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로한다』 오거스터스 네이피어 , 칼 휘태커 지음(보상 사양)

in #kr-psychology6 years ago (edited)

가족치료에 관해 소개하고 싶어서, 올해 2월경 티스토리 블로그에 썼던 글을 분량을 좀 줄이고 일부분 수정하여 가져옵니다. 새로 쓴 글이 아니라 보상은 사양합니다. : ) (보상거절 옵션을 처음 써보는 거라 적용이 안 됐네요.)
원문 출처: http://slowdive14.tistory.com/1298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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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갈등 상황에서 남자는 보통 동굴로 도망간다고 하고, 여자는 동굴로 들어간 남자를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갈 기세로 쫓는다 하는데 이런 관계를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구글 스콜라에서 논문을 뒤지다가 오거스터스 네이피어라는 심리치료자를 알게 됐어요. 이 사람은 심리학 박사로 미국의 저명한 가족 심리치료 전문가라고 합니다. 가족 치료와 관련된 논문도 많이 쓴 사람인데 이 사람이 70년대 어느 시점에 썼던 논문의 앱스트랙을 보다가 흥미가 생겼습니다. 정확히 무슨 논문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그 논문을 붙잡고 읽을 시간은 없었던바 이 사람 책이 혹시 국내에 번역된 것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가족을 위로한다[원제는 the family crucible. 1978년에 첫 출판. 찾아보니 crucible이라는 단어에는 ‘용광로’라는 뜻과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호된 시련의 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를 알게 됐습니다. 남순현 임상심리학자와 전문 번역가가 공역하였는데 번역이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럽습니다. 574페이지에 달하는 책임에도 책장이 술술 넘어갑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되새긴 사실은 가족 갈등에서는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가족체계 안에서 그렇게 행동하도록 선택되었다는 저자의 표현이 책에 많이 등장합니다. 보통 비전문가가 부부 문제를 보게 되면 어느 한 쪽이 무언가 일방적으로 잘못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죠. 전문가들도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감정적으로는 어느 한 쪽에 마음이 더 쓰이는 경우가 많을 수 있겠죠.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그런 남편을 헌신적으로 캐어하는 부인이 있다고 할 때 사람들은 당연히 알코올 중독자 남편에 대해 비난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세상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현실은 더 복잡합니다. 즉 부부 문제는 부부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부 각자의 원가족과의 문제가 결부됩니다. 그리고 그 원가족의 원가족과의 문제와도 결부되죠.

정신과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많이 하다 보면 소위 family loading이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하게 됩니다. 가족 중에 혹시 정신과를 내원하였거나 치료를 받으셨던 분이 있는지 물어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림잡아 세 명 중 한 명 정도는 그런 가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정신과적 문제라는 것이 유전적 소인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치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유전적 소인 + 역기능적인 가족 간 의사소통 방식이나 상호작용 패턴 등이 '대물림'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유전이라는 개념을 넓게 보면 기질적인 유전도 있고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비언어적 대물림도 포함되는 것이죠.

제가 앞에서 선택이라는 말을 볼드 표시했는데, 특히나 아동 및 청소년 문제는 부부갈등을 포함하여, 원가족(+원가족의 원가족)까지 아우르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어떤 뿌리 깊은 문제의 표현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평소 고질적으로 통증이나 증상이 나타나던 부위가 재발하기 쉽습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 지닌 뿌리 깊은 문제는 가족 안에서 제일 취약한 사람을 통해 불거져 나오기 쉽습니다. 그 제일 취약한 사람이란 엄마나 아빠라기보다 보통 자녀죠. 자녀들 중에서도 좀 어리거나 마음이 여린 친구들 말입니다. 따라서 정신과에 내원하는 아동 및 청소년을 평가할 때는 늘 부부를 비롯하여 이 가족 전체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게 되고, 3대 정도는 가계도를 그려 보게 마련이죠.

