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질긴 것이 인생이더라 / 안해원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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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것이 인생이더라 / 안해원

부도난 김 사장네 값진 물건들이 경매에 부쳐진 후
용달에 시래기살림 싣고 이사하던 날
자랑하던 홀인원 트로피를 담은 상자
수세미며 밥그릇이며 옷가지를 담은 상자
이 상자 저 상자
쏟아지지 않도록 꽁꽁 묶어 주던 줄
마누라 모르게 짐칸에서 꺼억꺼억 울던 김 사장이
거센 바람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여잡고 버티던 줄
그 줄도 한때는
미끄러지듯 날아가듯 고속도로를 내달리던
고급세단의 바퀴로 살던 때가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줄을 섰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일 때
헛배를 은근히 내밀며 무게를 잡던 때가 있었다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빈 몸뚱이 하나로도 함께 버텨주는
김 사장의 손이 끝까지 희망처럼 붙들고 있는
그런 줄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삭아져 가루가 되도록
오로지 제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부어주는
그런 줄
지문이 닳도록 죽을 힘을 다해 일하고도
버림받고 잘리고 쪼개진 후
마지막 술잔에 피눈물을 섞어가며 죽음을 넘겨보지 않고서
어찌 함께하는 가치를 알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손으로 붙들고도
그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가더라



《작가노트》
실패 후에 인생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그야말로 실패는 실패가 아닌 성공이다.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성공의 기준을 따지는 세상에서, 참된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모두 황금만능주의에 젖어있다. 그래서 실패했다는 것을 모든 재산을 잃은 것으로 단정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은 금전적인 손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진 돈이 순기능을 잃고 역기능만 있다면 그는 실패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명예를 잃는다면 그야말로 철저히 실패한 인생인다. 한 때는 고급자동차 타이어도 빵빵하게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낡고 버려질 것 같았던 타이어가 잘게 쪼개져서, 막다른 길에서도 안간힘을 쓰며 버티며 살아가려는 인생을 붙잡아주는 버팀줄이 되어주지 않던가. 들풀같은 인생이라도 모두 그 존재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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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보팅 팔로윙 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저도 대문을 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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