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00] 위스키 테이스팅 노트

위스키를 먹기 시작한지 햇수로 5년이다. 일본 여행에서 우연히 방문했던 산토리 위스키 하우스의 테이스팅 세트가 그 시작이다. 위스키 자체가 진입 장벽이 높은 술이기도 하고 그동안 맛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전혀 도전해볼 생각이 없었는데 이때 처음 흥미가 생겼다. 주변에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도 없고 정보도 전무후무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네이버 카페 및 시음회의 도움을 받으면서 차츰 위스키를 익혔다. 네이버에 '위스키 시음회'로 검색을 해서 찾은 위사의 초보 시음회가 내 첫 시음회이며 이를 통해 나의 위스키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조금 손 놓은 부분이 있지만 초장기 위스키를 마실 때는 테이스팅 노트를 잘쓰고 싶어서 꽤나 많은 궁리를 해댔다. 정보 없이 술을 마시고나서 해당 술의 오피셜 시음노트나 해외 사이트에 올라온 리뷰를 보면서 내가 놓친 맛들을 느끼려고도 애를 무던히도 썼다. 하지만 타고난 미각 세포가 둔감한 탓에 단순한 맛 밖에 잡아내지 못하는 나의 테이스팅 노트를 보며 점차 그런 열정을 사그러들고 최근에는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위스키를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안에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더 많은 맛을 포착하고 싶고, 테이스팅 노트를 잘쓰고 싶다는 욕망의 작은 불씨가 아직 남아있는데 <위스키 테이스팅 코스> 책이 큰 도움이 되어줄 것 같아 굉장히 설렌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단연 "위스키 시음하기"와 각 챕터마다 있는 "시음노트"이다.

"가장 훌륭한 시음 노트는 시음자의 상상력에서 생겨나 위스키와 '실제로'대화를 나누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에서는 서로의 경험치가 다르기에 단어를 선택함에 있어서 맞고 틀린 건 없기에 걱정하지말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을 할 것을 말한다. 단순하면서 폭넓은 의미의 단어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신선한/과일느낌/맥아느낌/스파이시/스모키, 이렇게 위스키의 카테고리를 정하고서는 이 카테고리를 더 깊이 탐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일맛을 느꼈다면 과일이 사과인지, 복숭아인지, 파인애플인지, 바나나인지, 사과 맛이라면 신선한 맛인지 설탕에 조린 맛인지, 조리된 맛인지 향신료가 더해진 맛인지 구체화를 시켜야 한다고, 그렇게 구채화를 시키다보면 위의 그림처럼 뭉근히 조리한 사과인지, 애플파이인지 더 나아가 커스터드 크림이 듬뿍 든 친구 할머니표 애플파이 같은 자신의 경험치가 녹아든 맛 표현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단순한 단어로 시작해서 그 맛의 정체를 찾기 위해 카테고리화 하고 첨예하고 집요하게 맛을 찾는 그 행위는 마치 탐정이나 형사와도 같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의 위스키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늘 예리하게 촉각을 곤두세운 위스키 탐정이 되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시음 노트는 컬러부터 노즈, 테이스트, 피니쉬, 아로마 맵, 중량감까지 정리되어 있어 좋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마셔보며 눈에서 코로 코에서 입으로 입에서 혀로 느끼는 모든 감각을 다시 제대로 짚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또한 단지 스카치 위스키 뿐만 아니라 아이리쉬, 미국, 캐나다, 일본, 아시아, 남반구의 위스키, 잉글랜드와 웨일스, 유럽까지 시음노트를 제공하고 숙성년도로 다른 맛을 내는 시음노트도 비교할 수 있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단지 읽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안된다. 직접 마셔보고 비교하고 카테고리화하고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훈련을 해야만 한다. 아직 실습은 해보진 않았지만, 나의 다음 번 테이스팅이 기대된다. 나만의 경험과 언어가 녹아든 두둑한 위스키 시음 노트를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