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현실이 오히려 허구가 되는.

in #kr2 years ago (edited)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과 <매트릭스 4(2021)> 감상 후기.

줄거리에 관한 스포는 없습니다.

이 두 영화는 영화나 게임 같은 미디어 콘텐츠가 우리의 현실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하게 한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1명의 죽음과 수십억 명의 죽음의 고통(가치)은 다르지 않다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이 영화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관객 자신이 그저 영화를 보고 있는 구경꾼이라는 것을, 영화 속의 참혹한 현실뿐만 아니라 실제의 참혹한 현실에서도 우리는 관객(방관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에서 '달콤한suave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양이 바람에 요동칠 때, 다른 이들의 비참함을 뭍에서 지켜보는 것. 고통받는 동족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피해 간 불행을 응시하는 것이 달콤하다."

"전쟁 중의 큰 교전을 아무 위험 없이 목격하는 것. 높은 곳에 올라 전열을 가다듬은 전장을 주시하는 것이 또한 달콤하다."

남의 고통을 보는 것에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그 고통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매트릭스 4>에서는 영화 속 대사로 이런 내용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현실을 콘텐츠로 만들면 그 현실은 허구가 된다.

실제 있었던 잔혹한 현실들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기승전결을 갖춘 흥미로운 이야기, 감동적인 멋진 배경 음악들로 말끔하게 다듬어진 콘텐츠로 만들어져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지면 현실은 희석된다. 나와 상관없는, 그저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구경거리가 된다.

영화 ‘빅 쇼트(2015)’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실화를 다뤘는데 영화 중간중간에 연기하는 배우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말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일부러 관객의 몰입을 깬다. 관객이 배우의 출중한 연기나 잘 만들어진 연출에 몰입하지 않아야 '내용'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소격 효과'를 노렸다.

영화와 드라마가 이 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다룰 때, 특히 그 영화나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더 많이 주는 '잘 만들어진' 콘텐츠일수록 사람들을 현실에서 더욱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만들어진' 두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 <매트릭스 4>가 그 사실을 한번 더 상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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