이 책은 브라이스 부부를 치료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브라이스 부부 슬하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 셋째가 딸입니다. 이 중 첫째의 일탈 및 자살사고 등이 심해져 첫째를 치료하던 전문의가 이 가족을 가족치료자인 오거스터스와 칼에게 의뢰하게 됩니다. 이 가족 모두의 문제는 우선 첫째에게 나타난 것이죠. '우선'이라고 표현한 것은 치료가 진행되면서 첫째가 괜찮아지는가 싶은 타이밍에 둘째의 내적 갈등이 표면화됩니다. 둘째가 가족 문제의 표현형이 되는 것이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가족 문제를 표현하도록 선택되었고 문제의 책임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가족치료자들의 대전제입니다.
이 책은 가족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상호작용 양상을 통해 이러한 대전제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보여준다는 말의 의미를 듣다/보다 할 때의 그 보다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실제로 치료 과정을 눈으로 보는 것 같으니까요! 1년 넘는 가족치료 과정에서 핵심적인 부분만 추려낸 동영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동영상의 내용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는 것은 제게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에 대해서만 생각나는 순서대로 두서없이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에 대한 가설(=사례개념화)을 가지고 상담에 임하더라도 그 가설을 때이르게 오픈하는 것은 상담자-내담자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쉽다고 배운 저로서는, 브라이스 부부를 치료하는 오거스터스와 칼이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가설을 가족에게 '빈번하게'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라고 치료자가 말하면 브라이스 가족은 대체로 수긍합니다. 내공이 깊은 치료자들이라 시기적절하게 해석을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내담자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지시적이고 교육적인 방식으로 상담자의 가설을 전달해도 되는 것인지 좀 헷갈리더군요. 처음에 저는 후자라고 보았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후자가 가능했던 것은 결국 이 치료자들이 상담 초반에 치료자에 대한 가족의 신뢰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고 가족을 매우 염려하고 또 세심하게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라포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후해석(내담자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그런 해석까지 포함)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명의 치료자가 공동으로 가족을 치료한다는 점입니다. 오거스터스와 칼은 '공동가족치료자'입니다. 리더와 코리더(=보조 치료자)의 관계가 아니라 두 명 다 리더로서 치료에 관여합니다. 오거스터스는 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전문의인 칼 휘태커 밑에서 수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에서 치료자 한 명으로는 매우 역부족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료자의 '고르게 분산된 주의'가 아무리 잘 발달해 있다고 한들 혼자서 다섯 명의 가족과 그 사이의 상호작용을 주의 깊게 살핀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죠. 치료자 자신도 때로는 감정적으로 깊게 가족과 얽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집단치료에서도 상담심리전문가가 코리더 없이 홀로 일당백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집단치료와 가족치료는 대상의 특성이 다른 것 같아요. 가족이라는 대상은 치료가 끝나도 집에 가서 또 지지고 볶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그런 관계라면 갈등 상황도 더 빈번할 테니 조금 더 밀착 마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구요. 아무튼 둘은 참 짝짝꿍이 잘 맞습니다. 궁합이 좋은 부부 같은 느낌입니다. 가족 간 전투가 너무 격화된다 싶으면 그런 부분을 함께 컨트롤하고,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에게만 무게추가 쏠린다 싶으면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두 치료자가 콤비 플레이를 벌입니다. 심지어 칼은 브라이스 부부의 둘째 자녀인 돈이라는 아이와 가족치료 중에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는데(Wow!) 이게 치료적일 수 있었던 것도 오거스터스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칼이 행동을 적정한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랬더라면 무슨 사단이 났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죠...

가족치료자는 가족에게 휘말려 있다고 느낄 때조차 가족보다는 덜 개입하도록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칼은 돈과 싸울 때 싸움을 모니터하고 일상적인 코멘트와 해석을 하면서 어느 정도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가족치료자가 이런 필수적인 전문적 거리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공동치료 관계의 균형 잡히고 조율적인 영향이다. 처음 칼이 돈에게 대항했을 때 칼은 순간 중심을 잃은 것 같았다. 그때 그는 나와 몇 번 눈을 마주치면서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그와 전문적인 유대를 맺고 있었으며, 나는 칼이 모험을 감행하고 다시 되돌아올 수 있는 ‘안전지대’였다. 가족과 지극히 개인적인 직면이 가능한 것은 사실 공동치료 관계가 제공해주는 안정감 때문이다. 372쪽.

