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8월 8일

in zzan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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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서울에서 가조인
6.25 전쟁이 발발 후 3년을 채워 가는 상황에서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경질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본토에서는 '무의미한 전쟁, 질질 끌지 말고 휴전협정 맺고 빨리 끝내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 17일 당시 미국 브릭스 대사와의 회동에서 휴전 후에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해외에 간섭을 하지 말자는 고립주의 방향으로 흘러가던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제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여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6월 18일 약 25,000명의 반공 포로를 직권 석방시키면서 반공포로 석방 사건을 일으킨다. 이 조치에 크게 놀란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약속 위반자'라고 비난했고 '이승만을 제거해야 한다'는 건의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약속을 해주지 않으면 휴전협상 주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단독으로라도 북진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미국은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휴전에 응할 것을 제시, 1953년 7월 휴전협상이 체결되었다.

이후 같은 해 8월 3일 미국과 협상을 시작, 8월 8일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여기에 크게 기뻐하며 "이 조약으로 우리 후손들은 많은 혜택을 볼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부 장관과 존 포스터 델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조인하였으나, 이후 삽입조항에 대한 양국의 의견차가 심하여 시간을 끌다가 1년 후인 1954년 11월 18일에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1967년 아시아 5개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 결성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폴의 5개국 대표가 동남아시아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이 1967년 8월 8일 태국 방콕에서 창설되었다. ASEAN은 5개국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의 지역협력기구임과 동시에 어떠한 형태의 외부간섭으로부터도 우리들의 안전을 지킬 것이라면서 간접적으로 공산세력에 대항하는 결속을 강조했다.

동남아시아 지역 내 협력체제로서는 이미 1961년에 발족한 태국, 말레이시아연방, 필리핀 3국에 의한 동남아시아연합(ASA)이 있었지만 이즈음에는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반공을 내세우는 ASEAN의 탄생은 ASEAN 5개국이 베트남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대치하는 결과가 돼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베트남 전쟁 종료 후 더 큰 응집력을 보였고, 냉전 종료와 더불어 몸집도 불려 나갔다. 1984년 브루나이가 독립 후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1995년 베트남, 1997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가 합류해 10개 회원국이 되었다.

1973년 망명중이던 김대중 납치 사건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박정희에 맞서 선전했던 김대중은 1972년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체류하였다. 그러나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포기하고 1973년 7월 재미교포 반체제단체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약칭 한민통)를 결성하였다.

도쿄에서 ‘한민통’ 결성을 며칠 앞둔 1973년 8월 8일,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팔레스 호텔로 간 김대중은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이후 감금된 채 동해로 압송, 129시간 만에 8월 13일서울의 자택 부근에서 풀려났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한 일본 경찰청은 납치 현장에서 주일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의 신분으로 일본에 머물던 김동운 중앙정보부 요원의 지문을 채취하는 등 증거를 확보하여 관련자 출두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관련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관련자 출두 등 협조를 거부하였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한국 공권력에 의한 일본 주권의 침해라는 한일 간의 외교문제로 비화하였고 양국 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또한 북한이 8월 28일 남북회담 중단을 발표하는 등 남북관계 진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건 발생 석 달 후인 11월 2일, 김종필 총리는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담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를 일본 다나카 일본수상에게 전달하였고, 다나카 수상 역시 납치사건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답신을 전달하였다. 양국 정부 모두 진상을 은폐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일관계의 갈등 역시 봉합되었다.

2007년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 보고를 통해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지시 아래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었음이 확인되었다.

1989년 14세 바둑천재 이창호, KBS 바둑왕에 올라 세계최연소 타이틀 쟁취
바둑천재로 불리며, 10대 중반부터 정상권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9세 때 조훈현의 제자로 바둑계에 입문, 1986년에 입단했다.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계 최연소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다. 1991년 국내 14개 프로 타이틀 가운데 7개를 석권, 스승 조훈현을 앞섰다.

1995년에는 15개중 14개를 석권, 프로 바둑으로서는 세계 최다관왕에 올랐다. 특히 이때 상금 랭킹 면에서 최고인 기성위와, 전통과 권위 면에서 최고인 국수위를 조훈현으로부터 쟁취함으로써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1994년 7단에 오른 데 이어 1996년 한국기원의 결정으로 9단으로 특별승단하여 최단기간내 9단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 청와대로 초청 정부책임 인정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하는 14살 임성준 군과 유가족연대 권은진 대표 등 피해자 가족 대표 15명이 참석한다. 정부와 청와대에서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수현 사회수석 등이 참석하며, 국회를 대표해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참석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과거 여러 정권에 걸쳐 일어난 일인데 국가가 인지하지 못해서 생긴 일인 만큼 문 대통령께서 국가에 잘못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고, 피해자들을 다독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이어 피해자들이 35분간 문 대통령에게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의견을 개진할 예정이다. 이어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우원식 원내대표가 향후 경과와 재발 방지 계획 등을 설명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6월 5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와 관련해 "적절한 수준의 대통령 사과발언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와 관련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지원대책 및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며 "피해자와의 직접 만남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1936년 조선불온문서 임시취췌령 공포 시행
1947년 조선임시정부 약헌 입의(立議)통과
1955년 증권거래소 개장
1958년 함석헌 필화,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1968년 서울 사직공원에 이율곡 동상 제막
1969년 MBC TV 방송국 개국
1990년 정부의 민족대교류 제의에 따른 방북신청에 6만1,354명 접수
1990년 작가 황석영 범민족대회남측추진본부 대표자격으로 평양 방문
1991년 생수 시판허용 결정
1991년 유엔안보리, 남북한유엔가입을 총회에 권고하는 결의안 채택
1992년 여자핸드볼,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한국 구기사상 첫 올림픽 2연패
1997년 울릉도 독도박물관 개관(삼성문화재단 건립)


천재 바둑기사 이창호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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