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몸-뇌 삼합의 고뇌
지난 몇 년간 내가 나 자신을 들들 볶으며 연습과 씨름했던 건 기다릴만한 목표 또는 지점을, 사실 이는 모두에게 이로운, 찾아 헤매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쓰다 만 글도 다시 보고, 다듬다가 버린 글도 주워서 다시 읽는다. 어떻게든 쓰일 수 있었을텐데 넌 목표에 가려져 의미를 잃었었구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집으로 끌고 들어오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조차 삶과 업무가 분리되는-삶의 균형을 잘 갖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 한번도 분리가 된적이 없었으니까. 정체성의 결을 다듬으며 떠오른 단상들을 파헤쳐보면 결국 난 수 많은 색과 형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스스로를 가리고 있었다. 한 지점에 옴팡 꽃혀 온 힘을 다해 아등바등 노력을 해도 과연 닿을까 말까하는 진리를 묵인하고 있었다.
확장성을 얼마나 띄고 있는 사람인지, 객관적인 평가로는 어떤 결과가 보이는지 등 여러 테스트를 거쳐 심리상담을 응용한 분석 결과에 도움을 받고 있다. 여러번의 방문에서 얻은 생각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는 것.
나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어느 순간부턴가, 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연주가 잡히거나 합주를 할 때, 금방 밑천이 드러나는건 당연한 일이다. 연습도, 발전도 게을리 해놓고선 못하면 자존심 상해하는 건 무슨 도둑놈 심보인가. 그나마 여태까지 연습해온 기본 덕분에 이렇게 학원이라도 나가고, 그나마 이름은 갖고 있는 거지 택도 없는 거라는 사실. 탑 클래스 중 탑이 되려면 정말 죽을듯이 아등바등 해도 모자란데, 난 그 열심히 할 힘을 진작에 다 잃었다. 연습의 필요성, 과정에서 얻어지는 온갖 고찰과 고통 그리고 희열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과거에서부터 글을 써 왔지만, 정작 현실에선 연습을 멈추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 다시 연습하고 싶어하고 루틴에 익숙한 몸, 그러나 연습을 거부하는 뇌. 삼합이 모여서 아주 가관이다.
하반기 지원 사업들을 모색하는 김에 다시 출/퇴근할 연습실겸 작업실을 구하고 있다. 버젯을 잡고 지역부터 둘러보고 있는데, 그 중 마음에 드는 조건을 찾기 쉽지 않은 와중에 역시 만만한건 임대업이라는 생각만 남는다. 몇 년 전 동료가 차린 연습실 방음공사를 며칠 도와준 이력 덕분에 연습실을 고를 때 공사를 어떻게 했는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보이는 눈을 갖게 되었다. 다름아닌 작업을 할 공간인데, 집보다 시간을 더 많이 쓸 것 아닌가. 그 어느 곳보다 쾌적하고 편안해야 한다. 올해 남은 달과 내년을 보낼 중요한 장소가 될테니 잘 구하는 일만 남았다. 언제나 그랬듯, 때가 되어야 내게 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