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마눌님]전날 1일1포 실패에 관한 변명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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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스팅을 못한 건 제가 데스크를 들이받고 회사로 불려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의 꾸미(용어해설 포스팅)는 민주당의 한 의원과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몇 개 언론사의 기자들이 결성한 꾸미와 의원과의 점심약속은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입니다. 사실상 점심시간에도 취재를 하는 것이지요. 꾸미 단위로 약속을 잡는 이유는 의원들이 좀처럼 기자와 일대일로 만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원들에게도 식사 시간은 사람을 만나는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에, 정말 각별한 기자가 아닌 다음에야 한명씩만 만나는 건 비효율적이기도 하죠.

꾸미와 의원의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비보도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의원이 마음 편히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기사를 쓰지 않으려면 뭐하러 만나서 이야기를 듣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기사에 들어가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축적이 돼야 심도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건 어느 부서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특히 정치부 기사는 배경 지식 없으면 쓰지 못합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것만으론 이유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정치인들이 하는 말들이 죄다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발언을 한 진짜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밥 자리는 이런 얘기들을 듣는 게 주 목적이죠.

그런데 이날 만난 의원이 청와대 인사 얘기를 했습니다. 이미 대사에 내정된 걸로 알려진 그 인사가 맞다는 겁니다. 사실 유력하게 거론된 인사라, 간단하게 윗선에 보고했습니다. "OOO 대사 맞답니다" 정도로요.

그런데 이 윗선이 그걸 부장한테 어떻게 보고했는지 갑자기 기사를 쓴다는 겁니다. 그것도 저에게 쓰라는 게 아니라 본인이 알아서 쓰겠다고.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제가 혼자 들은 얘기도 아니고 꾸미 멤버들이 같이 들은 얘기를 저 혼자 써서 멤버들을 물먹이는 게 될 뿐더러, 이렇게 되면 저희 꾸미가 의원들에게 신뢰를 잃어서 앞으로 약속 잡기가 어려워집니다.

윗선이 잠시 뒤에 카톡으로 기사를 하나 띡 보내는데 무슨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여권 관계자가 확인해줬다고 확정적이라고 써 놓고 맨 끝에 제 이름에 본인 이름까지 달아 놨더라구요. 그래서 내 이름을 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화를 해서는 "위에서 쓰라는데 어쩌냐. 니 이름 빼도 누가 취재했는지 다 알 거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식이면 앞으로 보고 못한다"고 했죠. 그랬더니 버럭 성을 내면서 "니가 그 자리에 개인 자격으로 간 거냐. 회사 대표로 가서 니가 보고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느냐.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 앞으로 보고도 하지 말고 맘대로 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죠. 전화를 쾅 끊더라구요. 그리고는 바로 다시 전화와서 마감하고 회사로 들어오라더군요.

화가 많이 나면서도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또' 들이받았다고 회사에 소문 다 났을 테고, 뭣보다 여의도에서 아내랑 같이 퇴근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얘길 하나... 그래도 데스크가 들어오라는데 일개 후배가 "ㅅㅂ 니가 나오라"고 할 순 없으니 들어가야겠죠.

퇴근 뒤 만나기로 했는데 못 만나니 아내에게 이실직고 했습니다. 아내는 윗선의 말도 안되는 행동에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그래도 또 선배랑 들이받는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것 하나도 없으니까, 가서 일단 말을 좀 세게 한 것에 대해서는 먼저 사과하고, 더 들이받진 말고 찬찬히 얘기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몇번이나 "더 싸우진 말라"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마감을 하고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기름값과 주차비는 누가 내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을 하면서. 들어갔는데 기분나쁠만큼 상냥합니다. 회의실에서 독대를 하는데 미안하다네요. 이거 뭐 이렇게 힘빠지는 결말이...

