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올드 타운 호텔에서
올드 타운 호텔에서
S o u l e s s a y
신혼여행으로 갔던 프라하의 호텔에서 한 남자와 마주쳤다. 그는 출근 시간에 맞춰 건물로 들어섰다. 움푹 파인 눈으로 날 쳐다보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 건물에 사무실이 있는, 노동자 상해 보험 회사의 직원이었다.
관광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잠시 호텔에 들렀는데, 이 보험 회사 직원이 오후 2시에 맞춰 칼 퇴근을 하는 걸 보았다. 그는 나와 아내가 들어온 복도와 계단을 거쳐서 회사 밖으로 나갔다. 복도 중간에서 잠시 스쳐지나갈 때, 그는 날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깊은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퇴근 후엔 밥벌이보다 더 중요한 일과가 있습니다."
그는 집에 가기 전에 프라하 성 입구 옆으로 난 골목에 있는 작은 집에 들른다고 한다. 이 골목은 ‘황금소로’로 불리는 곳으로, 이곳엔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야 할 만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골목 22번지에 그 남자가 글을 쓰는 작은 방이 있다. 남자가 이전에 근무했던 보험회사에서는 저녁까지 일을 했다. 그래서 글을 쓸 여력이 나지 않았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2시면 퇴근할 수 있는 보험 회사 법률 자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일과는 몸을 구부리고 작은 집으로 들어가서 밤늦도록 글을 쓰고서야 마무리된다. 밥벌이보다 중요한 일을 마치고 남자는 그곳을 나와 자신의 하숙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남자가 퇴근하여 그의 22번지 작은 방에 도착할 즈음, 관광 가이드를 따라 황금소로로 들어간다. 마침내 나는 거기서 그 남자의 이름을 발견한다.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가 다녔던 보험 회사를 정비하여 개장한 ‘올드 타운 호텔’이 신혼여행의 숙소라는 사실은, 내게 어떤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막 결혼한 내 앞엔 노동,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이어지는 삶의 궤도가 열려 있었다. 그 삶의 궤도에서 카프카가 발버둥 치며 걸어갔던 길을 따를 거라는 우주적인 암시, 그것이 나를 이 호텔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이지적이고 감성적인 이 남자는, 매일 아침 회사의 계단을 오르면서 몇 시간 뒤 자신이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을 황금소로의 작은 집 책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와 나의 소망이 두 손을 맞잡는다. 회사 복도를 오가던 그의 발걸음 위로 나의 걸음이 포개어진 바로 그 지점.
난 호텔의 복도를 거니면서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무겁게 들어와서 나갈 때는 가벼워지는 그 걸음 소리를 말이다. 그는 회사에서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꽤나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일하는 동안엔 자신의 일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의 꿈과, 그의 영혼을 오롯이 채울 수 있는 것은 회사 밖, 저 우뚝 선 프라하 성 한쪽 골목의 22번지 작은 집에 있었던 것이다.
생활 속에 거주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매우 의욕 넘치고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헤르만에게 글쓰기는 현실의 삶에서 별다른 효용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지극히 형이하학적이고 현실 감각이 탁월한 아버지와,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영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들의 만남은 불행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프란츠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만드는 일이었다. 헤르만 카프카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에서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고, 시간과 몸을 축내는 그 일을 하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아들이 현실 감각을 갖고 자신과 같은 색의 ‘성공’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과에 입학했고,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할만한 진로를 가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는 ‘밥벌이’만 하며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삶의 ‘의미’를 원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밥벌이를 하며 시달린 후에도, 그의 시선은 그 너머를 향했던 것이다. 그는 생업에서 일탈하거나 튕겨나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주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쪽으로 항상 움직였던 것이다.
카프카의 소설들이 카프카 사후, 친구에 의해 출판되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카프카는 그의 글을 통해 외적인 보상을 누린 적도 없고,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것 같다. 그는 오로지 글을 쓰는 그 행위 속에서 삶을 누리는 길을 찾은 것이다.
