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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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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페미니스트를 얘기하면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나혜석이다. 그는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고, 각종 언론을 통해 여성의 진솔한 목소리를 광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힘썼던 작가요, 소설가이기도 하다. 여자는 학교도 잘 보내지 않던 시절 신식 교육은 물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고, 유럽과 미국까지 두루 여행 다닌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반면 이혼으로 인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선구자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언제나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펴던 나혜석도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과 이혼 후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 앞에 무너져 내렸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나혜석은 여성이 누군가의 아내요, 어머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성이라는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자도 사람이라고” 외쳤다. 여성이 결코 남성의 부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첫 아이를 낳은 후에는 <모된 감상기>라는 글을 통해 여성이 아이를 낳는 고통과 갓난아이를 기르는 고통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고백해 조선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요즘에도 출산은 숭고한 일이라고 포장하기 바쁜 시대임을 생각하면 나혜석의 용기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횃불을 높이 들었던 만큼 자신에게 짙은 그늘도 드리우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선각자의 삶이 어디에서 오는지 냉철하게 따지지 못했고, 시대와 그 자신의 한계로 인해 너무나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만다. 유럽/미국 여행을 다녀온 후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의 최고점과 최저점을 압축적으로 겪은 나혜석의 삶은, 우리가 한 인격체로서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세상은 단단한 바위와도 같이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급류를 타고 떨어지는 폭포와 같이 순식간에 변하기도 한다. 꼭 100년 전만을 개화기라 불러야 할까? 하루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소식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도, 어쩌면 훗날의 세대에서는 제2의 개화기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요즘의 우리가 변화의 최전선에 섰던 나혜석의 삶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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