한 15분 이야기를 했나봅니다. 정당 경험이 거의 없는 분이라 꾸미 밥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도 차근차근 설명했죠. "알고 있다"더군요. ㅋㅋㅋㅋㅋ

무튼 원만히 대화를 끝내고 나오는데 톡이 와 있습니다. 아내였습니다.

"자갸 나 심심해서 광화문 가 있을게.일 다 보고 연락 줘용."

심심해서 왔다네요. ㅋㅋㅋ

광화문역에서 만난 아내에서 "너 나 사고칠까봐 온 거지?" 했더니 첨엔 베시시 웃기만 하네요.
재차 추궁했더니 "혹시 회사 뒤집으면 올라가보려고 했다"네요. 세상에 ㅋㅋㅋ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회사를 뒤집습니까. 남편이 표정관리 못하고 선배들한테 잘 들이받고 다니는 걸 연애시절부터 봐서 이번에도 못 참을까봐 걱정했나봅니다. '저 XX 들이받고 회사 그만둔다'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렵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이래서 결혼하나 봐요. 둘이 회사 근처에서 저녁 먹고 퇴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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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네요!

한동안 웬만한 건 하라는대로 하려고 하는데 오늘도 참 여러번 참네요 ㅋㅋㅋㅋ

역시 아내의 힘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로 마감하다니 ㅎㅎ ! 잘보고 갑니다!

ㅋㅋㅋ 고맙습니다. 정말 아내 때문에 온순해졌네요..

한 가정의 가장이신데 ㅎㅎㅎ 들이받고 회사 그만둔다는 소리는 나중에 스팀이 384791배 되면 하세요 ㅎㅎㅎㅎㅎ

스팀이 그렇게 되면 이놈의 회사 제가 사버리겠습니다!!

아, 이런 달달한 해피엔딩이! ^^

ㅋㅋㅋ 경고문을 적어 놓을 걸 그랬나요 ㅋㅋ

직장생활에 비애를 보는 기분이네요. 결혼후에 성질 다 죽는다는 말이 다르지 않은것 같습니다.
다행히 일은 잘 풀렸네요 ㅎㅎ 그래도 적당한 발톱은 보여줘야 함부로 못할것 같긴 합니다 ㅋㅋ

저의 경우는 너무 발톱을 자주 뽑아서 문제인 것 같은데 다행히 아내가 콘트롤을 하려고 하는 것 같네요 ㅜ

네 ㅎㅎ 적당히 드러내서 보여만 주시면 될 듯 싶습니다.
할퀴지만 마시고 슬쩍 보여만 주세요 ^^
와이프님이 현명한 컨트롤을 하시는 듯 하네요~~

좋은 아내분이시네요 :) 진짜 저런 상황이면 너무 답답할 것 같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기자는 정말 극한직업이군요.

제가 익명으로 여기 활동했으면 동료욕 포스팅만 1000개 썼을 듯요 ㅜㅜ

그래도 해피 엔딩이라 정말 다행이네요.
저도 그럴 때 결혼한 보람을 느낍니다.ㅎㅎ
화이팅 입니다!

ㅋㅋㅋ 유부 만세!!

좋은 아내분이시네요~ 부럽습니다...하하하~~
절대 외롭지 않은데.... 부러운건 뭘까요? ㅋ

흠흠 그렇다면 배우자는 없고 애인은 많으신...? 케어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아~ 연애세포조차 사멸해버린 1인이라...ㅠ 애인이라도 있으면 좋겠네요!

숨이 턱턱 막히려 하는데... 해피엔딩이었군요!

네 ㅋㅋ 맨날 인상쓰는 글만 써온 것 같기도 하네요 최근에 ㅜ

그나저나 kr manulnim 태그 성장세가 매섭습니다 ㅋㅋ

ㅋㅋ 남편들이 할 말이 많죠

할 말 하는게 아니고, 자랑만 하는거 같은데요! ㅎㅎ

그게 태그 생성 취지 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

창시자 의도를 생각하면 정확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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