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상관없는

in #kr-writing6 years ago

scene 1. 15년 전. 40대 남자.

어느 술자리였다. 처음 만난 40대 후반의 남자 교수는 외국에서 유학하고 일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물어보지 않은 그 자신의 사적인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술에 살짝 취한 그가 난데없이 섹스 얘기를 '학술적'으로 꺼냈다. 한국사회는 섹스에 관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으로 가득 차 있지만, 외국은 위선이 없고 자유롭다는 '교과서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여성 한 명은 강단 있는 성향이었다. 불쾌한 표정을 짓고 그 말을 지적했다. 남자 교수는 머쓱한 얼굴로 그 얘기를 더욱 '학술적'으로 장식하고 얼버무렸다.

혼자 산다는 남자 교수는 자신이 외롭다는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학술적'으로 알렸다. 그러다가 외로움을 해소해 줄 여자 하나를 혹시 건지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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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10년 전. 50대 남자.

어느 술집의 바에 앉아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사장과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은 모두 서로 아는 사이다. 옆에 혼자 온 술 취한 50대 남자가 있었다.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50대 남자는 나와 여자에게 굳이 안주를 시켜줬다. 그는 내 머리가 길어서 둘 다 여자인 줄 알았는데 거절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비로소 남자임을 알았다. 하지만 나의 거절을 바로 받아들이면 여자한테 집적대는 것이 들통난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더욱 강하게 권했다.

술집 사장의 설명에 의하면, 혼자 사는 남자인데 가끔 혼자 술집에 와서 외로움을 달랜다고 한다. 그는 결국 안주만 사주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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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3. 얼마 전. 30대 남자.

20년 지기 음악 동료(옛 멤버)의 솔로 공연에 드럼 세션을 도와주러 갔다. 멤버는 여자다. 공연이 끝나고 멤버와 함께 몇 명이 모여 앉았다. 좀 시끄럽게 환호하던 술 취한 30대 남자'애'는 그 멤버에게 안주를 사주겠다고 한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 끼고 싶어 한다. 정확히는 멤버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음악 팬으로 친해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자와 친해지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가 좀 싸늘하게 쳐다보자 물러간다.

안주는 거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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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상관없다. 시대도 상관없다. 남자'애'들이란.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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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너무 공감되는 사이다같은 글이네요ㅋㅋ

아. 재밌어 하시니 다행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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