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노는 시간
딸래미가 걷기 시작한 이후부터 퇴근 후 중요한 일과로서 산책이 추가됐다. 딸래미를 보면 늘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산책도 이런 이미지에 일조한다. 강아지새끼마냥 날마다 꼬박꼬박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 것이다. ㅎ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강아지를 키운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진다.
함께 산책하며 특별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가 걷는 곁에서 나도 함께 걷는다. 아이의 안전을 고려하여 차가 오거나 위험한 지형 지물이 발견되면 아이를 보호하는 역할 정도가 추가된다. 가끔 아이가 무언가를 가리키며 알 수 없는 말을 하면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함께 봐준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아이가 손을 흔들면 나도 같이 손을 흔든다. 동네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진짜 강아지)가 있으면 내가 먼저 '강아지 친구 안녕~!'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든다. 아이는 강아지를 보며 손을 같이 흔들 때도 있고 세상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냥 쳐다볼 때도 있다.
동네 산책이 지겨워질 무렵에는 도보로 5~7분쯤 걸리는 공원에 데려간다. 크진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아담한 공원인데, 큰 놀이터가 있어서 날 좋을 땐 동네 언니 오빠들이 집결해 있을 때가 많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강아지도 아니고 동네 언니 오빠들이다. 아빠를 닮아서 굉장한 쫄보라 감히 그 안에 낄 엄두를 내지 못 하지만 언니 오빠들이 노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아이 손을 붙잡고 미끄럼틀로 향하는 작은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간다 언니 오빠들이 그 곁을 빠른 속도로 달려서 지나간다. 아직 어울려 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그 흥겨운 기분 안으로 아이가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아이도 싫어하지 않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계단을 짚고 두 손 두 발을 다 사용해 계단을 하나씩 오른다.
놀이터에서 이삼십 분 정도 놀면 어둑어둑해진다. 저녁 7시 반 정도 된다. 아이와 함께 걸어서 집으로 오는데, 신나게 논 날에는 자기도 힘든지 안아달라고 팔을 벌리게 마련이다. 아이를 안고 집에 오는 순간이 좋다. 뭔가 뿌듯하고, 내가 좋은 아빠는 못 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good enough) 괜찮은 아빠 아닐까 싶어지는 순간이다. 아이는 여전히 엄마 껌딱지고 아빠가 엄마에게 스킨십이나 애정표현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ㅎ 아빠한테 뽀뽀 한 번만 해주라,고 말하면 귀여운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두 번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세 번째 부탁에 마지못해 응해준다. 슬며시 와서는 볼에 뽀뽀를 해준다. 딸 키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고 사실 좋을 때보다 힘든 때가 더 많지만, 어쨌든 딸이 뽀뽀해주는 순간은 하루 중 최고로 즐거운 순간이다. 언제 이렇게 앙탈도 부릴 줄 아는 아이로 컸는지 그 빠른 성장속도가 그저 신비로울 따름이다.
내 감정을 못 이기고 아이한테 불합리하게 화낸 적도 두세 번 있다. 14~15개월 된 아기에게 화를 내는 것은 내 마음도량이 그만큼 좁쌀 같기 때문일 것이다.(사랑스럽고 화끈한 내 와이프는 내게 쓰레기 같은 행동이었다며 친절히 라벨링해준다.) 과도하게 핸드폰 동영상을 보고 있어서 핸드폰을 억지로 뺏은 적도 있다.(집에서까지 심리학자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아빠에 대한 좋지 않은 느낌을 형성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딸에게 미안해진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행동도, 아빠를 화나게 만드는 아이의 행동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중립적인 행동일 뿐이다. 이 아이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무엇이 부족한가. 지금 딸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일까. 화내고 혼내기 전에 머리를 굴리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양육이란 게 있다면 변연계가 먼저 반응하기보다 전두엽을 최대로 쓰며 마음챙김하는 태도의 양육일 것이다. 아이를 혼낼 때 이 아이의 욕구를 보기보다 자신의 비합리적인 기준에 비추어 아이의 행동을 문제행동으로 지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어떤 종류의 처벌이든 간에 처벌을 통한 통제는 양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돕는 것은 같이 놀고 같이 웃는 과정에서 쌓이는 부모에 대한 신뢰다. 아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부모와 같이 놀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마련이다.
마음챙김 양육과 관련해서는 아래 팟캐스트 들어보시면 좋습니다. 게스트로 초청된 분이 마음챙김 양육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진 않고 있습니다마는(Authentic Parenting이라고 부릅니다) 가히 마음챙김 양육이라 부를 법한 내용이 와닿네요.
공감되네요.
잘읽고 갑니다 @slowdive14님
다시 또 찾아와주셔서 덧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팔로해요.
소개 감사합니다. 딸아이와 손잡고 산책하는 건, 언제나 기분 좋습니다.
네 고사리 같은 손 잡고 걸으면 기분 좋죠 ㅎ
그렇군요 집 안에서까지 심리학자는 아니시군요. 항상 굼금했던 차였습니다 ㅎ
저때 아이가 가장 귀엽죠~ 저도 그 마음 압니다~
궁금하셨군요. ㅎ 이론과 실천을 집에서까지 일치시키려 하는 건 너무 소진되는 일인 것 같아요. 적당히 인간적 결점을 허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아요.. 이맘 때 애기는 정말 귀여운 것 같아요. 이래서 힘들었던 거 하나 기억 못 하고 아이 한 명 더 낳기도 하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