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여행

in #artisteem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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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4 화진포로의 여정을 시작했던 영덕

2017년 7월 4일 화요일, 영덕에 도착했다.
근 5년간 일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혼자 하는 여행을 계획했었다. 몸과 마음이 피로와 상처로 너덜거렸다. 마음이 떠난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8월이나 9월까지 일하면서 천천히 생각하라는 얘기를 듣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일을 그만해야겠다고 말한 것이 한 달 전이었는데 그동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내가 몇 달은 더 일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6월까지만 일하겠다고 통보했다.
보름 남짓 남은 시간이 슬로비디오처럼 지나갔다. 상처는 더욱 깊게 패였고 마음이 떠난 자리에는 작은 불협화음과 어색한 관계가 쌓여갔다. 2017년 6월 30일 저녁, 5년의 시간을 소주 한잔으로 갈음했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 며칠이라도 혼자 있을 수 있다면 머리 위로 삐죽삐죽 솟아난 못된 감정과 습자지로 대충 땜빵한 상처들이 치유될 것 같았다.
한 달은 쉴 생각이었다. 먼저 2박 3일이나 3박 4일로 동해안의 해안도로를 달리기로 했다. 결혼 후 처음 하는 홀로 여행을 아내도 승낙해 주어서 7월 4일 영덕으로 출발했다. 부산과 포항 쪽의 해안도로가 더 멋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부산으로 갔을 것이다.
영덕에서 화진포까지 무조건 해안 쪽으로만 찾아 들어갔다. 가파른 태백산맥의 발가락이 해안 길을 끊으면 7번 국도로 돌아 나와 가파른 지형을 벗어난 다음 다시 무작정 우회전으로 길을 잡아 해안을 향했다. 그렇게 화진포까지 최대한 바다 옆길로만 다녔다. 7번 국도 타고 한나절이면 갈 거리를 2박 3일간 달렸다.
동해안은 작은 어촌을 이어 만든 해안선이었다. 작은 어촌에는 대부분 작은 백사장이 붙어 있어서 그것은 그대로 작은 해수욕장이 되었다. 유명한 포구나 큰 해수욕장 사이를 작은 마을들이 채워주고 있었다. 동해안은 지도처럼 밋밋하지 않다. 바다를 끌어안은 육지마다 벌집의 애벌레처럼 마을이 들어앉았다. 마을과 마을은, 이번에는 바다가 당겨 놓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곳은 잔 돌멩이까지 쓸려나가 바닷가에는 큰 바위들만 남았고 그 일부는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나폴리의 어느 해안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내심 3박 4일 일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여행 둘째 날 받은 전화 한 통으로 내 여정은 하루 당겨졌다. 7월 7일부터 출근하라는 전화였다. 한 달 후에나 고용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알려 주겠다고 했었다. 고용한다고 약속해도 그 후 몇 달을 더 쉬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래 기다릴 수는 없으니 여차하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당장 출근하라니... 뭔 일이 생겼지 싶었다. 7월 5일 밤에 화진포에 도착해서 6일 오전에 집으로 향했다. 7일은 지금 일하고 있는 가게에서의 첫 출근날이었다.
2박 3일 동안 한 가지만 생각했다. 이 길이 바다로 이어지기만을 바랐다. 막다른 산길을 만나면 돌아 나와 다음번 길로 들어갔다. 여행의 목적을 잊은 채 길 찾기에 몰두했다. 상처란 막다른 산길에서 만나는 절망보다도 왜소한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발아래만 내려보며 걸어도 내 가는 길이 곧 제 갈 길이다.
최소 한 달은 쉬고자 했던 계획이 일주일로 변경되었다. 뭐 세상일 뜻대로 됐다면 지금쯤 아나톨리아에 있어야겠지. 나는 아나톨리아에도 나폴리에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보고 싶은 곳은 와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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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딱딱 맞는 일은 행운처럼 느껴지더라구요^^

계획대로만 되면 좋겠지만 세상일이 그렇지는 안더라구요.

인생이 계획되로 흘러간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아요. 이벤트가 불쑥 불쑥 나오다보니 정신없이 처리하기도 하고 ^^

그래서 간혹 계획대로 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더군요..ㅎㅎ

ㅋㅋㅋ 와칸다 포에버!!!

와칸다 만세!! 블랙팬서가 사라져서 어쩐답니까...ㅠㅠ

아 이 여행도 여행기도 너무 너무 좋아요.

혼자 가는 여행이 동글이님에게는 일상이겠네요..ㅎㅎ

제가 가는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걸까요?
한번 멈춰섰더니 다시 출발하기가 힘드네요.
근데 꼭 어딘가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없어지는 거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그저 계속 걷고 걸을 뿐.

목적지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해도 사는걸 멈출수는 없잖아요. 지금껏 열심히 살아오셨으니(영어 잘 하시는 것만 봐도 앱니당) 잠시 천천히 가도 좋겠죠. 어다로 가는지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ㅎㅎ

오...아래서 위로 올라왔군요...

저는 위에서 포항까지 내려가밧지요..ㅎㅎㅎ

저는 줄창 우회전만 했는데 한우님은 좌회전만..ㅎㅎㅎ

와칸다 고고~

와칸다 가 보셨나봐요..ㅎㅎ

7번 국도따라 3 번 정도 여행했었는데 가끔씩 동해의 그 푸른 물결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어요~
이전 직장을 그만 두고 너무 일이 없어도 큰 일인데 일주일밖에 쉬진 못했어도 잘된 일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아나톨리아에도, 나폴리에도 가보게 될 겁니다~^^

동해 물 색깔이 그냥 시퍼런 줄만 알았거든요. 근데 여러곳을 보다보니 참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행이 항상 그렇지만 또 가고 싶네요.
아나톨리아에는 꼭 가볼겁니다.. 그럴러면 스팀이 떡상을....

인생이란 뜻대로 되는 게 없나봐요.

상처란 막다른 산길에서 만나는 절망보다도 왜소한 것이다
멋진 문장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다보니 점점 달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ㅎㅎ

동해안 해안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면 경치가 정말 좋죠. 가는 곳마다 해수욕장과 해안선이 계속 나오고...

정말 멋집니다. 동해안이 그렇게 예쁜 곳인줄 알았다면 좀 더 자주 갔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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