내게 있어 ‘프란츠 카프카’는 작품보다 작가를 좋아하는 유일한 사례다. 그의 작품보다 그의 삶에서 영감을 얻고 경외심을 가진다.
남들이 알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낸다는 것
난 그가 오갔을 올드 타운 호텔의 복도를 걸으면서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눴다.
“두 종류의 생활을 하나의 삶 속에서 녹여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요? 내게 조금만 더 글을 쓸 여유가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진 않나요?” 내가 물었다.
“늘 하는 생각입니다. 내가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지에 대해선… 두 말 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내 밥벌이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카프카가 대답했다.
“어떤 점에서요?”
“전 보험회사 직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했어요. 자본가들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다칩니다. 노동자들에게 근무 환경은 열악하지요. 거대한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노동자들은 한 개인으로서 무력하고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에게 냉혹합니다. 노동자들과 그들의 근무 환경을 보면서 생각한 것들이 어느 새 제 소설의 중심을 이루기도 합니다. 경험이 다채롭다는 건 그만큼 쓸 거리와 할 얘기를 얻는 데 유리하다는 뜻이죠.”
올드 타운 호텔 복도 벽엔 프란츠 카프카의 사진들이 있다. 그가 이 건물을 드나든 지 100년 정도가 지났는데, 과연 그의 숨이 이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난 사진 속 그에게 눈을 맞추고 물었다.
“황금소로의 22번지 작은 방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남들이 알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한다는 의미가 있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세계를 만듭니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는, 현실의 세계에서 성공하여 돈을 벌고 부를 누리며 살아가기 위한 자신만의 원칙과 세계관이 담긴 세계를 구축했죠.
제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는 당신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세계일 겁니다. 하지만, 저의 세계는 별로 인기가 없을 겁니다. 몸을 구겨서 들어가야 하는 그 작은 방에서 매일 몇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저는 유명 작가도 아니고, 제가 문장을 쌓아가며 만드는 그 세계를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남들이 알 수 없는,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그 세계를 저는 착실히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만 생산되는 기쁨의 과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역에서나 특별한 생산물이 있지요. 황금소로 22번지 작은 방에만 제가 한 입 베어 물 수 있는 과실이 있습니다. 그 과실은 달콤하기만 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맛이 좋습니다. 사람들은 ‘단 것’과 ‘맛 좋은’ 걸 착각하곤 합니다. 쓰고 시고 짜고 매운 것도 맛있을 수 있습니다. 안락하고 풍족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달콤할 순 있어도 맛 좋은 삶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전 맛 좋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입맛에 맞는 삶이죠.”
나의 하루
올드 타운 호텔 복도의 벽에 걸려 있었던 카프카의 사진은 어느 새 거울로 바뀌어 있었다. 질문한 사람도, 대답한 사람도 나였다.
아내가 일부러 그 호텔을 정한 건 아니었다. 나도 그곳에 가서야 거기가 예전 카프카가 다니던 보험 회사 건물이라는 걸 알았다. 카프카의 발소리를 듣고, 퇴근길에 인사하는 카프카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내가 만난 남자는 바로 나였다.
나의 일과는 해가 저물고, 집으로 향하는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바람이 그 자리에 가만이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으며 몸을 떨 때, 황금소로 22번지에서 다시 시작된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맛을 내는 시간 속에서, 남들이 알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위태롭지만 끈질기게.
