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 그리고 좌절의 기원 2

in #kr10 years ago (edited)

불안과 좌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질적 부분이었던 감정과 기분도 종류에 따라 나누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나누고 구분하는 것이 현대사회의특징입니다. 그것은 서구에서 학문이 발전해온 방식입니다. 그런 방식은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구분하고 나눕니다. 그리고 규정합니다.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분리시켰으며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구분하고 분리시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사람의 인간을 구분하고 분리시킵니다. 사람이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감정은 당연한 것이고 나쁜 감정은 병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자기로부터 소외시키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정신의학입니다. 정신의학은 부지불식간에 철학의 유일한 대표적 영역인 인식론에 끼어들었습니다. 인간의 인식과정은 심리학이나 뇌과학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철학은 설자리가 없어졌습니다.

그와 함께 인간의 가장 비이성적인 영역에 이성이 간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감정입니다. 감정은 불안정한 것이 특징입니다. 항상 안정적인 감정을 지니는 것은 불교의 경우 성인이나 가능한 경지입니다. 인간이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인간은 생노병사의 과정에서 항상 마음이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갈대가 인간의 마음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현대사회는 감정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습니다. 불안이나 초조는 정상이 아닌 상태로 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불안과 좌절 공포와 분노가 병이 된 것입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불안과 공포 좌절과 혼란 분노를 뇌에서 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서 발생한 병으로 파악했습니다. 우리는 각종 감정의 불안정을 병이라고 당연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것이 인간의 비정상적인 영역일까요. 불안이 두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만의 문제일까요.

인간의 부정적인 모든 감정은 호르몬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럼 인간이 약을 먹고 기분이 좋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까요? 약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나 마약을 먹고 기분 좋은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약을 먹고 기분이 만족스러우면 앞으로 불교도들은 도를 닦을 필요가 없겠습니다. 수행을 하는 대신 뇌에 일정한 자극을 주면 평생 열반상태에 들 수 있겠지요. 과연 호르몬의 문제일까요.

TV에서는 세로토닌이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서 전문적인 용어가 난무합니다. 이제 불안과 분노 우울 등과 같은 것들은 생리적 이상증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문제가 생리학적 화학적 문제로 다루어진다.

약만 먹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국가에서 주기적으로 기분을 조절하는 약을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행복한 기분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국가가 주는 약을 먹지 않으면 심각한 범죄로 다루러질지도 모릅니다. 시내에는 항상 일정한 수준의 약이 공중에 살포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마시는 물에는 필수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불안과 분노 좌절과 우울은 비정상적인 증상일까요? 우울은 철학자의 것이었고 분노는 혁명가의 자질이었으며 불안과 좌절은 예술가가 지녀야할 소질이었습니다. 불안과 분노 좌절 우울은 인간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만들어온 소중한 자산이었습니다. 인간에게서 불안과 분노 좌절과 우울을 제거한다면 무엇이 남을까요. 아마 이쁜 인형이 남을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말잘듣고 이쁜 인형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암울한 미래입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불안을 극복하고 좌절을 뛰어넘으며 분노에 머물지 않고 행동하고 우울을 철학으로 승화시키는데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위대함은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함을 제거함으로써 스스로 위대함에서 내려오고 있는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Sort:  

생각이 깊으시군요

심리학에서 말하기는 인간이 미래를 예견한다고 하며, 이에 따른 결과로서 불안이 온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 교수가 지은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Stumbling on happiness)’를 보면 1981년 30세 무렵의 N.N.이 교통사고로 전두엽이 광범위하게 손상되어 수술을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에서 "N.N.을 인터뷰했던 심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그는 세상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러한 지식을 잘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융통성 있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는 정상적인 성인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마치 영원히 현재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원한 현재라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이는 순간이라는 감옥에 갇혀 종신형을 살고 있는 것처럼 이상하고도 초현실적일 것이다."

책에서 인간이 미래를 통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고 다른 말로 사람들은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통제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통제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인간에게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커다란 전두엽이 있어서 인간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으며, 이 덕분에 예측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말합니다.

이성과 감정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지요
그 부분도 생각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해석이네요.
단지 우울증세가 병으로 규정된 것은 극단적 우울증세로 인한 범죄나 자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우울이 문제가 되는 메카니즘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자꾸 푸코가 떠오르네요.

사회구성원이 앓는 정신질환을 통해 그 사회는 자신을 실증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이 자기 언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이방인인 채로 남아 있을 때, 자기 활동의 산물에서 인간적이며 살아 있는 의미들을 확인할 수 없을 때, 이 세계 속에서 자기 조국을 발견할 수 없는데도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결정이 그를 구속해올 때, 또한 정신분열증과 같은 병리학적 형태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을 때, 인간은 현실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어떤 객관성도 보장해줄 수 없는‘사적인 세계’로 내몰린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구속에 순응하는 인간은 그가 도망치는 이 우주를 운명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현대 세계는 정신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지금의 사건들이 인간을 비인간적이며 추상적으로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문화가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 속에서 인간은 더이상 자신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존 조건의 실제적 갈등만이 정신분열의 세계가 지닌 역설에 구조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76
BTC 63916.96
ETH 1677.04
USDT 1.00
SBD 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