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국정원 전문기자가 쓴 흑금성 스토리

in #thespygonenorth6 years ago (edited)

주말에는 아이가 자는 틈틈이 이 책을 읽고 있다. 8월8일 개봉하는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의 원작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암호명 ‘흑금성’이라 불린 안기부 요원 박채서씨가 감옥에 있을 때 직접 수기를 썼는데, 출소하자마자 김당 기자에게 그 수기를 전했고 김당 기자가 정리해 최근 출간했다. <시사저널> 기자, <오마이뉴스> 정치부 데스크를 거친 김당 기자는 흑금성 사건을 국내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안기부, 국정원 관련 사건들을 보도하면서 국정원 기자로 유명하다. 내가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엔터팀을 취재할 때 취재가 안 풀릴 때마다 그의 기사를 종종 읽으면서 감탄했던 기억도 난다. 어쨌거나 윤종빈 감독이 팟캐스트 방송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흑금성 특집을 들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운영하던 영화사 월광 손상범 본부장을 통해 김당 기자를 만나 흑금성 사건의 영화화에 대한 의견을 구했으며, 결국은 감옥에 있던 박채서씨로부터 영화화 허락을 받았다(그리고 윤종빈 감독은 <이이제이> 방송을 배우 황정민에게 들어보라고 추천했고, 이 방송을 들은 황정민은 <공작>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영화와 같은 제목 때문에 영화와 큰 차이가 있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1997년 대선 당시 북풍 공작 사료로서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당시 <시사저널>이 흑금성 사건을 어떻게 취재하게 되었고, 취재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김당 기자가 바라본 흑금성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세세하게 기록돼있다. 이 책을 쭉 읽다보면 몇 가지 감정이 드는데 하나는 개인(흑금성)이 온전히 국가의 도구로서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점에서 무척 씁쓸하고, 또 하나는 정말 그때는 정보 기관이 진짜 국가 안보를 위한 첩보 활동을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에 몰려가 댓글을 달고, 영화인들의 동향을 파악하거나 사찰하며, 영화인들 불러내서 회 먹고, 고기 구워먹으면서 '국뽕'영화 만들어라고 제안했던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요원들과 차원이 달랐다(제가 취재해 보도했던, 영화인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사찰했던 국정원 엔터팀 기사 [단독] 국정원, 우익 ‘국뽕영화’ 기획·사찰 엔터팀도 운영했다. )

나도 흑금성, 박채서씨를 실제로 만난 적 있다. <공작> 촬영 시작하기 전에 진행됐던 고사에서 박채서씨는 캡 모자를 쓴 채 모습을 드러냈다. 감옥에서 출소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그의 얼굴은 여유가 있어보였는데, 한눈에 봐도 바위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총 두 권짜리라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첩보 장르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에 대한 얘기는 다음주 화요일 첫 공개되는 언론시사가 끝난 뒤 꺼낼 생각이다.


( 김당 기자가 이 책 서문에 내 인터뷰의 일부를 인용해주셨다)

-제가 진행한 <공작> 윤종빈 감독 인터뷰 기사 <공작> 윤종빈 감독 - 일상과 필름누아르 사이의 남북 이야기
-책 <공작> 출간 기념 김당 기자, 흑금성 박채서씨, 윤종빈 감독 토크 콘서트 ‘공작’의 실제 주인공 흑금성, 처음으로 입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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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요. 8월의 영화로 찜해두겠습니다!

네, 액션 비중이 큰 할리우드 첩보영화보다는 대사와 분위기가 서스펜스를 쌓아가는 <팅커, 솔저, 테일러, 스파이> <스파이 브릿지> 같은 영화에 더 가까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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