세 번째는, 제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인데, 가족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과정에는 문제아 혹은 환자 혹은 가정파탄자, 불륜남 등등의 이름으로 지목된 특정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이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맡고 있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맡는 데 온 가족이 합의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자는 모두가 합심하여 문제를 표출시키기로 무의식적인 합의를 본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족 모두의 무의식적인 합의하에 환자로 지목될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지목된 환자를 통해 가족이라는 유기체가 안정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그것이 설령 외부 관찰자 눈에는 매우 불안정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많은 주요한 다른 사건들처럼 외도는 부부가 직관적으로 ‘합의’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이란 단어가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부부는 사전에 무의식적으로 외도를 합의하고 ‘무고한’ 배우자가 사실상 ‘범죄’를 돕고 선동하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외도가 부부 중 한 사람에게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듯, 부부관계나 불경스러운 삼각화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상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정한 간통 현장에 있는 것이다. 외도는 모든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지만 대개 원가족의 관계망 속에서 숨겨진 갈등 양상을 드러낸다. 307-308쪽.

서로가 서로를 파멸시키기를 바라는 가족은 없습니다. 가족치료, 가족체계의 관점에서 가족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스스로의 건강과 번영을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 문제가 지목된 환자를 통해 때로 매우 역기능적인 방식으로 불거지는 것은 부부나 부모 모두가 원가족으로부터 그런 방식밖에 배우지 못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인 것 같습니다. 저자들은 원가족이 가족치료에 참여할 때라야 보다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원가족이 현재 가족의 문제 근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라면 논리적인 귀결은 ‘원가족까지 포함시켜서 치료를 하자’는 것이 될 수밖에 없겠죠.

원가족을 상담에 참여시키면 원가족의 부모가 자식들의 문제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고 더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가족치료자로서는 부부의 원가족을 만나는 것만큼 깊게 부부에 대한 통찰과 공감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부의 감정적이고 이성적인 명암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면 부부가 자신들이 가진 딜레마의 원인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원가족의 구성원들은 환자로서 상담장면에 오는 것이 아니라 부부의 가족치료에 ‘상담자’로서 참여한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원가족의 갈등이 다시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중략) 부부의 문제 대부분은 원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원가족의 갈등이 되살아나면서 ‘내담자’ 부부의 긴장감이 해소될 수도 있다. 만약 아내의 지나친 의존성에 불만을 품고 있는 남편이라면 이러한 과도한 반응이 과거 어머니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한 데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깨달을 수도 있다. 사실 두 여자와 한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다 보면 남편은 이러한 연관성을 회피하기 어려워진다. (중략) 원가족과의 상담은 갈등해결 이상의 결과를 가져온다. 의견충돌이 일어나고 적어도 일부분이나마 해결이 되면서 원가족과 좀 더 친밀하게 지낼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상담 과정에서 발생한 따뜻한 분위기가 부부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남편이 친정아버지처럼 자신을 거부하고 냉정하게 대하는 것 같아서 남편과 이혼하려던 아내라면 친정아버지와의 관계가 좀 더 호전되면서 남편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버릴 수 있다. 원가족의 부모관계야말로 뒤이은 모든 관계의 모델이 되기 때문에 부모와 조금이라도 관계개선을 하는 것은 부부관계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447-448쪽.


