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간의 국악여행, 판소리 춘향가 완창 듣기에 도전하다 [Homage to KOREAN ART]

in #zzan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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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귀에 가깝지만, 왠 인복인지 ^^; 서양악도 국악도 지인분들에게 초대받아 가끔 문화생활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지난주엔 갑자기 판소리 완창 공연에 도전해보겠냐는 지인의 톡을 받았다.
일도 바쁘고 주말에도 학원 수업과 과제가 기다리고 있어서 긴 시간을 할애하기가 잠깐 망설여졌지만 완창 공연은 난생 처음이라 꼭 가보고 싶은 마음에 피곤해도 가보기로 했다.

굳이 도전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국악 공연 자체가 대중적이지도 않거니와 더구나 완창이라면 5~6시간동안 공연을 하는 건데 전공자나 가족/친구 등 가까운 사람, 혹은 어지간한 마니아가 아니고선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판소리를 듣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창 [完唱]

판소리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

나도 지인에게 아주 힘들면 중간에 나와도 된다는 답을 듣고서야 최종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다행히 도전은 성공했는데, 편하게 앉아서 공연을 본 것 뿐인데도 기운이 다 빠져서 후들거리는 손으로 겨우 밥을 먹었고 컨디션이 회복되기까지는 몇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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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자 해설 쌤께서 판소리의 족보(?)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귀동냥으로 서편제, 동편제는 들어보았는데 그날 듣기로 한 공연은 '보성소리' '김세종제 춘향가' 등 생소한 수식어들이 붙어있었다.

서편제

섬진강 서쪽인 광주,나주,보성 등지에서 많이 불렸다. 선천적인 성량에 의존하는 동편제와는 대조적으로 서편제는 기교와 수식의 맛이 중요하다. 소리 한 꼭지를 몇 장단에 걸쳐 끌고가다가 어떤 마디에 이르러 소리를 만들고 다시 끝을 맺는다. 발림이 많이 들어가고 연기적인 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서편제는 정교하며 감칠맛이 있다. 〈춘향가〉의 '이별가', 〈심청가〉의 '효성가', 〈적벽가〉의 '사향가'가 있다.

동편제

전라북도 운봉,구례,순창,흥덕 등지에서 많이 부른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목으로 우기는 소리'로 '막 자치기 소리'라고 한다. 섬세한 기교보다는 곧게 내리지르는 통성을 쓰기 때문에 거칠면서도 호방한 맛이 있다.

그렇다고 한다 ^^
포스팅을 기회로 들어보기만 한 용어들에 대해 정리해보니 이것도 좋은 것 같다

보성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판소리의 유파로 판소리의 최고봉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김세종제는 조선 8대 명창 중 한 분으로 꼽히는 김세종님에 의해 전승되어왔으며 춘향가중 가장 우아하고 기품있는 소리로 알려졌다고 한다.

판소리는 구전으로 전해져 오기에 어떤 스승에게 배우느냐에 따라 가사 등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이런 이름들이 붙는 것 같다. 김세종제 춘향가의 경우 이 몽룡과 이별을 할 때 어느 장터에 나가서 울며 이별가를 부르는 대신 집안에서 이별하는 등 춘향이 기품 있는 열녀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약간 변형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극이므로 현대의 가치관으로 평가하는건 무리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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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국악원 풍류사랑방

풍류사랑방은 전에도 가본적이 있는데 정갈하고 아담하고 편안한 사랑방 느낌으로 공연자와 관람객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마이크 없이 함께 호흡하고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공연장이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북 옆에 놓여있는 물병과 물그릇은 소품인줄 알았는데 완창 공연이라 그런지 실제로 소리꾼이 저 물을 마시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
대부분의 판소리 공연은 소리꾼이 선택한 몇 대목을 두 시간 가량 동안 공연을 하는데 5~6시간공연하는 완창은 소리꾼도 관객도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공연자와 관람객 모두 한 운명인 기분으로 ^^;;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주고 공연이 잘 끝나도록 이끌어주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해설 쌤께서 1, 2부가 시작될 때마다 중요한 대목의 감상 포인트나 박수쳐야 할 부분 등을 미리 알려주셔서 감상에도 도움이 되었는데,

