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난, 나에게 넌 -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으며

in #busy5 years ago (edited)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았던 직장 생활은 하루 하루 힘들어져 간다. 그나마 일에 적응이 되고 있어 일의 양이 늘어나도 허덕이며 제자리에서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일까.

다음 주는 좀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덜 마무리된 일거리들을 챙겨 집으로 나서려고 할 때, 누군가 나를 팔로우했다는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린다. 낯선 아이디에 낯선 얼굴. 누구지? 또 스팸인가?

유심히 아이디와 사진을 들여다보니, 몇 년간 연락하지 않았던 한 초등학교 동창의 아이디였다. 반가운 마음에 팔로우를 수락하자마자 다이렉트 메시지가 날아왔다. 너무 반가와서 보자마자 팔로우를 했다며, 아직도 니가 초등학교 때 했던 특이한 인사 말투가 떠오른다며...

나도 반가운 마음에 꽤나 긴 시간을 대화를 주고 받았다. 무슨 일을 하고 있냐, 어디 살고 있냐, 누구 소식은 들은 적이 있냐는 시시콜콜한 대화들.

결국 몇십 분의 대화 끝에 처음에 느껴졌던 반가움은 희미해지고 대화를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한 고민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

이 친구가 연락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니, 알고보니 최근 나를 팔로우했던 A라는 다른 동창의 팔로우 목록에서 내 아이디를 보고 팔로우를 한 모양이었다(팔로우가 한 문장에 몇 번이나 들어간거지!?).

A라는 친구 덕에 너랑 연락이 닿을 수 있었구나, 고맙네. 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그게 다 니 덕이야. 다 널 좋아했어. 착한 친구 OO

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자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사실 그 시절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항상 그 때의 나를 좋게 평가해준 듯 하다. 재미있고 유쾌한 친구, 공부를 잘하는 친구,착한 친구.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나는 천둥 벌거숭이처럼 말썽이나 부리고 다니고, 내성적이고 쑥맥이었으며, 수학여행 때 수학경시대회 기출문제집을 가져갔으나 한문제도 풀지 않고 결국 36점을 받는, 변변치 않은 집안 사정에 약간의 우울함마저 갖고 있던,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내 잇속만 챙기는 덩치만 큰 초라한 아이었는데 말이다.

시간이 되면 차나 한잔 하자며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짧은 순간의 대화였지만, 이 대화를 통해 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십여년의 시간이 지나도 재미있고 착한 친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무거운 몸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있길 바라며,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생각해보며 짧은 생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잠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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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저도 생각좀 해봐야겠네요

ㅎㅎ 좋은 추억 많이 떠올리셨길 바랍니다 :)

읽다 보니 갑자기 옛날 생각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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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흔적들을 만날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듭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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