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국관계(박영실) 5 조선인들과 중국인민해방군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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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지역의 조선인들로 구성된 중국인민해방군의 동북야전군 독립사단도 있었다.

1947년 5월 30일자 선양 주재 미국 영사관의 보고에 따르면 만주의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우세한 원인중의 하나가 조선인 부대의 도움이라고 언급(미 국무부 간, 이영희 편역, 중국백서, 전예원, 1982, 434)

국공내전기 재 중국 조선인들은 그들 스스로 중국내 소수민족이 아니라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인이라고 생각

김일성도 이들을 동북에 거주하는 북한 국적주민으로 생각

따라서 한반도 해방뒤 중국 인민해방군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인들의 귀국은 조국으로의 귀환

1945년부터 49년 초까지 이루어진 재중국 조선인의 제1차 입북은 그 규모와 시기가 다양하여 정확한 숫자를 확인하기 어려움

1949년 7월에 진행된 2차 입북은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짐

1949년 4월 30일 김일성은 중앙위원회 위원이라 조선인민군 정치국장인 김일을 베이징에 파견

김일은 마오쩌둥에게 중공군에 소속된 조선인 사단을 이전시켜달라고 요청

마오쩌둥은 3개 사단중 무단과 창춘에 주둔한 2개사단은 이전할수 있으나, 국민당군과 전투중인 1개사단은 전투종결후 최소한 1개월후 돌려보내겠다고 언급

마오쩌둥이 김일 통해 김일성에게 언급한 내용을 보건데 이미 한국전쟁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줌

당시 한반도 전쟁에 대해 세밀하게 준비할 것을 권유

만일 전쟁이 개시되어 일본이 남한을 돕는 상황이 전개될 경우 중국도 군대를 파견하여 북한을 돕겠다는 의사를 표명

만일 미국이 철수하고 일본군의 지원도 없다면 남한을 공격하지 말고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때가지 기다릴 것을 권유

만일 북한이 이를 어기고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맥아더가 일본에 있는 부대와 무기를 한반도로 이동시킬 것이므로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작전중인 중공군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지원을 할 수 없다고 강조

1949년 7월 동북군구에 속한 2개사단이 북한으로 귀국

선양의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제166사단 총원 10,320명(6사단)

장춘의 중국인민해방군 제164사단 10,821명 (5사단)

1950년 제3차 입국, 린뱌오가 중국혁명전쟁이 종결되었으므로 1개사단 또는 4-5개 여단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자고 건의

1949년 12월 25일 린뱌오는 중국 인민해방군내 조선이니 병사가 1만 6천명이 4개대대 27개 중대 9개 소대로 편성되어 있으며, 이들 중 일부가 조국으로의 귀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총참모장인 니에룽전에게 보고

마오쩌둥은 이내용을 소련측에 전달

스탈린은 1950년 1월 8일 북한의 입장을 알아보라고 전문을 보냄

김일성은 이들 부대가 북한에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중국에 대표 3명을 파견하여 중국정부와 담판할 계획이었으나 이들 부대가 돌아왔을때 주둔지역을 찾기가 어려워 1950년 4월까지만이라도 머무를 수 있도록 중국정부에 요청할 생각이었다고 기술(션즈화, 최만원 역, 마오쩌둥 스탈린과 조선전쟁, 364)

(션즈화의 기술은 기존의 내용과 차이가 있다. 김종필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북한에 조선부대가 들어오는 시간에 따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1950년 4월까지만이라도 머무를 수 있도록 요청할 생각이었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1950년 1월 14일 김광협을 중국으로 파견, 북한에 여유분의 무기가 없으므로 중국측의 해결을 요구

니에룽전은 1월 21일 이 내용을 중공중앙위원회에 보고하고, 이후 1만 4천명의 조선인 출신 군인들은 무기와 장비를 갖추어 북한으로 입국

1950년 4월말 철도병단 제4지대의 1천명이 항저우에서 스지아장(석가장)에 도착 보름후 입북

우한의 제1군단 제3사단 400명은 다른 철도병들과 합류 1천여명이 되자 6월 중순경 입북, 6.28일 평양 도착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49군 야전병원의 여성 311명도 광시성 꾸리에서 정저우를 거쳐 4월 5일 입북

전쟁 기새선 북한군내 재 중국 조선인 출신 군인비율

6월 25일 아침 남진 보병21개 연대중 47%가 조선인 부대

미국의 맥아더 정보참모부는 이들이 북한군과 협동작전을 수행하려면 1950년 하반기는 되어야 가능하다고 판단

개전이후에도 조선인 출신자들의 귀국은 계속

1950년 7월 션양에서 혼성연대 조직(심양조선혼성단), 이후 인민군 제17기계화사단이 됨

1951년 이후 인민군 장교들이 만주 농촌지역에서 직접 인민군을 모집

1951년과 1952년 각각 한번씩 5-7천명정도를 모집

이들 중공군 소속 조선인 부대의 귀국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이 한국전쟁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것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션즈화를 중심으로 한 연구자들은 사실보다는 해석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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