1부 이도령이 춘향의 그네 뛰는 모습에 반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백년가약을 맺고 사랑가를 부르며 놀다가 (어린것들이 공부는 안하고 ㅎㅎ;;) 나중에 이별하는 대목에서 공연자는 '마의 구간' '지독한 이별'이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모르는 내가 들어도 어려운 노래를 연속 7-8개 연달아 부르는데 정말 온몸으로 세포하나하나의 힘까지 동원해 소리를 하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마의 구간은 그야말로 시작일 뿐이었다
2부는 이야기부터 고난이라 그런지(춘향이 옥에 갇히고 사형을 앞두고 있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맺히고 처절한 소리라 소리꾼도 점점 힘들어서 목 소리가 조금씩 잠겨가는게 들릴정도였고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관객들도 더 자주 더 큰 박수와 추임새로 응원해 주었다

개인적으론 1부 이별 대목부터 2부 전체가 정말 재밌었다.
특히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거지차림으로 월매의 집에 찾아가서
이도령이 잘 되기만을 물 떠놓고 빌고있던 월매와 주거니 받거니 노래하는 부분은
서울말을 하는 이도령과 남원 사투리를 하는 월매라는 두 인물을 한 명의 소리꾼이 각각 다른 장단과 해석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또한 향단, 방자, 월매, 기타 엑스트라의 해학적인 사설(판소리 가사)도 극의 긴장감을 덜고 웃음을 주는 양념역할을 톡톡히 해서 재미를 더해주었다.

인터미션때 주최측에서 준비한 간단한 다과로 당 보충을 했지만 2부 후반으로 접어들자 나도 힘들어서 머리가 멍해지며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는데 소리꾼을 응원하는 분위기에 오히려 내가 힘입어 무사히 관람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났을 땐 모두가 장시간(총 5시간 공연, 인터미션/해설 제외 4시간 30분의 판소리) 공연을 한 소리꾼을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더 큰 박수를 쳐주었는데 마치 관객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고생했다고 보내주는 박수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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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하신 정혜빈님은 국가무형문화재 성창순 명창을 사사했는데 정말 소리 잘하는 분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소리라 그런지 음악에 조예가 없는 나도 정말정말 잘 한다는걸 알 수 있었고 다양한 소리의 표현에 감탄했다. 무엇보다 사설(판소리 가사)이 고어라 잘 안들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가사를 잘 몰라도 저절로 빠져들어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판소리 완창 공연은 소리꾼에게도 평생 한 두 번 할까 말까 한 도전이라고 하는데 이 분은 공연 후 6,8세 두 아이를 양육하며 연습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씀하셔서 그 열정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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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국악원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판소리라는 공연 형태가 놀라운 게 소리꾼의 목소리로만 긴 시간동안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고수의 북소리가 뒷받침해주기도 하지만 오직 한 소리꾼의 목소리만으로 일인 다역을 하고 온갖 감정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극의 전개를 도와주는 수 많은 보조장치나 도구가 있는 영화, 연극, 오페라, 뮤지컬등과는 차별이 되는 것 같다.

또 하나 놀라운건, 초대해준 지인에 의하면 서양음악의 경우 한 가수가 소프라노, 메조, 알토 중 하나 혹은 두 개의 성부를 커버하는데 판소리는 한 소리꾼이 3성부를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전 영화에서 봤음직한 '득음'의 수행을 해야 한다고 한다.

딱히 거부감도 없고 막연하게 괜찮다(?)는 생각으로 몇 번 들어본 판소리인데 알면 알수록 놀랍고 예술의 한 장르로서의 판소리의 매력도 알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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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공연 관람하셨네요.
정혜빈 명창, 기억해둬야겠어요.

마지막엔 좀 힘들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던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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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완창 하신 분도 그리고 듣고 계신 분들도 기억에 오래 남겠습니다.

앉아서 듣기만 한 사람도 힘든데 공연하신 분은 앓아 누우실것 같더라구요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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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색다른 경험이셨겠습니다.
기회되면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네요^^

ㅎㅎ 마지막에 좀 힘들긴 했지만 말씀처럼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한번쯤은 들어볼만 한 것 같습니다
저도 기회가 다시 온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긴 합니다 ^^
aaa 태그를 달아도 되나 망설였는데 후원까지 해주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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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국악 공연 다섯시간 몰입 하여 듣는다는것 도. 정신 노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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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나봐요 ㅎㅎ 앉아서 듣기만 했는데도 그렇게 진이 빠져버리더라구요 ^^

정말 대단한 공연이네요, 끝나고나면 뭔가 색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저보다는 공연하신 분에게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것 같더라구요.
저는 아마 몇 년 쯤에 후에 ㅎㅎ 다시 기회가 온다면 또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구요 ^^

멋진 시간 가지셨네요
부럽습니다.~~~~

이벤트 참여 감사드립니다.~~^^

베푸심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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