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호적에 정식으로 [부활] 한 한국인the officially resurrected Korean
오늘 부활절인데요 호적에 정식으로 '부활' 이라 기록된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인입니다.
배트남 종전 후 박정희 정권은 단 1명의 전쟁 포로도 실종자도 없다. 그러므로 포로교환 따위 필요없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사실은 있었습니다.
미군이 자국 미군포로들의 생환을 위해 노력하는 중에 자꾸 발견되는 것이죠...
그래서 미국이 한국정부에 이들을 어찌할지 물었던 것이지요.
1972년 엠네스티 국제 사면위원회가 박정희와 김종필에게 관련 서한을 보냈고
부랴부랴
한국 정부는 하는 수 없이 그들의 명단을 찾아내어 알려주고는
국내에는 극비비밀로 분류하여 파기했습니다.
1971년 미군과 월맹군은 570명의 포로를 상호 교환했지만 한국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군 포로들은 그렇게 밀림속에서, 베트콩의 감옥에서 외롭게 버티다 죽거나
북한으로 3000달러에 팔려갔습니다.
1966년 북한은 돈 주고 사 온 국군 포로 안학수 하사를 선전용으로 이용했고
죽었다던 사람이 북한 방송에 나오자 박정희정권은 그를 월북자로 몰고
그 가족들을 간첩단 수준에서 탄압했습니다.
가족들의 삶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1975년 안학수하사가 북한에서 탈북을 시도하다 총살당합니다.
총살 당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십수년간 그 가족들에 대한 간첩사건 사찰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 놀랍습니다.
1973년 3월27일 국무회의 기록에서 주월사령부는 아예 국군 실종자를 자진납북이나 탈영병이므로 노력해서 찾을 필요가 없는쓰레기로 비유했습니다.
전사자(?)가 석방되다.
그러다 갑자기 베트콩이 한국군 포로 1명을 석방한다고 미군측에 발표했습니다.
1972년 4/19 아케패스 작전중 베트공 기습으로 포로가 된 맹호기갑연대 2대대 8중대 1소대 유종철 일병이었습니다.
군부는 유일병을 이미 사망처리해서 국립묘지에 묻어버린 뒤였습니다.
가족들은 무공훈장까지 추서된 자식의 유해를 받고 장례비도 받았는데
1년이 지나서 죽은 유일병이 김포공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사복을 입고 몰래 조용히 귀국했지요.
그래서 그의 호적에 ‘사망’ 옆에 ‘부활’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탈출하여 귀국하면 간첩으로 몰릴까.....
1968년 베트콩에 납치된 후 형무소에서 502일 간 갇혔다가 북한으로 압송 중 가까스로 탈출하여 귀국한
박정환 중위는 한국정부가 자신을 간첩으로 처리할 가능성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귀국 후 수십년동안 그는 보안사와 중정의 강요로 탈출경위 등을 숨기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베트남 전쟁 기간 실종자와 포로 문제를 다룬 국방부와 외무부의 미공개 문서 <베트남 전쟁 포로 및 실종자 송환>(CA0006682)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그리고 시사인.
토사구팽도 모자라 가짜 간첩을 만들어내던 정권, 그런 정권의 거짓말을 믿던 우매한 국민들....모두 슬플 뿐입니다.
책읽다보미 우울해져서 저도 나갔다 왔습니다.
헉.... 저런....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 많았네요. 하늘에 대고 욕하면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꿀꺽....
아 저런 일이 있었군요. 슬픈 역사네요.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들의 "피" 위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미안마에서도 많은 피가 흘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나라와 너무나도 겹쳐지는 모습에 슬퍼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