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5. 인랑 (2018) - 나랑 같은 영화 본 것 맞나? (18.07.30)(스포일러 주의)

in #kr6 years ago (edited)

제가 이상한 건지 세상이 이상한 건지 점점 이해가 되지 않는 지경입니다.

저번 '퍼시픽림 : 업라이징'에서도 느꼈지만 이제 한국 관객들에게 영화란 그저 이야기 소재 거리만 되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영화를 감상하고 스스로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영화를 봤다는 사실(+SNS 인증용) 과 그냥 인터넷 찬반 여론에 참여하고 싶어서 보고 싶은게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드네요.

예전에는 '변사'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무성영화 시절 배우들의 대사와 화면 해설을 해주는 사람이었죠.

21세기 멀티플렉스에서 첨단 디지털 영사기로 영화를 보는 요즘에 '변사'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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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일본 원작 VS 2018년 한국 리메이크 작품

이 영화의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는 1999년 원작 애니메이션은 일부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단어) 팬들 사이에서나 화제가 된 숨은 작품입니다.

인터넷이 일반화 된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한국에서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보급되던 시절이 바로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입니다.
또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일본 문화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막 열린 시절입니다. 김대중 정부 이전 한국에서 일본 대중 문화는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 대부분의 얼리 어뎁터들은 불법으로 복제된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일본 문물을 접하던 시절이죠.
저도 이 영화를 그런 불법 비디오 테이프로 처음 접했습니다.
그런 시대의 작품이 , 그것도 아니메라면 영향을 가져봤자 얼마나 큰 영향이 있을까요?
당시 전설로 취급되던 작품들이 러브레터 , 에반게리온 극장판 , 모노노케 히메 정도였고 이 작품의 원작자라고 할 수 있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님도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 정도나 알려진 정도입니다.

지금은 2018년 한국 버전에 대한 악평이 쏟아지며 마치 원작이 일본 아니메 역사에 길이 남은 수작으로 취급되지만 애초에 원작 자체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며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봐도 기억에 박히는 그 엔딩의 맛이 참 씁씁한 작품이죠.

이 영화에 분노하는 수많은 '원작팬'들을 보니 루리웹 덕후질 20년 가까이 되어 가는 저도 모르는 '원작팬'들이 이렇게나 많은게 참 놀랍네요.

애초에 이런 마이너한 작품을 블록버스터 영화로 실사화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무모한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인터넷의 많은 여론은 한국 실사 판에서 변경된 엔딩에 말이 많지만 원작 결과 그대로 갔다면 또 뭐라고 했을까요.
일반 관객들이야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에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급으로 실망하고 어이 없었을 거고 ,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원작 그대로 만들거면 뭐하러 실사화 했냐고 하겠죠.



무엇보다 이것은 한국의 감독이 만든 한국인을 위한 한국영화입니다.

왜 한국영화에서 인간을 사회와 조직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원작의 엔딩을 따르지 않았다고 비난하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작의 설정에 중요한 영향을 준 '전공투' 세대의 실패 이후 일본 사회는 급속한 우경화를 겪게 됩니다. 원작이 개봉되었던 90년대 말은 물론이고 이미 21세기 현재에 와서는 평화헌법을 개정하자고 개소리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죠.
일본에서 개인이 사회 , 전체를 거스르는 것은 이전에도 불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반면 한국은 비록 그 결과가 성공적이라고만 평가할 수는 없지만 1987년에도 , 그리고 현 정부를 탄생시킨 것도 바로 시민의 힘으로 이룬 것입니다.

이것은 동아시아 3국에서는 유일한 것이며 아시아 전체에서도 한국은 민주주의 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국가입니다.

그런 우리가 왜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냐고 한다면 , 그만큼 어리석은 질문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영화 주제는 김지운 감독님이 촛불집회 당시의 한국 상황을 보고 작품에 넣은 것입니다.

개인이 사라지는 세상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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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VS 전체

영화가 막 개봉된 시점에 김지운 감독님은 MBC 라디오 'FM 영화음악 한예리입니다'에 배우 한효주 씨와 함께 출연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영화 이해를 위해 꽤 많은 정보가 나왔었는데 정작 각종 언론에서는 이러한 점보단 얼마나 망했나만 보도하는 통에 관객들이 이러한 정보를 접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보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 영화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감독이 자신의 모든 의도를 해설처럼 삽입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감독님이 하신 말씀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영화의 주제인 '개인과 전체의 대립'이라는 부분입니다.
감독님은 이 영화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 세대가 보아도 그들만의 시선으로 할 이야기가 있는 영화라 하셨는데 이것은 영화속 여주인공인 '이윤희(한효주)'가 처한 상황 탓입니다.