2015년 1월 임상심리수련생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심리학회의 공동교육에서 이남옥 선생님이 가족치료에 대해 강의했던 것에 관해 몇줄 적어 놓았던 것을 다시 살펴봅니다. 이남옥 선생님이 사례를 보여주며 강조했던 부분도 가족의 ‘체계’이고, 문제라고 지목된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원가족 배경을 알면 가해자/피해자 구도에서 벗어나 내담자를 공감하기가 한층 쉽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이남옥 선생님이 주장했던 것과 일맥상통하게,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내담자에 대한 공감이 잘 안 될 때 전이/역전이를 생각하기 이전에 내담자의 가족체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내담자나 환자를 가족으로부터 무 자르듯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가족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닐 때조차 피해자/가해자 구도로 상황을 판단하려는 인지적 구두쇠 경향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 한지라, 온 가족이 합의할 때라야 가족의 증상이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표출된다는 사고는 좀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정확히 말해,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합의한다기보다 가족 시스템 안에서 각자가 그러한 합의를 할 수밖에 없도록 추동되는 면이 있다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아마 이 책의 실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아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부부 각자가 부모와 관계 맺어온 방식이 현재 가족 안에서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적으로 작동하여 증상을 표출시키자고 합의합니다. 현재 가족 관계 안에서 과거의 미해결된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죠. 저는 가족 안에서 피해자나 구원자 역할을 떠맡게 된 사람이 이러한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자칫 잘못 전달하면 치료자로부터 비난 받는다고 느끼기 십상 아닐지.. 실제로 이 책에는 브라이스 부부와 그 자녀들이 보인 많은 저항이 가감없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당신도 이 역할 게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사려 깊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일 수 있겠는데, 칼이나 오거스터스처럼 내공이 깊지 못 하면 과연 그런 사려 깊음이 가능하겠느냐 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다소 듭니다.

이 책은 가족치료 입문서로 손색이 없습니다. 전문가에게도 좋은 책이고 일반인에게도 좋은 책입니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렇습니다. 이론적인 설명은 거의 없지만 교과서에 상응하는 깊이가 있고, 잘 모르는 분야일수록 실례를 통해 배우는 것이 이론부터 접근하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 사람에게 특히 제격입니다.

일반인이나 전문가 중 결혼을 앞둔 사람과 기혼자 모두가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어르신들이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 있죠. 배우자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보라. 그 말은 일면은 맞고 일면은 틀립니다. 배우자의 부모를 봐야 하는 것은 맞죠.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배우자가 될 사람이 부모와 상호작용 하는 방식을 보라'일 것 같습니다. 부모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왔고 부모를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가 배우자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변인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도 결혼을 했지만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정말 그런지 아닌지 알게 되겠지만, 최소한 현 시점에서는 '정말 그렇다'에 더 마음이 쏠립니다. 허니문이 지나가고 앞으로 제가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거나 반응할지, 혹은 아내가 제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거나 반응할지 곰곰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역기능적인 상호작용 패턴이 있다면 그런 부분들이 어느 시점에서는 터질 게 분명하니까요.

너무나도 흔한 경우인데, 부부가 몇 년간 서로를 가깝게 의지한 후에야 마침내 긴장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부부는 인생경험을 좀 더 하고 부부간의 친밀한 관계로 혜택을 본 후에야 부부라는 공생관계를 깨뜨릴 위험을 감수한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안정감을 충분히 손에 넣을 때까지 둘 사이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 312-313쪽.

앞으로 만나게 될 내담자 이해에 있어서도 좋은 책이고 부부 관계를 잘 맺어나가기 위한 개인적 노력에서 봐도 좋은 책입니다. 강추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줄줄 썼구요. 끝으로 좋은 책 발견하여 번역까지 해준 두 역자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즐겁게 읽은 심리학 서적입니다.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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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되는 내용입니다. 미쳐 몰랐던 부분도 많구요. 사실 나의 삶에서 어릴 적 겪었던 것들을 떼어나고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지요. 그것들을 고스란이 갖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살아갑니다. 결국 많은 부분이 반복될 수 밖에 없지요. 가장 여린 자녀에게서 드러난다는 것, 그리고 사실 모든 가족이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합의했다는 것엔 소름이 돋습니다. 허나 곰곰 생각해보면 참으로 일리 있습니다. 치료장면 뿐 아니라 제 가정 안에서도 돌이켜 생각할 부분들이 많군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제 성격이나 관계 패턴상의 좋은 부분은 대물림시키고 안 좋은 부분은 제 선에서 끊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말씀하신 대로 많은 부분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 책 보면서 제 가정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지금이야 허니문 시기라 가정 안에 별 문제가 없는데, 이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부부갈등이나 부모-자녀 갈등에 나라고 휘말리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좀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쓸데없는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요. 긴 글 읽어주시고 정성스런 피드백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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