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맨스플레인'

in #kr-writing6 years ago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라도 디자인은 친근하다. 의학, 법학, 물리학에 관해 '조언'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어떤 패키지가 더 '이쁜지'는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수정사항까지 제안할 수도 있다.

콘셉트에 맞춘 흑백 디자인을 보면서 많은 '일반인'들이 조언을 했다. 흑백이 상조회사 같으니 젊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밝고 화사한 색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그들은 요즘 상조회사 홈페이지를 단 한 번도 클릭해서 본 적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상조회사는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버스나 지면 광고에서도 밝은 색을 사용한다. 흑백을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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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 플레인'은 자신보다 권력이 낮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조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과잉의 확신과 무지'의 결합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디자이너에게 색을 조언하는 그들은 전형적인 '맨스 플레인'을 하고 있다. 그들은 요즘 상조회사가 흑백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이것은 무지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화사한 색을 좋아한다고 확신했다. 이는 과잉 확신이다. 무지와 과잉 확신이 결합한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데 실은 디자인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보다 디자인과 가까운 사람들이 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회화, 건축, 음악 등 예술 관련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일반인보다 더욱 디자인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에 비례해서 과잉 확신과 무지가 결합된 악영향은 더욱 커진다.

이들은 상조회사가 색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반드시 화사한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매거진 B' 같은 잡지를 보며 자신이 브랜드와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깊다고 생각한다. '약은 약사에게,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라며 전문 디자이너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할 줄도 안다. 심지어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간단한 로고 디자인까지 할 수 있다.

이들은 '실제로 디자인 작업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라고 생각할 줄도 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디자인을 '안다'라고 생각할 뿐 디자이너는 아니다.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전문직업인으로서의 디자이너를 인정하며 일을 믿고 맡기는 경우와 '맨스 플레인'을 하는 경우다.

디자인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후자는 '디테일'한 맨스 플레인을 한다.
그들은, 자신이 탄 택시의 택시기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10m 직진 후 속도를 30km로 줄인 다음 핸들을 왼쪽으로 두 바퀴 반 돌리고 좌회전해주세요."

택시기사에게 이렇게 요구하면 목적지에 쉽게 도달하기 어렵다. 잠시 말을 놓치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디자인도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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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로써 공감되는 글이네요. 명확한 목적없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훈수는 배가 산으로 가게 하는 결정타이죠...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봤는데 이런 뜻이였군요 잘보고 갑니다!

디자이너라시니 반갑습니다. 팔로우하겠습니다~^^

브런치부터 팔로우했었는데 스팀잇에서 보니 반갑네요 ~

아. 브런치에서 보셨군요. 제가 브런치는 백업용으로만 이용해서 거의 소통을 하지 않는데요. 스팀잇에서는 팔로우하고 자주 들리겠습니다.^^

저는 이 단어를 파워스플레인으로 확장하고 싶어요. 스스로를 권력자라 인지하는 자가 자기보다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자에게 멋대로 조언을 하는 것. 게다가 우리 나라는 반지성주의(설명충) 성향이 강해서 전문가들 의견은 아무렇지도 않게 커트하죠. 전문가 지식을 저평가하는 풍조가 녹아 있는걸까요? 이래서야 대중과 전문가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될런지 걱정입니다. T-T

네. '파워스플레인'이 더 적절한 단어 같습니다. 전문가들이 '무시'당하는 풍조는 정말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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