영화에서는 공안부와 특기대의 대립으로 그려지지만 이것은 곧 우리 자신의 역사입니다.
친일과 반일
찬탁과 반탁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

우리 역사에서 일반 시민들은 항상 거대한 권력의 다툼속에 어느 한 편에 서기를 강요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인랑의 '이윤희'라는 캐릭터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김영신(고 이은주)'이 바로 그러한 역할이죠. 비록 작품중의 배경은 근미래이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과거에도 , 그리고 현재에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강요되는 '편'에 서는 문제입니다.
결국 힘없는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과 악 , 정의라는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죠. 개인에게 그러한 선택을 강요하는 시대가 옳은가 , 우리는 개인과 전체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하는 점이 이 영화가 원작과 다른 결말을 택한 이유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임중경과 이윤희는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에 휩쓸리며 살아갑니다.
서로가 목적을 숨기고 접근해서 사랑하게 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들이 속한 거대한 세력들의 시나리오 대로죠.

영화 초반 동생을 잃은 이윤희가 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임중경과 뜬금없는 로맨스에 빠지는지 , 그 이유는 금방 나옵니다.
공안부의 추격을 피해 안가에 숨어 있는 동안 이윤희는 숨겨왔던 사실과 본인의 진심을 전하지만 임중경은 임무와 사랑 사이에서 고민을 합니다.
그로써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혼자 떠날 것을 요구하고 이것은 그녀가 그를 배신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죠. 물론 이 모든 것도 다 계획에 있던 내용이지만요.

원작에서는 두 주인공이 최후의 순간에 사랑을 깨닫게 되지만 ,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며 그 사랑이 그들이 처한 현실을 거부할 힘을 가지지도 못합니다.
반면 죄없는 소녀들을 죽인 죄책감에 고민하던 임중경은 또 다시 이윤희를 죽음에 이르게 놔 두는 것이 옳은 일인지 '조직의 일원'이 아닌 '한 인간'으로써 고민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윤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가게 되죠.
동생을 살리기 위해 , 그리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살인도 해야 했던 이윤희는 자신의 목표였던 임중경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의 의지로 살고자 하죠.

이러한 두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가 원작과 다른 결말에 이르게 만드는 겁니다.

원작과 이번 한국 실사 작품의 엔딩에 대한 흥미로운 , 그리고 어느 정도 제대로 된 비교가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인랑 실사판 결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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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정치질

최근의 한국 영화 흐름을 보면 관객의 정치질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도를 넘은 행동이 보입니다.

물론 자본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영화 산업이 마냥 순수하고 투명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지만 관객에 의한 왜곡은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논란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1987'의 성공으로 배우로써의 커리어는 물론 본인에게 붙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딱지도 어느 정도 벗겨졌지만 여전히 강동원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 기사에는 '친일파'라는 비난이 가해집니다.
이것은 정우성과 한효주도 마찬가지 입니다.
난민 지지 발언으로 '박근혜'를 까던 개념남에서 하루 아침에 PC충이 되어버린 정우성 , 믿고 거르는 배우로 무슨 연기를 하던 비난만 받게 된 한효주까지 주조연 배우 3명이 그야말로 악풀을 부르는 상황에서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죠.

영화 <인랑>과 난민 문제, 의도치 않은 정우성의 ‘미스캐스팅’
: 박근혜의 블랙리스트가 탄압이라면 정우성에게 가해지는 언론과 여론도 탄압이 아닌가? 더욱이 그가 박근혜를 욕할 땐 박수치며 환호하던 이들이 말이다.

영화 리뷰와 네티즌 평정은 또 어떻나요?

이러한 정보들은 영화가 공평하게 평가받아야 할 기회조차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지지하는 배우의 출연 여부에 따라 점수 조작질도 공공연하게 벌어지죠.

원작자 평 :

'인랑' 원작자 오시이 마모루 "실사화 완벽, 모두가 꼭 봤으면" 극찬

아무리 영화 홍보 성 멘트라고 해도 일단 이 영감님 성향 자체가 오덕 혐오자인데 , 오덕들은 이번 한국 인랑이 원작을 훼손했다고 난리. 그냥 본인 취향에 맞게 만들었던 원작을 김지운 감독님이 한국 대중 팬들에 맞춰 각색한게 본인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결과물은 아니라는 건데 왜 다들 이 난리인가.
거기다 정작 영화가 망하고 내려가는 지금에는 이 영화에 대한 지지 댓글도 많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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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아직 보진 못했지만, 우리는 많은 마케팅과 댓글놀이로 인해 보기도 전에 그리고 보고난 후에도 많은 색안경을 낀 채로 모두가 평론가인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너무 잘 읽었어요!! :)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 전개가 다소 불친절하긴 하나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액션 씬 만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데 이렇게 영화 외적인 부분만 부각이 되어서 묻히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사실 많은 영화가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 하고 사라지는게 천만 영화 시장의 또 다른 모습이죠.

영화는 관람인에따라 다양하게
느낌이 다 다름을...
그럼에도 너무나 한 방향으로만 쏠림은 우려됩니당~! ㅠㅠ

​글 감사합니다~ ^^

bluengel_i_g.jpg Created by : mipha thanks :)항상 행복한 하루 보내셔용^^ 감사합니다 ^^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뭐 이것도 대중의 선택이라고 하니 그게 곱게 보이지 않는 제 성격이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다양한 영화가 나오고
다양하게 즐기면 좋을 텐데...

멀티플렉스가 나오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 반대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멀티플렉스에서 지원하는 소규모 영화를 위한 공간들도 있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영화 선택이 좌우되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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