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yLee's Life Magazine 23. 바쿠만 : '우정, 노력, 승리'의 소년만화 (오오네 히토시 감독, 2015년)

LilyLee's Life Magazine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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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만
: '우정, 노력, 승리'의 소년만화 (오오네 히토시 감독, 2015년)

영화 <바쿠만>을 보았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독특하게 <소년 점프> 연재를 목표로 하는 만화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년 점프>는 일본의 대형 출판사 슈에이샤에서 발행하는 주간 소년만화 잡지로, 원피스, 나루토,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낸 판매부수 1위의 만화잡지다. 주간지인 만큼 혹독한 마감의 연속, 인기순위에 따른 가차없는 퇴출 등 가혹한 노동환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만화를 즐겨보는 편인 나는 늘 '작가의 말'을 읽을 때마다 '만화가란 정말 고된 직업이구나. 제 명이 못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는 그런 만화가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공모전에 입상하고, 담당 편집자와 여러 번 회의를 거친 끝에 연재작의 스토리와 설정, 캐릭터를 만들어내 편집장의 승인을 거쳐 연재가 최종 결정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정한 지옥의 시작인 것이다. 연재가 결정되고 좋아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마냥 함께 기뻐해줄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점프 만화다. 우정, 노력, 승리. 1980년대 확립된 <점프>의 이 신조는 거의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 눈물겨운 우정이 있으며, 피나는 노력이 있고, 마침내 승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공이 꺾이지 않을 것임을 안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인물마저 주인공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이래야 점프 만화지'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 어디서 많이 본 클리셰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일본 청춘영화 내지는 성장물을 기대하고 본 사람이라면 실망할 것이다. 이건 만화다. 활기차고 밝은 만화. 어떤 고난과 역경의 어두운 그림자도 걷어내고 마침내는 활짝 웃을, 그런 소년만화다.

이 작품의 재미있는 부분은 원작 만화 역시 <소년 점프> 연재만화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작품의 작가인 오바 츠쿠미와 오바타 타케시 듀오는 <데스 노트>를 만든 콤비. 그래서 작중 주인공의 그림체가 <데스 노트>를 닮았다. 대사 중 나오는 데스노트 드립도 원작자가 <데스 노트> 작가라는 사실을 알면 한층 재미있을 것이다.

원작을 보지 않아서 원작과의 비교는 힘들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상당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20권짜리 만화 내용을 우선 2시간 가량으로 압축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고교생 만화가 배틀'을 실제로 싸우는 것처럼 표현해낸 신이었다. 실사와 만화의 조화가 멋진 연출이었다.

엔딩 크레딧도 신박하다. 얼핏 보면 그냥 만화책이 꽂혀있는 책장을 죽 훑어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책등에 적힌 제목은 스태프의 직함이요, 작가명은 스태프 이름이다. 인기만화들의 책등을 패러디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원래 어떤 만화였나를 찾는 재미도 있다. 기억나는 건 히카루의 바둑, 테니스의 왕자, 전영소녀, 근육맨, 멋지다 마사루 등이었다. 여러분도 한 번 찾아보시라.

세계는 끝없는 경쟁사회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쟁을 줄여야 한다'고 얘기하며 학교를 평준화시키고 시험을 없애고 등수 매기기를 없애려 하고 있지만 능력 여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같은 것을 가질 수는 없다. 하다못해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기 위해서도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동물의 세계라고 다르지 않다. 사자는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치열하게 노력하는 그들을 보며 오늘도 반성한다. 나는 무엇을 얼마나 치열하게 하고 살아왔던가? 요즘 세상은 '천천히 살아도 돼'라고 말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엔 내가 그 동안 기어왔기 때문에, 그 조언은 좀 집어치워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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