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인 척]기자 업무의 본질은 선택... 버리는 게 중요하다

in #kr9 years ago (edited)

이 글은 오늘아침 (부장이 휴가중이라 차장이 대신 만든) 우리 부서의 지면계획을 보고 적은 것이 절대로 아님을 밝혀 둔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언론사 존재가치는 뉴스 전달보다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전달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굳이 특정 언론사가 생산하지 않아도 넘쳐나는 게 뉴스다. 한 언론사가 단독보도를 해도 몇 군데 언론이 금방 받아 쓴다. 한 사안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려 하면 그 검색어에 엮인 수많은 기사가 줄줄이 엮여 나온다.

이 바닥이 이렇게 됐기 때문에 훌륭한 언론사는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에 관한 철학이 분명 회사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낙종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사를 비중있게 보도하기 위해 다른 기사를 과감히 지면이나 방송분량 밖으로 내 쫓을 수 있는 회사 말이다.

신문의 경우, 어차피 오늘 발생한 뉴스를 내일자로 쓴다. 그래서 뉴스 자체는 우리가 전달하지 않아도 독자는 알고 있다. 우리는 '어제의 뉴스 중에서 이런 것이 중요하며, 우리만의 기사는 이런 게 있다'는 걸 독자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자 업무의 본질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선택'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택함'이 아니고 '버림'이다. 모든 운동은 힘을 주는 것보다 빼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언론도 쓰는 것보다 킬(kill)이 중요하다.

현장 기자는 아침 발제 때 꼭 필요한 기사를 제외하고는 버려야 한다. 발제할 게 없다고 면피용으로 대강 아무거나 발제했다가 그게 채택이라도 되면 이야기도 안 되는 기사를 쓰느라 곤욕을 치른다.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취재해서 열개의 팩트를 확보했어도, 날카롭게 기사의 각을 세우고 거기에 딱 맞지 않는 것들은 구태여 꾸역꾸역 담지 말아야 한다. 팩트라고 해서 꾸역꾸역 다 집어 넣으면 난삽하고 중언부언하는 기사가 되고 만다.

각 언론사 팀장, 반장 등 소단위 리더들은 후배들이 보낸 발제 중에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 이것도 버리는 게 중요하다. 이들의 팀발제를 모아 부서 지면계획을 짜는 부장이나, 부장들의 발제를 모아 전체 지면계획을 짜는 편집국장이나 중요한 것은 버리는 것이다. 지면은 한정돼 있고 뉴스는 언제 어디서든 구해 넣을 수 있다. 버릴 것을 과감히 버려야 강약이 살아있는 지면과 뉴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능력없는 리더들은 버리는 걸 못한다. 뉴스 가치 판단을 못하니까 이 기사가 들어가야 하는지, 안 들어가도 별 상관없는지 확실히 모른다. 옛날식 편집에 길들여져서 타사에 '물을 먹는' 걸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니 '이거 안 넣으면 물 먹는 걸까'하는 마음에 다 쓸어담는 거다.

(방송은 모르니까) 신문의 경우, 리더들이 '킬'을 잘 못하고 기사를 꾸역꾸역 쓸어담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먼저, 지면이 조각조각 바둑판처럼 된다. 지면은 한정돼 있는데 기사 꼭지 수만 많아져서, 기사 중요도에 따라 비중을 다르게 다루지 못하고 대부분의 기사가 원고지 3~4매 정도로 짤막하게 들어간다. 독자 입장에서는 빽빽한 지면에 눈을 두기가 싫을 거다.

더 큰 문제는 지면계획이 마감 직전까지 갈팡질팡하게 된다는 것. 그렇게 아무거나 막 담다 보니 편집 회의를 거치면서, 들어있던 기사가 빠지거나 없던 기사가 갑자기 생겨나는 일이 잦아진다. '오후 지면계획', '수정 지면계획', '최종 지면계획'이 올라올 수 있다. 그럼 현장 기자들은 지면안을 불신하게 된다. 해당 출입처에 사안이 많은 날엔, 마감이 30분 밖에 안 남았는데 '진짜 최종 지면계획'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버리지 못함은 자신의 선택을 믿지 못하는 거다. 본인도 자신의 실력에 불신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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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가 작성하던 "new_기안서_진짜최종수정final확정본.docx "(뭐 비슷한 이름입니다.) 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될까요...

"new_기안서진짜최종수정final확정본(4)복사.docx"

기안서 수정은 슬립캣님의 선택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ㅋㅋ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네요.
그나저나 신문사에 계신분들은 매일 이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한장에 신문이 나오는 일이 쉬운일이 아니구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근데 매일 하다보니 그 중요함을 잊고 사는 것 같네요. 그런 날들이 쌓여서 무덤덤해지고 무능해지는 게 아닐까 해요.

앞으로 신문의 제질을 고무로 하는 걸 건의 해 봅니다.
필요 기사에 따라 늘렸다~ 줄였다~^^

종이신문 언제까지 갈까요 ㅋㅋㅋ

마지막에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내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듯 싶어요. ㅋㅋㅋㅋ

제가 오늘 그랬다는...

기자의 삶이 마치 요즘 코인판 같네요
타이밍을 다투고
한치앞을 알수 없고 ㅠㅡㅠ

오늘도 양쪽에서 한치 앞을 알 수 없음을 절감했네요 ㅋㅋㅋ

시를 쓸 때도 항상 하는 말이죠 더하지 말고 빼라, 잘 뺀 시가 좋은 시다. 뭐가 중요한 지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 쓸 때는 덕지덕지 붙여서 썼는데 쓰면 쓸 수록 문체를 간결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르캉님 검나 오랜만인거 아시죠 ㅋㅋㅋ

신문사에서는 정말 버리는것이 중요할거 같아요.
구태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버무려서 하는것보다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중요내용이 있는것이 중요한거 같아요..

오늘 원고지 4매 분량이면 충분할 걸 6매 쓰느라 혼났습니다 ㅜ

버릴수록 더 크게 얻을것이다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글 읽으면서 한자루의 날선 칼같은 그런 느낌이었답니다~!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ㅋㅋㅋ

신문보다 방송쪽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ㅇㅇ단독이니 특종이니 하면서 확대 재생산 하는
뉴스 아닌 뉴스 결국 공중파 낭비 아닌가요

가정에서도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라고 하지요.
그래야 정말 중요한 것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고
공간활용도를 높이는 길이라고합니다.
감사합니다.

종편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머 낭비하는 거야 똑같지만요 ㅋㅋ

읽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더군다나 신문은 발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스피드'면에서는 뒤처지기 마련이니.. 어떤 뉴스를 집중 보도할지 선택하는 게 더 중요할 거 같아요. 시호님이 그 자리에 올라가시게 되면 신문이 어떻게 변할까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

흠 제가 그 때까지 이짓을 하게될지는... 코인판이 말해주려나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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