 만들지 못한 자가 치유중인, 자라나는 아이였다. 에릭은 자신의 껍질로 아들을 덮으려고 했고 도무지 꼭 맞게 들어맞지 않는 키이스를 못견뎌 했다.

[붉은낙엽]은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스릴러가 아니라 어른들의 성장소설 쯤 되겠다. 아이들의 성장소설과 다른 점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치이고 난 다음 부쩍 자라고 어디든 갈 준비가 되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통과했더니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모든 형태의 가족은 해체되고, 남아있는 것은 과거의 기억과 그 기억 속의 사람들, 그리고 그리할 수 밖에 없었던 나에 대한 아타까운 변명 뿐이다.

읽기 힘들었지만, 여행 중 가볍게 읽으려고 덤볐으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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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감사합니다. ㅎㅎ

어른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죽을때 까지 성장하죱~영적 성장

영적 성장은 커녕 지적 성장도 못하고 있는 듯요ㅠ

이 책에서 성장을 위해 치룬 대가가 너무 비쌌던 모양이군요. 성장엔 아픔이 따른다고 하지만, 너무 비싸지 않게,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고 싶군요ㅎ

아무런 대가도 안치르고 성장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ㅠ 어른이 되고나서부터, 아니 몸만 퇴화중인 성인이 되고나서부터는 끊이질 않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댓가를 지불하면서도 과연 내가 성장하고눈 있는지 늘 의문입니다 ㅎㅎ

나의 아저씨를 이제 봤어요? 완전 좋아하는데! ㅎㅎ가족이라는 집단이 다분히 위선적이라는 말에 오늘 완전 공감해요. 오늘 부부싸움 했거든요 ㅋㅋㅋ

에뺭님 부부싸움을 즐겁게 하신 거 같은 ㅋㅋㅋ 예요 ^^

내말이요 ㅎㅎ

가족을 속속들이 알려고보면....참 그렇죠. 가족이니까 하며 아주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붇고 사네요 ^^;;

이 글을 이틀에 걸쳐 세 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읽을 때마다 머릿속을 치고 들어오는 문장들이 제각각이네요.

언제나 그렇듯 북키퍼님의 책리뷰는 '읽고 싶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요^^

ㅜㅜㅜ 세상에... 한 번 읽어주셔도 너무 감사한데 세번 씩이나ㅜ 그럴만한 글인가 모르겠습니다. 과찬의 말씀 항상 감사합니다

어떤 자극은 A에게 유의미하고, 어떤 자극은 B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으므로, 획일화된 하나의 정의가, ABCDEFG...를 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

변화하기 위해 개발서들 많이 보는 편이긴 하나
공감이 갑니다.^^
여행중 읽기엔 가볍지 않아보입니다.
제목 리스트에 담아보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혀 가볍지 않답니다 하지만 정말 읽을만 했어요. 진지하게 고민하며 읽게돼요.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간에 가면 궁금하지도 않을만큼

축하합니다. 제3회 스팀잇 책리뷰대회 좋은리뷰로 선정되셨습니다. 창작지원비 1 SBD를 상금으로 드립니다. 다음에도 멋진 책리뷰 부탁드려요~~~ ^^
제2회 스팀잇 책리뷰 대회 결과 발표 + 3회 대회 공지

어머 감사합니다. naha님 짱이여!

북키퍼님이 더 짱이지요. ^^

드디어 보셨군요 '나의 아저씨' ㅎㅎㅎ
저는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인간의 자기 치유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형성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이들의 성공 사례는 생각해볼만한 이야기 정도의 의미일뿐 나를 변화시키는 의미는 아닐 수 있죠.
변화를 일으키려면 상처가 생길정도의 충격이 있거나 아니면 가치관을 흔들만한 생경한 지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

기훈의 말에 저는 좀 충격 받았어요ㅜ 아무도 모른다 보면서 마음만 아팠지 자가치유 능력이 있다는 건 못봤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 그렇더군요. 비참하지만 살아나간다는 ㅜ 나의 아저씨 모든 에피소드를 외울 지경이네여 ㅎㅎ

우울한 소설이겠는데요. 남는 것이 안타까운 변명뿐이라면 더 성장하지 말아야겠어요.

ㅠㅠ 어른이 되고 난 후 성장이란 무슨 뜻일까요. 맞아요 우울해요. 그 모든 일을 다 겪고 난 후 남은건 아무도 없는... 내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서글픈 결말... 이것이 인생이고 성장한 후라면, 차라리 성장하지 않겠어요ㅠㅠ

어찌보면 행복?한 가정(사실 이러한 표현은 아주 주관적이죠)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아주 소중한 인연을 만난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저는 윤회라는 이론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은 어찌 보면 수많은 생애 동안에 얽히설히 쌓아왔던 습과 인연이 총량이 되어 현재의 나와 나를 둘러싼 가족, 환경이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좋다/나쁘다라고 재단질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모두의 삶이 소중하고 번뇌가 없는 삶이 되도록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생뚱맞은 댓글인 거 같은데요. 세상에는 정말 생각할수도 없을 정도의 비이성적 가정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그러다보니 태어나서 자신이 만들어지는 가치관의 형성에 많은 트라우마로 작용들을 하곤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트라우마로 작용되는 인격을 선악으로 구분짓고 격리시켜 버리는 것이 문제해결의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참 힘든 문제인거 같습니다. 이세상에는 100% 옳은 것은 없고 부분적으로 옳은 것 뿐인 것 같습니다. 단지 모든 사람들이 느끼며 살아가는 번뇌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할 뿐인거 같습니다.

  ·  last year (edited)

훌륭하고 행복하고 안정된 가족만이 보여지고 그런게 가족이야... 라고 알게 모르게 인식되었기 때문이겠죠. 싸이월드를 시작으로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지는 누가누가 잘먹고 잘사나 경쟁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럴수 밖에요... 그래서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는거겠지요. 너만 힘든게 아니라 더... 많다 힘든사람.. 이렇게요. 하나님은 행복 총량의 법칙을 정해놓고 사람사이에 섞어놨나보죠뭐. 두루두루 다 행복하지 않게, 딱 그만큼만... 그렇게 누구 하나 어마무시하게 행복하면 그만큼 불행한 사람도 수두룩 하고... 그래서 자가치유의 방법으로 치유하며 살아야 하는거겠지요.

책 리뷰를 보니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 같아요. 스릴러를 표방한 어른들의 성장소설이라니 :) 어서 읽어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