좋아하는 작가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에 내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설레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요. 실제로 여행중에 제가 좋아하는 화가의 생가나 작업실을 가보는 귀한경험을 할때면 나도모르게 그의 생활이나 모습을 상상하게 되더라구요ㅎㅎ 그런 경험을 이렇게 멋진 글로 적으시다니 감탄이... ㅋㅑ!!ㅎㅎ 처음엔 갸우뚱하며 읽다가 마지막엔 정말 감탄하게 되는 글이였어요 ^-^bb
좋아하는 화가의 생가나 작업실을 들르실 때면 느끼실 그 감정, 짐작이 됩니다.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내 품에 안겨드는 감동이 있지요. ^^
그도 그 시절엔 고뇌하고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그래도 붓이나 펜을 놓지 않고 전진했던 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뭉클합니다ㅎ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작품보다는 작가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경우... 공감가는 말입니다 저도 그런 작가가 있거든요. 신혼여행 갔던 호텔이 카프카가 다니던 회사였다니... 그 자체가 소설 같아요. 카프카와 나눈 대화도 멋집니다 쏠님 ㅎㅎ
북키퍼님이 작품보다 애정하는 작가는 어떤 작가인지 궁금하네요^^ 프라하 가게 되시면 그 호텔에 묵으세요ㅎㅎ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느낄만한 뭔가 묘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글을 읽고 난 순간 입꼬리는 싸악 올라가고 눈동자는 위를 향하며 행복한 상상이 그려졌습니다. 내 삶의 의미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게 해주는 것이 꼭 글이 아닐지라도 그걸 찾아 매일같이 실행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것.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 라고 한참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rideteam님의 올라간 입꼬리와 치켜뜬 눈동자를 잠시 떠올려봅니다ㅋ 그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어떤 일을 상상하셨을지 궁금해집니다. ^^
고장난 마우스를 뚝딱 고치시는 맥가이버시니, 맛있는 삶을 위한 시간과 공간도 뚝딱 만드실 거 같습니다ㅎㅎ 육아라는 큰 산을 넘어야겠지만요ㅋ
맛있는 것을 할 용기는 있는데, 무엇이 맛있는지를 찾아 해메고 있습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찾으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
눈이 깊은 남자 카프카와 만나는 나.
소름입니다.
일상의 번잡함과 오롯한 내 시간 확보는
풍선 주므르기 같아요. 한쪽을 눌러 밀어도 금방 이쪽으로
밀려오지요. 터지지 않도록 건강 조심하세요.ㅎㅎ
풍선을 다루는 기술이 필요한 거군요ㅎ
잘 주물러 보겠습니다^^
우연이 아니라 운명적인 끌림이었을까요? 아니면 계시?
맛있는 삶을 살고 계신 쏠메님 멋지십니다! :)
브리님도 맛있는 삶 yammy-yammy!! ^^
카프카가 일하던 건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호텔은 7성급 부럽지 않은 숙소가 됐지요ㅎㅎ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까마귀 소년이 가출해 자신에게 붙여준 그 이름이 프란츠 카프카, 이분이었군요.
신혼여행도 하시고 시간여행도 하시고 일석이조!ㅎㅎㅎ
신혼여행 중간중간에 시간 여행을 한 셈이군요ㅎ 그런 걸 보면 아주 비용이 적게 든 여행이었네요.^^
아주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키도 소환되었군요!ㅎ
당신은 많은 재능을 가지고 글을 씁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으앗! 상상하며 읽는 데 정말 너어어무 낭만적입니다!
역시 쏠님!!!!
카프카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으니 더욱 인상적입니다 :)
낭만적인 신농님의 마음을 거치니까 진짜 낭만적인 글이 되는 모양입니다ㅎㅎ 그 어떤 곳이든 스토리가 있는 장소는 즐겁습니다. 프라하 가시면 그 호텔로 고고씽!!^^
아! 카프카!
그를 배우고 싶은데 넘ㅎ 힘들어요.
그의 그 공간에선 가능할까요?
소울메이트님의 이 멋진 글!
두고두고 보려고 리스팀합니다.^^
마담님도 글쓰기를 통해 삶을 누리고 계시지요^^ 한 문장 한 문장 쌓아올려서 마담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계시죠ㅎ
한문장 한문장... 쌓아가면 좋겠어요.
소울메이트님께서 그렇게 느껴주시니
용기가 나네요. 감사해요.^^
Welcome to 마담f's world! ^^