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국 관계(박영실) 7 한국전쟁 결정 시기에 관해(선지화의 주장관련)steemCreated with Sketch.

in #sct5 years ago

모택동과 마오쩌둥.jpg

한국전쟁 연구에 언제 결심했는가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전쟁의 기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연구를 보면 스탈린이 최종 결심을 언제했는가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런데 스탈린이 언제 최종 결심을 했는가 하는 문제와 함께 한반도문제를 전쟁을 통해 해결하기로 했는가 하는 문제도 동시에 규명해야 한다. 사실 최종 결심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칙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전쟁을 통해 해결하기로 했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연구는 주로 스탈린이 언제 최종 결정을 했는가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칙적인 해결원칙이 대화냐 아니면 상호 공존이냐 전쟁이냐로 가닥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해결원칙이 전략적 결정이라면 언제 전쟁을 하는가하는 문제는 전술적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 스탈린이 한국전쟁을 50년 1월에 최종결정했다는 견해는 선지화의 주장인 듯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최종결정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소련 정치국 회의록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에치슨의 연설이 스탈린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실상은 전술적 차원의 문제라고 볼수 있다.

스탈린이 50년 1월에 전쟁을 결정했다는 것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각종 여건이 성숙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이전에는 전쟁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평화적인 해결을 추진하다가 갑자기 그때 전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으로 볼 수는 것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 설명일 것이다.

한국분단이후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출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그것은 한반도에 일본이 진출한 것이 소련에게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작용했다는 역사적 경험도 강력하게 작동했다.

선지화가 스탈린이 한국전쟁에 개입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로 제시하는 자료인 1950년 8월 27일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고트발트(Klement Gottwald)에게 보낸 극비전문은 스탈린이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을 해결하려고 했다는 전략적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선지화의 주장과 전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 극비전문에 의하면 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것을 예측할 뿐 아니라 희망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미국이 유럽으로부터 멀어지면 이것은 국제적인 권력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스탈린의 전문이 사실이라면 스탈린은 처음부터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이미 오래전부터 결심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고, 문제는 미국이 제대로 한반도 문제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전술적 고려사항이었을 뿐이다.

이런 자료들은 처음부터 스탈린이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증거자료로 해석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유럽에서 미국의 압력을 제거하기 위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극동에 붙잡아 놓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1950년 3월 30일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4월 25일 귀국했다. 양자의 비밀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1966년 소련외교부가 브레즈네프 등 지도자들에게 보고한 ‘조선전쟁에 관한 배경 보고’에 따르면 스탈린이 전쟁개전에 대한 초안을 최종 승인한 것은 1950년 3월과 4월 에 이르는 모스크바 방문기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북한업무를 담당한 트카첸코는 에치슨의 프레스 센터 연설이 스탈린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술적인 수준에서 시기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지 한국전쟁 자체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듯 하다.

이제까지의 한국전쟁은 북침인가 남침인가 하는 문제를 거쳐 누가 결정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전쟁 결정에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전통적인 입장에서, 최근 들어서는 소련이 결정했고 중국은 그에 따라갔을 뿐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중국은 주도적인 입장이 아니라 그냥 따라갔을 뿐이라는 주장은 선지화로 대표된다. 그 과정에 선지화는 한국전쟁에 대한 결정의 시기를 1950년 1월로 뒤로 미루어버렸다.

그러나 전쟁자체에 대한 결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스탈린과 마오쩌둥 사이에 논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증거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결국 해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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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ㅠㅠ결국 스탈린이 전쟁으로 미국이 유럽으로부터 멀어지기를 바란 거라니....... 김일성이 원흉이 아니었군요 .
우리를 침략하고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더 원인제공자라고 봐야 겠네요
결국 나라를 지키지 못한 매국노들 ,,,지금도 활개치는 일본부역자들 탓이군요. 모든 불행의 씨앗.

그래서 따지고 들어가면 뭐가 뭔지 하는 경우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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